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내는 수신호처럼 아픔은 들썩이는 커다란 파도로 혹은 찰싹이는 잔물결로 다가왔다 사라진다.
미열에 들뜬 몸은 하릴없이 부침을 거듭하며 파고를 따라 떠돈다. 날카로운 격통과 함께 천근으로 무거워진 몸이 심해를 향해 추락한다. 스쳐가는 검은 그림자들, 밤의 장막과 같은 치렁한 어둠이 눈앞을 가린다.
한없이 어리석어져야 하리라.
포복하듯 납작 엎드려 스스로를 비천하게 열어 벌려야 바다가 그를 딛고 일순에 분출할 것이다. 온몸이 빠르게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느낌에 아찔해진다. 늪에 발목을 잡힌 말馬이 이러했을까. 눈으로는 청정한 하늘과 바람과 시린 햇살의 환시를 더듬으면서도 몸뚱이는 춥고 어둡고 한없이 깊은 바닥을 향해 침잠한다. 죽을 것만 같다. 죽음의 냄새와 흡사한 생명의 비릿한 취기가 몰칵 풍겨와 욕지기를 일으킨다.
누군가 주먹을 옥죈 채 쾅쾅 문을 두드리고 있다.
비죽이 열린 문틈을 엿보며 어서 열어달라 채근하고 있다. 검도록 푸르고 검도록 붉은 선명한 적록의 고통이 몸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들썩이며 울린다. 변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퀴퀴한 통증이 코끝까지 밀려왔다 물러나곤 한다. 몸속에 아주 작고 단단하게 웅크린 통점을 간직한 채 거죽만 부풀어 올라 치수가 맞지 않는 가죽 옷을 들쓴 듯하다. 한순간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외피의 실밥이 부드득 뜯기는 느낌과 함께 온 몸의 마다 마디와 오래전 닫힌 숨구멍까지도 활짝 열리는 기분에 휩사인다.
이젠 더 보여줄 것이 없다.
더 노출하여 뻔뻔스레 드러낼 것이 없다. 마지막 힘을 쓰고 기진하여 맥을 놓는 순간 달음질쳐 간 바다가 수평선의 끝에서 하늘과 닿았다. 뜨뜻하고도 미지근한 해수가 새어 나와 가랑이를 적셨다. 문득 먼 곳으로부터 외로운 짐승이 우짖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아득하고도 처연했다.
여자의 팔자는 버드나무 팔자라 했던가.
버드나무와 여자는 던져 놓아도 산다고, 어디서나 왕성한 번식의 힘과 강인한 생명의 의지로 흙에 거꾸로 꽂아 놓아도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운다던가. 산이 거꾸로 쳐박히고 바다가 솟구쳐 산정이 호수를 이루는 개벽의 고통 속에서 철없던 계집애는 죽어 잊혔다. 이제부터 진정한 여인이 된 그녀 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