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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Jul 29. 2021

할머니 소원은 예쁘게 죽는 거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할머니 댁 가자!

“할머니 댁 가자!”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빠와 나는 최소한의 짐을 챙긴다. 매년 방학이면 일주일 정도 친할머니 댁에 갔다. ‘탐구생활’이란 커다란 방학책을 가방에 꽂아 넣는다.  ebs 라디오를 듣고 그날의 숙제를 끝내면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엄마의 별다른 잔소리 없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말이다.    

  

할머니는 인천(지금의 인천과는 너무 다르다)에 살고 계셨다. 지하철에서 내려 가방을 메고 정말 한참을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단층의 주택에서 홀로 지내고 계셨다. 1층 에는 널찍한 거실이 있고, 2개의 방과 화장실이 있다. 거실 뒤로는 뒷마당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엌이 있었는데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했다. 작은 앞마당에는 ‘똥개’라고 부르는 할머니가 키우시는 개가 한 마리 있고, 개 집 옆으로는 복숭아나무와 포도나무가 있다. 장독대 옆으로는 늙은 호박 몇 개가 바닥에 덩그러니 달려 적막한 공간을 채워주었다.       


“할머니~~”

마당 문 여는 소리에 할머니가 나오신다. 오느라고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팥죽 냄새가 코를 찌른다. 팥죽은 오빠의 최애 메뉴다. 할머니가 해주신 팥죽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오빠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커다란 솥에 팥죽을 끓이고 계셨던 거다. 할머니는 오빠를 엄청 예뻐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도 그럴 것이 다섯 남매 중 아들 둘이 결혼했는데 한 명은 너무 멀리 살아 볼 수가 없고, 할머니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손주가 오빠였던 것이다.


할머니의 집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없어질 때까지 우린 해마다 여름 방학이면 할머니 댁으로 갔다. 맛있는 팥죽과 호박죽 손수 만들어 주시는 인절미와 작은 마당이 있는 그곳이 늘 좋았다.



할머니 돌아가셨데



“일어나 봐”

어느 날 새벽 엄마가 귓가에 속삭이신다.

“할머니 돌아가셨데”

 엄마와 아빠는 서둘러 나가셨다. 오빠가 일어나면 식탁에 차려 놓은 반찬에 밥 퍼서 먹고 학교에 가라는 것이다. 저녁에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우선 학교에 다녀오라 한다. 멍하니 그렇게 천장만 바라보던 눈가가 촉촉해졌다.      

작은 고모 댁에 머물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 고모와 함께 맛있게 저녁을 드셨고, 새벽 기도 가신다고 알람을 맞추시고 방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새벽에 인기척이 없어 들어가 보니 너무 편안하게 주무셔서 흔들어 깨웠는데,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고 전해 들었다.


할머니 축하해요. 소원 이루셨네요


속으로 중얼거린다. 할머니는 나에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이 할미 소원은 이쁘게 죽는 거다. 벽에 똥칠하지 않고 이쁘게”

이쁘게 죽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신다고 하셨다. 아니 기도할 게 없어서 이쁘게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나 싶었다. 똥칠이 뭔가 똥칠이 그냥 듣는 것 만으로 기분이 나빴다.

"할머니, 왜 그런 말을 해"

난 듣기 싫었다. 초등학교 4학년 손녀 앞에서 자꾸 죽는 이야기를 하시는 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지 말이다.  병들어 아프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으시지 않으셨던 거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건 더더욱 싫으셨을 거다.


최근 들어 주변에 많은 비보를 접하게 된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수년 동안 매일 같은 기도를 하셨던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나도 기도한다.

“우리 할머니처럼 예쁘게 죽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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