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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_完州行步37

by badac

‘소녀들을 위한 페미니즘’과 ‘비혼여성 귀농귀촌 지원센터’


이번에도 제 가게 이야기입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고 (무려 마음의 준비도 아직입니다) 확신도 없지만 우선 동네방네 떠들어야 말이 일을 만들고, 일이 사람을 부르고, 사건이 생기고 어쩌고저쩌고. 저는 서점을 차릴 겁니다. 책을 팔 거고요. 만화방 라면과 사이다 같은 간단한 음식도 팝니다. 만들기 귀찮으면 근처에서 커피와 떡볶이, 먹을 것들을 사와서 먹는 상차림 서비스도 좋겠네요. 직접 맛있게 만들 자신은 없습니다. 제가 읽고 좋아하게 된 책을 골라서 들이고 각종 귀여운 잡화들을 떼다 팔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생활을 지켜보고 조용히 응원하는 모임이 생겨도 좋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기록하는 생활글쓰기를 함께 시작해도 좋겠습니다. 책방 이름은 ‘걸어서’입니다. 책이 많이 팔려서 월세도 내고 쌀과 커피, 떡볶이도 걱정 없이 사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가게 자리도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 곧 인연이 닿겠지요.


한켠에는 소녀들을 위한 페미니즘 섹션을 마련할 겁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의 고단함을 미리 알려주며 겁먹게 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모를 수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여성혐오 범죄와 공기처럼 익숙한 미묘한 차별. 거리에서든 학교에서든 직간접적으로 성추행을 경험했을 겁니다. 버티는 힘을 기르는 수밖에요, 함께 싸우는 수밖에요. 저 역시 부족하고 공부해야할 게 많아서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과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더 시끄럽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성범죄에 준하는 행적을 치기어린 장난이라고 가볍게 넘기는 일이 2017년에도 실제로 벌어집니다. 물론 모르고 실수하는 사람도 있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몰라도 되는 무신경함과 신경쓰지 않도록 훈련된 무신경함은 둘 다 문제적이지요. 일상생활 속 아슬아슬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하고 자책하고, 성별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을 읽어내기 시작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평할 거리가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변화, 내 삶의 변화가 작은 실천에서 비롯되듯 그 불편을 똑바로 바라보고 바로잡는 것이야 말로 정의가 아닐까, 내가 해야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의 평안을 위해서라도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그 사랑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고, 성별이 삶의 영역을 제한하고 억압하지 않는 것. 그래서 나이, 인종, 출신지역, 직업, 삶의 형태 등이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세상이 제가 바라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가게 앞에는 간판을 하나 더 달 건데요. ‘비혼여성귀농귀촌지원센터’입니다. 귀농귀촌캠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시에서 지역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비혼여성들이 꽤 많고 실제로 귀농귀촌을 한 비혼여성들이 있습니다. 모든 귀농귀촌인이 알아서 집과 일을 구하고, 지역을 만나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하겠지만 혼자서 이를 감당해야할 비혼여성에게는 특히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해요.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얻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누군가를 만날 때나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신경써야하는 안전에 대한 부담감, 경제적 불안함, 부부나 가족들과 비교되는 불편함, 지역사회의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에 대한 거부감 같은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겠지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만 필요하지 않을까, 이름을 붙이면 뭐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귀농귀촌을 떠올리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누구든 먼저 내려와 살고 있는 선배귀촌여성을 만나고 싶다, 라고 하면 함께 만나 이야기하고 동네친구가 됩시다. 라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정도로요. 그러다 구체적인 일을 꾸미게 된다면 이주를 고민할 때 가장 큰 걱정은 주거와 일지리라고 하니 몇 달이라도 편히 지내면서 적응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누군가의 집 방한 칸도 좋겠고, 모여살 수 있는 쉐어하우스도 좋겠네요. 일이 필요한 사람과 사람이 필요한 자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겠고요. 저는 여전히 이번달도 지난달처럼 무기력하고 우울하지만 아주 조금 이런 생각을 하며 기뻤습니다. 지역으로 오고 싶어하는 도시 비혼 여성들이 왜 오고 싶은지, 어떤 걸 필요로 하는지 조금 더 조사해봐야겠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친구들이 올 테고 그러면 제 심심함도 조금 가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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