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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Mar 10. 2017

[인터뷰] "김민희 악역 사냥 그리고 해빙"

 조진웅의 예민한 키워드 

                                                                                                                                                                                                                 

조진웅이 신경쇠약 직전의 의사로 탈바꿈했다. 퍼즐을 맞추듯 정교한 이야기와 울림통 큰 배우의 열연으로 인해 심리스릴러 '해빙'(3월1일 개봉)은 할리우드 대작 ‘로건’과 치열한 흥행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봄을 입은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겨울남자가 흘린 화끈하고 예민한 키워드를 주워 담았다.



승훈


내시경 전문 내과의사 승훈은 몰락한 중산층 가장이다. 강남에서 개업했다가 망하면서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과는 떨어져 지낸다. 선배가 운영하는 신도시 개인병원의 페이닥터로 고용된 뒤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집 부자(신구 김대명)와 관계를 맺으면서 기이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미국 월스트리트도 무너지는 판국에 누구든 승훈처럼 회생이 불가능할 만큼 전락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나도 전락해서 회생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했다.


심리연기


승훈은 내가 작업해왔던 캐릭터들과 달리 제시적인 캐릭터였다. 조진웅과 승훈이란 캐릭터가 계속 충돌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캐릭터가 돼버릴 듯했다. 감독과 “더 들어가서 가지고 놀자”란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보니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나온 행동들이 많았고, 의도하지 않은 호흡들이 나왔다. 그런 변주에서 오는 신명남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아 이렇게 해서 잘 도착했구나, 놓쳤던 부분들은 많이 없구나. 쇼트마다의 의도했던 것들이 나왔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수연 감독


‘4인용 식탁’(2003)을 연출했던 이수연 감독님의 스릴러 역량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랜만에 복귀하셨지만 그간 강의도 하시고, 영화작업을 계속 해오셨기에 신뢰했다. 무엇보다 스크립트에서 믿음이 갔다. 재미없는 지점이 없었다. 물론 관객 입장에서 “이게 뭐지?” 할 부분도 있겠으나 의미 있는 영화화 작업이 이뤄지겠다 싶었다. 쉽지는 않을 거란 생각은 들었다.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산돼져야 하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절로 흥이 났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충돌


내 삶의 모토가 “충돌을 두려워하지 말자”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얼마든지 내 삶에 들이닥칠 수 있음을 알기에 이에 대한 공포가 있다. 국민들 역시 느닷없이 충돌하는 게 얼마나 만나. 그래서 다들 힘들어하지 않나. 배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배우로서 힘든 캐릭터를 만나면 아프다.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 충돌하지 않으면 뭔가가 나오지도 않는다. 더 많이 충돌하면서 변형되어지는, 다양한 모습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다. 그나마 충격을 완화시키는 중요한 장치가 팀워크이고, 상대배우와의 교감이다.


연극적인


연극배우, 영화배우, 드라마 배우, 목소리 배우로 부르지만 ‘배우’란 타이틀은 똑같다. 본질의 가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번에 출연하신 신구 송영창 선생님이 연극계 대가들이다보니 같이 노는 것처럼 아주 재미나게 갔다. 영화 화법을 쓰면서 연극적 기법을 사용한 듯한 느낌이 나버려서 배우들은 훨씬 자유로웠다. 무대 위에서 같이 호흡하는 느낌의 장면이 끝나면, 오늘 제대로 한 산을 넘은 것 같아 “소주 한잔 하시죠”라 말하고 그랬다. 굉장히 기분 좋았기에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무명시절


무명시절이 길어서 힘들진 않았다. 캐릭터가 안 풀리고 갈 길이 잡히지 않을 때 터널에 갇힌 듯 힘들었을 뿐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야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단칸방에 살고, 친구집에 얹혀살고 그랬다. 대학(경성대 연영과) 다닐 때는 학교가 집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연극부장을 맡았다. 샤워장, 연습실, 식당이 다 있으니 집과 같았다. 차비 들일도 없고, 중간중간에 학교 지원을 받아 MT도 가고, 쫑파티에 참여하고...난 연극만 하면 됐으니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더블잡


대학 1학년 때부터 창작극 위주의 젊은 극단 ‘동녘’에 소속돼 공연을 하고, 학교에선 워크숍 공연을 했다. 소위 ‘더블잡’을 뛴 거다. 당시엔 보통 3~4개의 대본을 들고 다녔다. 서울말을 구사하고 덩치가 크다보니 대극장 공연에 주로 서야 했다. 한 시즌에 4~5편의 공연이 동시에 이뤄졌다. 졸업하고 나서도 1주일 이상 가만히 있었던 적이 없었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토론을 벌여가던 시기였다. 매일 연극놀이를 하면서 지내왔던 게 지금 나를 만든 가장 큰 자양분이다.


협연


같은 목적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이다보니 생각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배우들과의 협연은 늘 흥분된다. 신구 선생님은 그 연배에도 에너지를 강하게 발현하시면서 작업하시는 게 정말 존경스럽다. 닮아야할 덕목이다. ‘미생’을 보면서 팬이 된 김대명은 보이스와 이미지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 호흡이 굉장히 독특하다. 차지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호흡을 맞추기가 되게 재미나다. 눈을 보면 을씨년스럽지만 굉장히 선한 친구다. 내가 형이지만 배울 부분이 많다.


악역


드라마 ‘시그널’에서의 이재한 형사는 예민하고 오지랖 넓고, 불의를 보면 넘어가질 못한 채 붙들고 늘어진다. 불편한 캐릭터다. 선하고 정의로운 캐릭터는 재미가 없다. 만날 입바른 소리를 해야 하지 않나. 반면 악역은 상당히 재밌다. 사이코패스 등은 그나마 자료들이 있을 순 있겠으나 모델이 없지 않나. 보는 입장에서도 통쾌하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그렇게 행동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 배우의 눈빛을 보면서 엄청 즐기고 있음이 단박에 느껴졌다. 악역의 완성은 상대의 리액션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리액션이 어설프면 감도가 확 떨어진다. ‘끝까지 간다’ 박창민은 이선균이 만들었다고 본다.



김민희


이번에 당연히 베를린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줄 알았다. ‘아가씨’를 하면서 그렇게 연기 잘하는 여배우는 처음 봤다. 영화를 봤을 때 다 해결이 돼 “민희씨, 이건 민희씨 영화야”라고 칭찬하고 응원했다. 이번에 세계가 그녀의 연기를 인정했다는 걸 상당히 눈여겨봐야 한다. 괴물신인 김태리도 인상적이었다. 두 여배우는 정말로 ‘아가씨’의 모든 걸 채워냈다. 나를 비롯해 남자배우들은 어느 댓글처럼 “거들었을 뿐”이다.


코우즈키


‘아가씨’의 변태 노인 코우즈키 역할을 너무 재밌게 했고 지금도 애정이 간다. 그때도 신명나게 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외신기자들과 인터뷰할 때 그들이 “너무 조금 나왔다”고 아쉬워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그렇게 조금 나올 줄 몰랐다. 하하. 연구를 엄청 많이 했기에 노력 대비 좀 아까웠다. 제작사인 모호필름 직원처름 매일 출근했으니까.


사냥


지난해 영화 ‘사냥’으로 인해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충격과 고통이 컸다. 그땐 “아직 끝난 거 아니고, 다시 시작하면 되고, 만회하면 된다. 기다려봐라”며 칼을 갈았다. 그리고 내놓은 ‘해빙’의 승훈은 건드리면 깨질 거 같고,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캐릭터다. 어떤 자식이든 다 소중하겠지만 이 아인 독특하다. 당당하게 잘 걸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위더스필름 제공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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