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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Dec 01. 2017

[인터뷰] ‘반드시 잡는다’

 백윤식, 성격배우 좇은 연기인생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독특한 운율로 대사를 치는 순간, 스크린은 그의 지배 아래 놓인다. 노년의 배우가 누구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아닌 캐릭터 자체로 어필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백윤식(70)은 늘 특별한 존재감을 뿜어왔다. 평단과 대중은 그런 그에게 ‘성격파 배우’란 타이틀을 부여했다. 중년과 노년의 배우가 투톱을 이뤄 연쇄살인마를 좇는 추적 스릴러 ‘반드시 잡는다’(감독 김홍선·29일 개봉)에서 그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 파트너 성동일에게 “연기 늘었다” 칭찬


30년 전 해결되지 못한 장기 미제사건과 동일한 수법으로 아리동에서 또 다시 살인이 시작되고, 동네 터줏대감 심덕수(백윤식)는 사건을 잘 아는 전직 형사 박평달(성동일)과 의기투합해 범인을 잡으려 한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덕수는 세입자들에겐 저승사자와 같은 자린고비 집주인이지만 내심 정 많은 독거노인이다. 백윤식은 맞춤옷을 입은 듯 극 전체를 이끈다.


“좋은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담지 않았던 소재를 시도해서 반가웠다. 오토바이 추격, 뜀박질, 격투 등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는 겨울비가 내리는 밤에 3일에 걸쳐 액션장면을 촬영에서 추위 때문에 다소 고되긴 했다. 하지만 배우라면 그 정도의 고통은 당연히 참고 감내해야지 어떡하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시나리오 각색이 워낙 뛰어났다. 그의 지론은 책(시나리오나 대본)에 충실하자이다.

 

책을 세밀히 들여다보면 인물의 캐릭터를 형상화할 수 있는 부분이 다 눈에 보인다. 같은 역할이라도 자신이 하는 것과 다른 배우들이 표현하는 맛이 틀린 것도 모두 거기서 나온다.


“심덕수도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원작에 보면 6.25 때 인민군으로부터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어린 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질식사를 시켜버린 한이 맺혀 있다. 노년에 이르면 언제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 사람이 천년만년 살 수는 없으니까 주변에 피해 없이, 고통 없이, 아름답게 떠나는 걸 다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이 영화를 어르신들이 보면 많이 공감할 거다.” 


            



드라마와 스크린을 오가며 펄펄 나는 중견배우 성동일과는 첫 공연이다. 활동 영역과 ‘성격파’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맞닿아 있다.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 현장에서 액팅을 하는데 생활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친구더라. 편하게 가버리니까 애드리브도 느껴지질 않는 게 그 친구의 장점인 듯하다. 연기라는 게 리얼리티를 추구하지만 드라마적 리얼리티가 또 있다. 대사의 흐름이라든가 감정의 굴곡을 표현할 때는 또 다른 게 있다. 그래서 리얼리티만 가지고는 다 보여드릴 수 없는데 그걸 해내더라. 앞길이 창창하니까 ‘연기 늘었다’는 칭찬을 해줬다.”


성동일 뿐만 아니라 석조기둥이 딱 버티고 있는 느낌을 준 노련한 배우 천호진, 대단한 연기를 해내는 여배우 배종옥과 함께해서 현장은 늘 가슴 벅찼다. 



▲ 탤런트 시절 분야별 천재예술가 섭렵...배우생활 밑거름


1970년 KBS 공채 탤런트 9기로 입사해 김용건 한진희 이정길 등과 함께 훈남 연기자로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서울의 달’의 미술선생, ‘파랑새는 있다’의 백관장으로 특별한 캐릭터 소화의 대가로 인정받은 뒤 2003년 ‘지구를 지켜라’의 강사장으로 스크린에 상륙했다. 이후 ‘범죄의 재구성’ 김선생, ‘그때 그사람들’ 김부장, ‘싸움의 기술’ 은둔고수 오판수, ‘타짜’의 평경장, ‘관상’의 김종서, ‘내부자들’ 이강희에 이르기까지 성격파 열전은 쉼표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도 캐릭터 연기를 많이 시도했다. 자신을 ‘성격배우’라고 독려해가면서 연기했다. ‘TV문학관’ 같은 문예물이나 긴 호흡의 작품성 있는 드라마에서 회색도시의 고뇌하는 지식인상을 많이 했다. 감독 나운규, 화가 이중섭, 시인 이상화 등 각 분야의 천재적인 예술인들 역을 많이 했다. ‘제3공화국’에선 DJ를 연기했다.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려운 작업인데, 오늘날 배우생활 하는데 밑거름이 돼줬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영화계에서 캐스팅 제의를 해오지 않았을까 싶다.”


숱한 영화들 가운데서도 707만명을 동원하고 각종 영화제를 휩쓴 ‘내부자들’(2015)의 권력 설계자 이강희는 인생캐릭터로 꼽을 만하다. 국정농단과 적폐청산의 시대에 신호탄을 쏘아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엔 극중 사건들에 대해 ‘그런 게 있겠냐’ 했는데 나타났고, 어두운 부분들이 다 드러나서 다들 희한하다고 그랬다. 2016년부터 표면화되고 터지고 그러지 않았나. 개인적으론 편집 당하지 않은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나와서 다행스러웠다. 개봉판에선 편집을 왕창 당해 신문사가 거의 나오질 않았다. 이강희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다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라 아낀다. 분신과 같다.” 


            



▲ ‘배우 패밀리’ 기쁘지만 자식들 생각하면 안쓰러워


공교롭게 둘째 아들 백서빈이 주연한 ‘산상수훈’이 12월7일 개봉한다. 장남 백도빈, 며느리 정시아 모두 연기자인 ‘배우 패밀리’다. 손주인 준우와 서우는 예능프로에 출연해 셀럽이 됐다.


“나야 배우 패밀리가 좋은데 아이들은 ‘누구의 아들’로 비교당하면서 불편하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하는데 배우로서 더 손해를 보는 듯해서 안쓰럽다. 도빈이와 서빈이의 경우 처음엔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본인들의 의지가 강하고 반듯해서 어쩔 수 없더라. 독립적으로 자기 인생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거니까. 간혹 시아에게 ‘저런 보물(준우와 서우)을 줘서 고맙다’고 얘기하곤 한다. 와인을 즐기는 며느리로 인해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와인과 맥주를 가볍게 마시기도 한다. 전에는 전혀 없었던 풍경이다.”


배우를 해온지 47년이 됐다. 대가의 연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포커페이스에서 오는 무표정의 의외성’을 말하는데 무표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내면이 구축돼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집중하게 된다. 연기는 폭이 워낙 넓은 분야라 끝이 없다. 계속 발전적으로 가야하는 직업이다. 시류에 맞는 스타일이 나와야한다는 건 없을 거 같다. 작품이 주어지면 멜로든 스릴러든 거기에 걸맞게 소화시키면 된다.”


 

사진= NEW 제공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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