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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ug 05. 2017

[인터뷰] ‘칸느 안’으로 불리는 장르물 마에스트라

안은미



올해 하반기 블록버스터 영화 ‘군함도’의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가 여성 제작자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면 상반기엔 안은미(43) 폴룩스(주)바른손 대표의 활약상이 주목할 만했다. 장르물 ‘차이나타운’에 이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2연속 칸 국제영화제 진출, 가공할 팬덤 ‘불한당원’의 어머니로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전국이 폭염으로 지글거리던 8월 초 신사동 사옥에서 가슴 뜨거운 장르물 마에스트라를 만났다.


 

 

- 지난 5월 ‘불한당’ 언론시사 당시 영화담당 기자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았다. 앞서 칸영화제 초청 낭보까지 전했다. 모두가 흥행을 예감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변성현 감독의 트위터 글이 논란을 일으키며 흥행 참패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을 것 같다.

▲ ‘불한당’으로 심장마비가 오고, 심장병을 얻은 듯하다.(웃음) 보통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을 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몰랐다. 이 책(시나리오)을 받았던 게 4년 전이다. 투자는 됐으나 캐스팅에 1년이 걸렸다. 설경구 배우도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중간에 작품 하나가 엎어지면서 캐스팅 급물살을 탔다. 임시완은 군대 전 마지막 작품이라 결정에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진행은 나름 순조로웠다. 흥행에서도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 여겼다. 설화사건 때는 수습하느라 급급했다. 시대가 바뀌었던 거다. 과거 마케팅 방식은 매스미디어를 상대하면 됐는데 지금은 개인 대 개인으로 정보가 옮겨가고, 그 과정에선 어떤 것도 숨길 수가 없다. 해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몇몇 지점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고 지금도 안타까움이 많다.



- ‘저주받은 웰메이드 영화’가 될 뻔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불한당원들이 출몰했다. 강력한 팬덤이 영화계 안팎의 핫이슈가 됐다.

▲ 팬덤을 접하며 배우들도 못 믿어했다. 불한당원들이 직접 대관하는 데를 갔다가 그 규모와 열성도를 확인했고 나 역시 놀라웠다. 10월까지 ‘불한당’ 대관이 잡혀 있다. 겨울에 보는, 1주년에 보는 ‘불한당’은 어떤 느낌일까? 나 역시 궁금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 감독 연출 스타일이 이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게 만든 부분이 있구나 깨달았다. ‘불한당’엔 클로즈업 쇼트가 거의 없다. 거리두기를 하려 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유추할 수 있도록. 소위 N차관람 관객들이 그런 걸 깊게 읽어내려 주는 것 같다. 영화 해석이나 평을 보면 우리가 놀랄 정도더라. 이 영화를 질리지 않고 볼 수 있게 해준 힘이 됐던 듯하다.


 

 

- 쉬 잊히지 않는 인상적인 장면을 꺼내 놓는다면?

▲ 지난 6월30일 ‘댕큐 상영회’ 때 오랜만에 배우들이 모였는데 마치 개봉을 앞두고 무대 인사하는 기분이었다. 배우들이 올라가는데 절로 눈물이 나더라. 김희원 선배가 “우리 영화 잘된 영화라고 하는 게 맞는 거 같아”라고 말했는데 훅 와닿았다. 상업영화를 만들면서 남의 큰돈을 가져다가 쓰는데, 숫자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잘된 영화란 성취감을 그들이 내게 줬다. 19년 영화인생에서 인상적인 페이지다. 설경구 선배도 “내가 앞으로 몇 십년 동안 영화 한다고 해도 다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느와르 ‘차이나타운’은 2015년 비평가주간, 남성 버디무비 ‘불한당’은 올해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 받았다. 2연속 초청으로 ‘칸느 안’이란 별명이 생겼다.

▲ 영광이다. “어떻게 하면, 만들면 계속 칸 가니?”라고 물어보면 “취향이 저랑 맞나봐요”라고 농을 했다. 내가 제작한 영화들이라 모두가 소중하고 재밌다. ‘차이나타운’과 ‘불한당’의 공통점을 얘기들 해주는데 영화의 색감, 장르적으로 강한 지점, 그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액션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감정이었다. 두 영화의 인물들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다. 이를 센 표현으로 덧입혔을 뿐이다. 그걸 흥미롭게 보나보다. 가족, 친구관계 등이 나라별로 같으면서 틀릴 텐데 그 다름과 같음이 공감을 얻지 않았나 싶다. 나의 취향은 극단의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과 ‘차이나타운’이다.



- 편견이겠으나 여성제작자가 느와르 풍 장르물을 연이어 내놓는 점이 이채롭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 류승완 감독이 문자로 ‘불한당’을 칭찬하면서 “느와르 전문 되는 거냐? 그러다 인생 누아르 된다”고 준엄하게 조언한 적이 있다. 느와르, 장르물에 천착하기보다 “새 거였으면 좋겠다” “하나라도 달랐으면 좋겠다”란 마음으로 기획·제작한다. ‘불한당’은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과 ‘차이나타운’이 합쳐진 느낌이다. 뻔하고 익숙한 장면을 새롭게 표현해낼 때 너무 신났다. 제작 영화들이 늘 화제를 일으켜서인지 흥행을 꽤 한 줄 안다. ‘차이나타운’도 손익분기점을 살짝 넘겼는데 무지 많이 번 줄 알더라.(웃음)


 

 

- 1990년대 영화사 기획실 출신이다. 홍대에서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이후 제작자로 터닝해 했다.

▲ 98년 ‘여고괴담’ 1편이 끝날 때 시네2000에 입사해 기획실에서 8년간 일했다. 나오고 나서 2년간 쉬면서 홍대에서 카페를 오픈해 3개월 정도 운영해보니 ‘나랑은 안 맞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배운 게 영화일이니까 계속 해보자 싶어 벤처회사 영화사업 부문에 들어가서 ‘백야행’의 판권을 샀다. 그런데 1년도 안 돼 사업을 접으려고 해서 ‘백야행’ 때문에 제작사를 설립하게 됐다. 제작자로서 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상황에 등 떠밀려 시작하게 된 케이스다.



- 인기 아이돌 슈퍼주니어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2007년)과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 ‘백야행’(2009)이란 이질적인 작품을 연달아 선보였다.

▲ S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아이돌로 영화 만드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여겼다. 국내 수요가 있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너무 재밌을 거 같았다. 우연히 TV에서 본 슈퍼주니어가 주는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와 활기에 매료됐다. 당시 영화계 선배들한테 염려와 질책의 문자를 많이 받았다. 그때는 연기돌이 없었던 시기였다. 아이들이나 보는 영화란 편견과 폄하하는 시선에 갇혀 외면당하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재밌었던 영화작업은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이다. 모두가 신이 나서 작업했고 그때 많은 인연을 새로 맺었다.



- '백야행’ 이후 ‘은교’의 프로듀서를 맡아 화제가 됐었다.

▲ 나는 영화가 좋아서 일을 시작했다기보다 시작한 일이 영화였고, 자연스럽게 제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은교’는 ‘백야행’을 마치고 얼마 안 돼 제안을 받았다. 제작자가 현장에 나가 프로듀서를 해도 되나 망설였는데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현장에서 만난 정지우 감독님을 통해 영화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프로듀서와 연출자의 고유 역할 등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내겐 분기점 같은 작품이다. 연출자는 창작자이고, 어떤 결을 갖고 표현하려 하는지 프로듀서가 잘 알아야 그 영화가 가려고 하는 길을 잘 동행할 수 있음을 배웠다. 더불어 김고은이란 배우도 알게 됐고.


 

 

- 올해 가을 장동건 류승룡 주연 ‘7년의 밤’(감독 추창민)이 개봉하고, 9월부터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주연 ‘우상’(감독 이수진)이 촬영에 들어간다. 모두 기대작들이다.

▲ ‘7년의 밤’은 7년째 준비를 해온 작품인데 드디어 개봉을 앞두게 됐다. 정유정 작가의 방대한 원작이 영화화가 가능할까, 도전의식을 자극해 시작한 작품이다. ‘원작보다 좋은 영화는 없다. 다른 해석, 다른 영화가 있을 뿐’이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원작 마니아들과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지 개봉하고 나면 그 답을 조금은 알게 될 것 같다.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아버지가 한 사건에 휘말리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 ‘우상’은 한 번밖에 못 다룰 주제가 매력적이었다. 더욱이 한석규 설경구라는 ‘연기의 신’들이 한 화면에 만나는 꿈을 이루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외 적은 예산이지만 의미 있는 3편의 신인감독 영화를 준비 중이다.



- 제작자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은 무엇인가.

▲ 제작자는 무엇보다 소통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난 창작자가 아니다. 창작자인 감독과 작가가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거의 유사하게 알아볼 만큼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몇 년을 버티는 작업이니까 더욱 그렇다. 그래야 길을 맞게 가는지, 오류를 범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게 가장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 매년 바뀐다. 지금까지는 ‘필요한 영화인가’를 질문하면서 시나리오를 많이 봤다. 내가 계속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 이야기다. 시대가 변해도 통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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