말로만 듣던 서울의 집값을 현장에서 똑똑히 목도하고 돌아온 날, 후유증이 크다.
샤워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조그만 원룸이 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가 80만 원이라고 했다.
뭐, 비싼 건 그렇다 치고, 집안에 들어가는 순간
아... 여기서 살면, 우울증 걸리기 딱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방은 좁고, 창 밖은 답답하고 현관문을 열 때는 조심해야 한다. 맞은편 원룸 세입자랑 동시에
현관문을 열면 현관문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다 못해, 서로 한 장으로 겹쳐질 지경이다.
여차 저차 꽤 오래된 오피스텔 하나를 계약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이제사 실감이 난다.
우리 막내가 이제, 내 품을 떠나는구나.
이제 학교에 입학하면 부산에 내려와서, 정착할 일은 없겠지.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고 그곳에서 쭈욱 눌러앉겠지.
오늘은 하루종일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숙제 끝났다고 좋아할 땐 언제고...
글을 쓰고, 일에 몰두하고, 혹자가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꿈을 이뤄보겠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어쩌면 이제는 나의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새끼들에 대한 허전함을 잊어버리기 위한 내 나름의 처방전이 아닐까...
마음도 시린데 눈치 없는 날씨는 하루종일 흐리고 내릴 듯 말 듯 한 비는 나를 놀리는 것만 같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가끔은 참 살아있는 것이 무섭다.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부담스럽다.
그냥 담담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심장이 아린다.
아무 일 없을 거란걸 알면서, 늘 그랬던 것처럼 잘 해낼 거라 믿으면서도 다가오는 시간들이 걱정스럽다.
시간아. 잠깐만 멈춰줄래.
너무 빨리 달리니까 멀미가 날 것 같아.
아니다. 너 먼저 가고 있어.
나 여기서 잠깐만 가라앉아 있을게...
금방 따라갈 거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고 있어...
나는 여기서 잠깐, 정신을 좀 가다듬고 호흡도 좀 가다듬고 다시 쫓아갈게...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고, 알 수 없는 이 무거운 기분이 너무나 싫어서 희노애락을 느끼지 않는 고무인형이 되고 싶은 밤이다.
울까?
아니다.
됐다.
그냥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