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희로 살 수 있어 행복했어요”
배우 송하윤(31)이 데뷔 15년 만에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2003년부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활동을 해온 그녀는 꽤나 오래 대중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쌈, 마이웨이’(연출 이나정 김동휘, 극본 임상춘)에서 오랜 연애에 힘들어하는 캐릭터 백설희를 맡아 뭇 남성들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며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 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카페에서 송하윤을 만났다. 여전히 “설희로 살았던 기억이 가득해요”라 말하는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쌈, 마이웨이’는 송하윤에게 있어 인생작과 다름없다. 물론 지난해 ‘내 딸, 금사월’에서 홍도/오월 역을 맡아 기대주로 급부상했지만, 본인에게 꼭 어울리는 캐릭터를 입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도 13%나 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종영이 서운하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많이 행복했어요. 그동안 드라마와 현실을 구별하면서 연기를 해왔어요. 그래서 신나게 연기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굉장히 공허하고 외롭다는 느낌을 받곤 했죠. 특히 ‘내 딸, 금사월’에서 오월이는 화내는 감정이 많아서 더욱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설희는 달랐어요. 그냥 32살 송하윤의 추억 같아요. 한 번도 캐릭터와 제가 분리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설희의 감정 하나하나가 제 삶이고 인생이었던 거죠. 아직도 너무 행복하고, 앞으로도 마음에 계속 남을 것 같아요.”
설희는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기보다 회사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입고 다니는 소박한 인물이었다. 촌스러운 비주얼과 스타일링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송하윤의 디테일한 연기력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이번에는 비주얼이 좀 심하긴 했던 것 같아요. 작품 끝나고 보니 입고 나왔던 옷이 4벌 밖에 없더라고요. ‘나 이래도 되나’ 싶었죠.(웃음) 더 촌스러워 보이려고 촬영 들어가기 두 달 전부터 머리 염색과 파마를 미리 해놨어요. 시간이 지나야 뿌리도 좀 올라오고 파마도 풀리니까요. 그런데 비싼 숍에서 해서 그런지 너무 예쁘게 돼 당황했어요.(웃음)”
극 초반부, 시청자들 사이에선 사랑에 상처 입고 휘둘리는 설희가 답답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설희를 향한 응원의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송하윤은 설희가 많은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까닭을 ‘위로’를 건네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도 그 위로를 받고 캐릭터에 이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설희를 보고서 많은 분들이 울고, 또 웃고 하셨던 게 바로 ‘위로’를 건네주기 때문인 거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아픔이나 상처를 받으면 애써 외면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하고 그 상처를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설희가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자신들의 아픈 기억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거죠. ‘그때 참 그랬지’ 하면서요.”
하지만 ‘걸크러시’로 대표되는 당당한 여성상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내 꿈은 엄마’라고 말하는 설희의 성격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전작에서 감정기복이 큰 캐릭터를 맡았던 그녀였기에 캐릭터 표현이 힘들진 않았을까 걱정이 들었다.
“설희는 사랑이 굉장히 많은, 사랑을 할 줄 아는 캐릭터예요.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게 꽤 진부할 수도 있어서 조금 걱정을 하긴 했어요. 그래서 가장 중점에 뒀던 건 동만(박서준), 애라(김지원) 많이 보살펴주고, 그리고 주만(안재홍)이를 많이 사랑하는 거였지요. ‘진심’이라는 건 언제나 감동이니까요.(웃음) 그렇게 진심을 다해 많이 사랑하다보면 설희라는 아이의 마음이 시청자 분들게 잘 전달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설희를 기억하는 그녀는 드라마 속 순수한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제 아쉽지만 ‘쌈, 마이웨이’는 종영했고, 이후로 계속 이어질 배우 송하윤의 행보를 위해 마음속에서 설희를 떠나보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송하윤은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보내야 하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 스스로도 설희를 하면서 느꼈던, 내가 만들어 놓은 숙제를 하나하나 씩 해결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제가 애써 잊으려고 하지 않아도 기억이 조금씩 흐려져 가듯이, 설희도 조금 잊혀 지지 않을까요?(웃음) 여운이 굉장히 긴 캐릭터라서, 딱 잘라서 ‘지금부터 안녕이야!’하며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 캐릭터’를 만난 덕분에 최근 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송하윤. ‘스타’로 한발짝 나아간 모양새지만, 그녀의 마음가짐은 예상외로 차분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우를 하면서 인지도를 얻고 싶었지만, 그건 연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한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시청자분들게 좋은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 밖에는 없어요. 오히려 저보다 친구들이 더 호들갑 떨더라고요. 만나면 저보다 더 흥분해서...(웃음) 근데 그런 부분들이 연기에 더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인기가 덤덤한 듯 말했지만, 송하윤에게 있어 15년이라는 긴 무명 기간은 분명 녹록치 않았다. 패기가 넘쳤던 20대를 지나, 이제 30대 원숙한 여배우로 성장한 그녀에게 지금의 관심은 굉장히 뜻깊은 선물일 것이다. 힘들었던 당시의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휴... 참 힘든 게 많았죠. 그런데 제가 무명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직업이든 20대라면 누구나 받는 설움을 저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일부러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왜 그랬지?’하면서 파고들기보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결될 일 아니야!’하면서 털고 일어나요.”
송하윤은 이제 바쁜 일도 끝났고, 다시 열심히 달려가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 중이라고 밝혔다. 평소에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는 그녀는 ‘집순이’처럼 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가 일 없을 땐 백수잖아요. 집에서 멍 때리고 가만히 있어요. 일단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집안일이에요. 제가 안 하면 어머니께서 하시는데, 제가 ‘쌈, 마이웨이’ 찍는 동안 집에 잘 못 들어가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집안일이 참 힘들어요. 하루가 훌쩍 지난다니까요.(웃음) 그리고 강아지랑도 잘 놀아주고 있고요. 천천히 다음 작품도 준비해 볼까해요. 이번에 시청자분들께 받았던 사랑을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해 드리고 싶어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