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여행
시를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섬진강과 시골 포구를 방황하던 젊은이는 전업작가가 되어 그가 떠돌던 길과 포구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 2003년 출간된 포구기행과 15년 만에 다시 쓴 이 책을 통해 곽재구 시인은 해안 마을과 섬의 지명에 담긴 아름다운 뜻과 정감 어린 풍경을 그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강화도를 돌아 동해안의 화진포, 강릉 정동진 묵호 그리고 제주의 서귀포까지.. 포구와 섬들을 지나 슬픔의 바다 팽목항에서 시인은 깊은 눈물을 떨군다.
젊은 날 걸었던 포구와 길을 다시 걸으면서 중년의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년 겨울, 이 책에도 소개된 정동진을 20년 만에 다시 가본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지도를 펴놓고 서울에서 동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면 닿는 곳, 정동진(正東津)이라고 불린다는 그곳은 젊은 날 연애 좀 한다는 연인들의 필수 코스였다. 관광객을 플랫폼에 뿌려두고 떠난 열차 너머 정동진은 더 이상 내 기억 속에 있는 바다 옆 작은 기차역이 아니었다. 역 주변 좁은 골목은 수많은 모텔, 카페, 홍게 라면을 파는 식당들이 내건 원색의 간판들로 빼곡했다. 해변에는 오래된 열차를 개조해서 만든 열차 박물관이 모래바람을 맞으며 길게 꼬리를 늘이고 있었고, 바위산 위에 지은 대형 호텔이 거만하게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람선 모양의 호텔은 마치 쓰나미에 밀려왔다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난파선 같았다. 겨울이었음에도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 였고 고요와 평화는 찾을 수 없었다. 그토록 낭만적으로 기억되던 바닷가가 도시 변두리에 급조해서 지어놓은 놀이공원처럼 바뀐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황급히 딸아이 사진을 몇 장 찍어 주고 나서 도망치듯 정동진을 빠져나와 기억 속 사진들을 지워 나갔다.
맛집과 펜션을 검색하고 최대한 빨리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는 우리들의 여행과 다르게 시인은 지도에서 마을의 이름을 먼저 살피고 여정을 떠난다고 한다. 시천 찬샘 화지 샘골 덕교 명상 와온 달천 반월 청학 봉정처럼 마을의 이미지가 꽃처럼 피어나면 마을을 찾는다고 하니 역시 시인이다. 산에 터널을 뚫고, 골짜기 위에 다리를 놓아 만든 고속도로로 여행하고 네비가 알려주는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시골 국도를 달리면서 마주 하게 되는 소박하고 평화로운 산과 그 산을 품에 안고 흐르는 강의 정경을 놓치게 된다.
이제는 산을 뚫고 만든 고속도로를 통해 대관령을 넘어 가지만 옛 대관령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곳곳에 낙석을 조심하라는 경고 표시가 있고 굴곡이 심해서 자칫 브레이크가 파열되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중간중간 갓길에 모래언덕을 만들어 두기도 하고, 대형 화물차가 만든 스키드 마크가 오래된 도로 여기저기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눈이나 안개가 심한 날이면 목숨을 걸고 운전해야 했지만 대관령 휴게소를 지나면 어느덧 산 아래로 동해 바다와 삼국시대 하슬라라는 신비한 이름으로 불리던 강릉이 펼쳐진다. 햇살에 반사된 바다의 파편이 산 아래로 펼쳐지면 바다가 그리워 달려온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속도를 늦추고 바다로 향했었다.
지금은 LED 등이 환하게 설치된 터널 여러 개를 통과하면 강릉 시내에 바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다른 차들을 최대한 앞질러 대포항에 도착해서 회와 소주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젊은 날 고민했던 것처럼 시만 써서는 밥을 먹고살 수 없기 때문에 수필을 쓰고, 잠언시집이나 여러 시들을 엮은 편집 시집을 발간하기도 한다.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지만 시인은 왠지 가난해야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고, 젊은 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시인의 글은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의 시를 암기하는 숙제가 있었다. 한 명씩 차례로 불려 나와 외운 시를 낭독하고 틀리면 손바닥을 맞았다. 전날까지 몇 번이나 외우고 연습했지만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나면 눈 앞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한 줄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창피를 당하곤 했었다. 시가 싫었고 시조는 더 싫었다.
시험과 숙제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인지 도서관에 가면 한 두 권씩 시집을 빌려오곤 한다. 일단 시집의 부피가 작으니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 좋고, 행간의 간격이 넓어 눈의 피로도 적다. 무엇보다 몇 줄 안 되는 시를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놀라운 비유와 단어를 사용했는지 경외감이 들 때가 많았다. 소설책 한 권을 읽고 나서 느끼는 감흥을 단 몇 줄에 담아낸 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 엽기적 이게도 그 시인의 뇌를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한때는 집 근처 도서관에 있는 시집을 모두 읽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늘 그렇듯이 작심삼일이라 지켜지지는 않았다.
나 같은 이공계 출신은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뭔가를 발견하게 되면 “멋있네” “아름답다” 이 정도가 입에서 나오는 감탄사의 전부지만 시인들은 그들이 마주하는 꽃
나무 석양 일출과 일몰, 바람과 파도, 태양 달 별 같은 일상의 모든 사물을 새로운 단어로 채색한다. 무엇보다 시를 읽다 보면 오후의 햇살 아래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세상에 대한 근심과 잡념들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가끔 길에서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면 어른들을 따라 해서인지 대화가 거칠고 욕을 많이 한다. 아이들이 많이 쓰는 존나라는 단어의 어원은 민망하게도 내 어릴 적 남성의 성기와 연관된 강도 높은 욕에서 유래되었다. 지하철에서 예쁜 아이들이 ‘존나 잘생겼어’ ‘존나 잘해’ ‘존나 화나’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 것을 보면 아무리 그 의미가 변했다 하더라도 그 욕을 만들고 남발했던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의무적으로 한시를 외우게 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시험을 보고 점수를 따려는 목적이 아니라 언어와 감정을 순화하기 위해 좀 더 아름다운 시와 시인들의 글을 가까이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