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림자, 김남길은 대장"②
'써니'에서 본드에 취한 광기 어린 눈빛을 쏘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한공주'로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써니'의 연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이후 '뷰티 인사이드' '해어화' '곡성' 등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으며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강렬하고 무게 있는 연기로 대중에게 각인됐던 배우 천우희가 밝고 싱그러운 얼굴로 돌아왔다. 4월5일 개봉한 영화 '어느날'이다.
상실감을 겪을 때는 이겨내려고 노력하기보다 조용히 바라보는 편이라는 천우희는 촬영장에서도 스스로를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일컬었다. 반면 함께 촬영한 김남길에 대해서는 '대장' 같다고 표현했다.
"성향이 다르다. 근데 성향이 달라서 오히려 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이끄는 사람이 있으면 묵묵히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 거다. (남길) 오빠랑 그런 게 잘 맞았다. 나는 앞장서서 의견을 피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빠는 선배기도 하고, 여러 면에서 많이 이끌고 배려하더라. 조금이라도 진행이 더디거나 하면 나서서 긴장감을 주기도 했고, 스태프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그런 면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천우희는 지난달 '희소식'이라는 제목으로 생애 첫 팬미팅을 열었다. 제목은 직접 지었다. 팬미팅을 언급하자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번 영화도 팬들이 보고 싶어 한 천우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시작했다는 배우에게서 팬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졌다.
"진짜 좋았다. 기분이 좋아서 장난도 많이 치고 잔망스럽게 굴었다. 팬미팅이 좀 미뤄져서 더 긴장되고 부담됐었다. 팬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영화로만 나를 보다가 실제로 보면 낯설어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러 와주신 건데, 꼭 만족시켜 드리고 싶었다. 근데 오히려 내가 얻은 게 더 많았다. 분에 넘치는 애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다."
몇 년 사이 충무로에서는 여배우 주연 영화를 찾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여성 캐릭터가 거의 나오지 않는 영화들이 스크린에 걸리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할리우드에서도 여배우들의 입지가 많이 축소됐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막연히, 경력이 쌓이다 보면 더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 여겼했다. 요즘은 좋은 작품이 있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나, 내가 찾아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최대한 열심히 하고, 배우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성 캐릭터가 소모되는 경우가 많아서 아쉽고 속상할 때가 많은데, 여성 캐릭터로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팬들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팔로우'를 하라며 영업하는 모습이 친근하다.
"나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더라. '배우'라고 생각하시고. 물론 연기로 선보여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팬들이 나를 궁금해 하니까 의무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자기 어필 시대기도 하잖나. 내 딴에는 소통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외화 '라라랜드' 얘기가 나오자 요즘에는 음악영화를 해보고 싶다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는 록스타가 되고 싶어 했다. 천우희가 록스타라니, 그야말로 변신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예전에는 현실 가능성이 없는 계획을 세웠는데 다 잘 이뤄졌다. 칸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갔고, 상 받고 싶다고 했는데 수상했다. 올해는 두 작품 정도 했으면 한다. '배우로서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이제야 빛을 봐서 힘들지 않았냐'고 하는데 '이게 뭐 힘든 일일까?' 싶다. 적당하게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배우로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 것도 가늠할 수 없으니까."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인턴 에디터 진선 sun27ds@slist.kr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