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큰 아이가 발도르프 학교에 입학했다. ‘남다른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굳이 왜?” 비인가 학교를 선택한 부모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별나다”라고 내뱉는 사람도 있다. ‘비싸지 않으냐’라는 말부터 듣기도 했다. ‘비싼 것은 좋다’라는 신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놀이 학교와 영어유치원 코스를 밟고 각종 사교육을 경험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발도르프는 대안 교육이지만 ‘그중 하나’라고 설명하기엔 특별한 결을 가지고 있다. 발도르프가 가진 놀라운 힘을 경험했고 앞으로 아이에게 펼쳐질 모습을 신뢰하기에 ‘대안 교육’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아이를 의심도 않고 보냈다. 발도르프 교육을 믿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물론 쉽게 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무려 5년.
첫째가 21개월 때 발도르프를 처음 접했다. 어떤 가정 어린이집 블로그 포스팅을 읽고 상담 신청을 바로 했다. 자연에서 충분히 뛰어놀게 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정성 어린 손유희를 아이들에게 펼치는 모습에 감명을 받고 찾아간 이곳은 발도르프 교육을 한다고 했다. 발도르프라.. 처음 들었다. 육아 동지들과 유명한 육아서라면 돌려가며 같이 읽던 시절이었는데도 금시초문이었던 이름이었다. 원장님과 상담하는 내내 신기한 말을 들었다. 플라스틱 교구 하나 없이 진짜인 놀잇감만 놓아두고, 칼바람이 불지 않는 한 한겨울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나간다고 하셨다. 눈과 비가 내리면 무조건 나가고 매일 흙에서 뒹구니 예쁜 옷보다는 부담 없이 놀 수 있는 옷을 권했다. 더구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밥 먹듯이 내뱉는 “안 돼!” 혹은 “하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는 어린이집이라니. 아이들 성장기는 무조건 좋은 재료를 먹어야 한다면서 유기농 재료로 먹을거리를 준비한다고 했다. 플라스틱 그릇이 아니라 유리그릇을 주는데 혹시나 바닥에 떨어트리더라도 아이들을 그러면서 실수를 배워 갈 것이라던 말도 놀라웠다. 이런 교육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람과 동시에 아이와 잘 맞을듯한 예감이 오묘하게 나를 휘둘렀다. 운명적인 만남이라 그랬을까.
영아반을 졸업하기까지 2년 동안 원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천했다. 기관이 지향하는 교육 철학에 맞춰 부모도 노력해야 아이도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믿던 터라 최대한 선생님들 말씀을 따랐다. 이 교육이 도대체 무엇인가 알고도 싶었다. 입소한 날부턴 카페나 백화점, 대형 마트를 쉽게 발걸음 하지 않았다. 하원 후엔 집 앞 산책로나 가정에서 하루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했다. 생활리듬이 무너지지 않게 낮잠과 밤잠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했다. 몇 년을 겪어 보니 숲 놀이와 아기자기한 교구는 발도르프의 일부에 불과했다. 5% 정도? 그렇다면 이 너머의 세계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그제야 발도르프 서적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4세까지만 다니는 어린이집) 일반 사립 유치원에 보내는 와중에도 발도르프 학교를 보낼 생각은 못 했지만 아이가 첫 어린이집을 다니며 변화한 모습을 보고 나니 발도르프에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노력하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받는 그 감동을 진하게 풀어가고 싶은 욕구가 깊어졌다.
아이에게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5세 어느 순간 보니 마음을 열어 세상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좀처럼 말을 하지 않던 아이에게 선생님들은 2년 동안 무리해서 말을 시키지 않았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세 살이라고 네 살이라고 그때그때 해내야 할 발달 과업 따위를 강조하기보다 아이마다 가진 속도와 색깔을 존중하였다. 아이가 느리거나 마음을 닫고 있으면 부모보다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셨다. 그러면서도 채울 부분이 있다면 알게 모르게 챙겨주셨다. 또, 담임이 아니라도 어떤 아이든 안아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들이 퇴적층처럼 하나하나 쌓여 효과가 드러났다. 아이가 길고 긴 터널을 스스로 나와 세상을 만나려는 노력하는 순간, 발도르프가 가진 힘을 강하게 믿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7세가 되었을 무렵,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한글놀이였다. 발도르프 학교까지는 안 보내더라도 한글은 특별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발도르프 방식을 알아보았다. 몇 명이라도 같이 하면 좋겠다 싶어 스터디원을 모집했는데 생각보다 신청자가 많아 어쩌다 대규모 온라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참여자 엄마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을수록 이 교육이 가진 힘을 진하게 느꼈다. 몸을 아직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워크북을 펼쳐 글자 쓰기를 시키고 단어카드를 들이대며 이 글자가 무엇이냐고 수백 번 물어볼 때’보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 그 속에서 글자를 형상화하고 바닥에 만든 글자 위를 걸으며 글자를 만날 때'를 아이들은 좋아했다. 연필을 들고 쓰지 않아도 글자를 생각보다 빨리 읽어갔다. 우리 아이의 경우 워크북을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어도 얼마 안 되어 소리 내어가며 곧잘 쓸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아이들이 미소 짓는 모습에 답이 있었다. ‘아이를 잡지' 않아도 되는 배움이라면 공교육을 흔쾌히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 얼굴에서 드러난, 생동감과 아이다움이 우리 가족을 끝내 발도르프 학교로 강렬하게 인도했다. 발도르프 학교에선 숫자 하나 글자 하나를 만나더라도 시나 노래, 리듬놀이로 감각을 먼저 깨워주는 시간을 가진다. 어떤 과목이든 여는 시간이 있다. 공부하기 전 몸을 먼저 깨우면 머리로만 넣을 때보다 학습이 더 잘 된다고 한다. 아이들을 무작정 책상에만 앉혀두지 않고 시와 노래, 형상화, 이야기, 감각놀이를 활용해도 학습이 이뤄진다는 경험을 몸소 하고 나니, 내가 겪어온 교육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가치 있게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가 흔들리지 않는 배를 태웠다.
남편이 발도르프 학교를 받아들이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도르프를 좋아한다 해도 공교육을 내려놓을 용기는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묵묵하게 기다릴 수밖에. 다만 나의 육아 방향이 뚜렷했기에 남편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발도르프 교육을 시키겠다는 나의 소신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남편은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나서부터야 '우리의 교육'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발도르프 학교에선 부모들과 담임 선생님이 한 달에 한 번 반모임을 가진다.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누가 어떤 부분을 극복했는지, 아이마다 채울 점이 무엇인지, 어떤 점이 장점이고 강점인지 등등 나눈다. 아이들 노트를 넘기면서 배우는 의미를 부모도 익히고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상세하게 듣는다. 아이들이 배운 동작을 직접 해보기도 한다. 교사와 학부모가 하나 되어 공동체로 운영되기에 재학생 부모들이 학교에 어떻게 마음과 열정을 다하는지도 보인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공동체 목표를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다. 이런 과정에서 남편은 특히 아빠들이 어떤 자세로 학교일에 임하는지 보며 자극 받았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한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직 1학년 학부모라 말하기엔 섣부를 수 있지만 ‘우리는 발도르프에 물들어 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당해 보인다.
남편도 아이들 스스로가 보여주는 힘을 믿게 됐다. 발달 과정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교육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를 공감하고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함께 노력하고 있다. 8년 동안의 교실 여행을 마치고 어떤 아이로 성장해 있을까? 탄탄하게 다져온 의지로 자기 삶에 방향을 잡고, 우리에게 가고 싶은 길을 힘 주어 말해주지 않을까. 대학? 우리 부부에겐 안 가도 괜찮은 곳이다. 대학이라는 존재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목표가 되지 않고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 발도르프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8년 과정을 마치고 나면 나머지 삶은 아이들 뜻에 맡길 예정이다. 상급 과정(9~12학년)을 밟느냐 안 밟느냐, 상급 과정 이후 자기만의 삶을 찾아가느냐 대학을 가느냐 등등. 그 선택을 판단할 만큼 아이가 단단한 아이로 자랄 거라 믿는다. 지금은 삶에 가장 바탕이 되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고 싶다. 우리 부부가 추구하는 육아 목표는 단 하나.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아이로 이끌어 주기!
아이들을 교육하는 확고한 철학을 세우고 흔들림 없는 나를 보고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엄마도 많다. 하지만 쉽사리 이 길을 함께 하지는 못 한다. 그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이 만든 틀에 아이를 넣어두고 실패할까봐 무서워서 애쓰고 싶지 않다. 어른들이 만든 틀에 아이를 넣고선 발을 동동거리며 키우고 싶진 않다. 흰 도화지를 선물해 아이 스스로 채워갈 날들을 기다릴 것이다. 세상이 아이를 변화시키지 않고, 아이가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말이다. 아이 내면엔 나아갈 수 있는 강한 힘이 있다. 8절 도화지에 아이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 기대되지 않는가. 10년 뒤, 20년 뒤 우리 아이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 아이에게 닥칠 날을 일일이 걱정하며 각종 사교육을 아이에게 들이밀기보다 아이가 만들어갈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아이가 완성할 그림을 부모가 굳이 그려줄 이유가 없다. 아이 스스로 자기 의지를 다져갈 수 있는 교육이라면 베팅해도 충분했다. 발도르프 학교들은 정부 지원을 전혀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긴 한다. 그렇다고 공교육과 사교육을 겸하며 들어가는 비용만큼 들어가지 않는다. 살림이 넉넉한 건 아니다만 마음만큼은 부자가 되려고 한다. 아이가 만들어갈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 부부의 마음은 부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