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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Jul 20. 2021

홍당무 아이
뻔뻔한 척 발표하기까지







어머,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처음부터 여기 있었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목구멍을 넘어 나와야 할 대답은 침을 꼴깍 삼킬 때 같이 들어가 버렸다. 얼굴은 홍당무처럼 변했다. 그런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엄마 뒤에 빠르게 숨었다. 엄마와 함께 다닐 때 나는 늘 유령 같은 존재였다. 사람이 많고 낯선 장소에선 숨기 바빴다.   

  

“이번 문제 답은 누가 이야기해 볼까?” 

교실을 찬찬히 둘러보시던 선생님이 날 지목하신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빠르게 요동친다. 꼼지락꼼지락 손이 가만있지를 못한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너무 따갑다. 홍당무로 변한 얼굴에서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온다. 정확히 전달되지 못한다. 너무 창피했다. 동화 속에 나오던 쥐구멍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답을 알면서도 그렇게 늘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젠장, 오늘도 발표 실패다.     


"조장 발표한다"

내 이름이 불려진다. '뭐야?,  내 이름 맞아?, 아~하기 싫어 '

출석률이 높다는 이유로 중학교 때 교회 중등부 조장을 맡게 되었다. 담당 전도사님의 일방적 통보였다. 상의는 없었다. 너무너무 하기 싫었다. 용기를 내어 전도사님께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교회 후배였던 주원이와 지영이가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이놈의 지지배들, 지난주 쭈쭈바 먹을 때 조장 같은 거 하기 싫다고 분명 이야기했는데 배신이다. 다시는 쭈쭈바를 사주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한번 조장은 영원한 조장이라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조장을 했다. 교회가 해병대인가? 장기 집권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젠장, 소용없었다.     




나 안 해 하기 싫다고
학교 안 나온다


대학교에 입학했다. 팀 프로젝트 조가 편성되었다. 동대문에서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사업처럼 하던 친구, 학생회의 일원으로 학생운동에 빠지지 않고 쫓아다니던 친구, 한양공대 오빠랑 연애하기 바빴던 친구가 한 조가 되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난 진짜 못한다고 너희 이러면 진짜 학교 안 나온다고 소리쳤다. 교회 행사 때 배웠던 파워포인트가 화근이었다. 친구들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파워포인트는 너 밖에 할 줄 모른다며 모두 가버렸다. 그렇게 대학 내내 발표를 도맡아 했다. 발표전까지 늘 사시나무 떨듯이 바들바들 떨었다. 행여 홍당무로 얼굴이 변할 것을 대비해 두껍게 화장을 했다. 목소리마저 떨릴까 싶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한양공대 오빠를 소개해 준다는 친구는 입을 씻었다. 이런 젠장, 또 낚였다.    


 

교회나 학교 조직 안에서 언니들 말은 무조건 경청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겠으니 일단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물어봐야 했다.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머리를 쓰는 일보다는 몸 쓰는 일에 더 자신 있었다. 선배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눈치가 늘기 시작했다. 덕분에 족보도 얻고, 교수님들과도 조금씩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 학창 시절 조금씩 소통의 기술을 배워 나갔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연습이 된다는 걸 알았다. 홍당무처럼 변해버리던 얼굴은 담담함으로 무장했다. 떨리는 입술은 미소 뒤로 숨겼다.     



취업을 준비하며 자기소개서에 장점과 단점을 써야 했다. 단점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썼다. 장점에는 과거 경력들을 기술하며 유대관계가 좋다는 부분을 강력 어필했다. 제발 뽑아만 주시면 조직에 정말 누가 되지 않을 거라는 부분을 구구절절 열심히 설명했다.      



주목받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흘러간 시간은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시선을 허락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면 장점은 빛을 발했다. 너무나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어색하겠지? 낯설겠지? 불편하겠지? 처음이라 모르겠지?’ 내가 과거 느꼈던 감정 덕이다. 그때는 그렇게 싫었던 감정이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취업에 성공해서도, 결혼해서도, 아이들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서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를 등 떠밀어주었던 동생들, 친구들, 언니들,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라도 드리고 싶지만 난 여전히 앞에 서는 것은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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