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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실재 Aug 30. 2024

이사 (1)

뒷산연대기


0. 갑각류

   소라게를 닮은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하고 있다면 그들은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까.

   인간이란 부드러운 내피 바깥에 '집'이라고 불리는 콘크리트 외피를 가진 갑각동물. 그들은 가용할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쌓아두기 위하여 더 커다란 껍데기를 갈망하며, 거래하거나 빌림으로써 원하는 껍데기를 얻지만, 때로는 빼앗거나 뺏기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그들은 껍데기를 지닌 채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사'란 더욱이 중차대한 사건이자 삶의 분절점이 된다. 껍데기를 벗어내지 않는 한 주변 환경을 선택할 수 없는 그들은 새로운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스스로를 재조직하며 적응하기 때문이다. 간혹 스스로의 변화를 부정하며 힘을 사용해 환경을 재조직하는 이들도 있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러한 다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1. 꼭짓점

   내가 태어나 살던 곳은 <서울시 은평구 증산동>, 봉산의 동쪽이다. 봉산은 내게 항상 뒷산, 그 너머는 미지의 세계였다. 높진 않지만 기다란 그 산을 풀숲을 헤치며 넘는다는 것은 도시 소년에게 그리 익숙한 일은 아니었고, 산길을 지나다 마주친 들개떼에 진땀을 뺐다는 엄마의 사연은 봉산의 심리적 해발고도를 높였다. 봉산은 내 세계의 한 변이었다. 남쪽으로 가면 경의선 철길이 나온다. 철길 아래의 지하보도—우리가 흔히 토끼굴이라고 부르는—를 통해 한참 돌아갈 수야 있지만, 그것은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그 너머에 큰 이득이 있지 않는 한 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경의선은 내 세계에서 또 다른 한 변이었다.

   변이 변을 만나 꼭짓점을 형성한다. 꼭짓점에 기대어 사는 것은 익숙하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친구들과 길을 걸을 때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구석을 선점하는 것이었다. 에너지의 방향이 반의 반으로 줄고, 중심을 잃어도 받쳐 줄 벽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정시킨다. 그래서 증산동, 내 세계의 경계지대에 강한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인지 모른다.



2. 사잇길

   혹자는 말한다. 우리는 우주를 탐험하기엔 너무 이르고, 지구를 탐험하기엔 너무 늦은, 참으로 애매한 시기에 태어났다고. 맞는 이야기다. 구글 지도로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섬 하나를 찍어보자. 아마도 유럽의 누군가가 붙였을 이름이 전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인간 본연의 개척자적 욕망은 오로지 할리우드 SF 영화 속에서나 충족될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빠가 물려주신 힘이 있다. 아빠는 토목설계사다. 안방이자 아빠의 사무실이기도 한 그곳에 들어가면 숱하게 보이던 것이 도로와 터널, 교량의 설계도면이었다. 아빠의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꼭 주변 입지의 환경에 대해 한마디를 던지셨고 당신이 설계한 도로를 자랑하기도 하셨다. 차선 하나하나 이유 없이 그린 것이 없었다. 도시의 바닥이면 당연히 깔려있는 아스팔트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길의 발생이 가지는 의미는 연결되는 두 것의 사이에서 서로를 열렬히 원하고 있음이다. 여느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소망하고 갈망함에서 그 깊이가 우러나온다. 사람의 손발이 닿은 길도 파고들 이야기로 넘치는 미개척지일 수 있다. 그래서 어릴 적의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탐험하며, 아빠처럼 나의 길을 연결하고 싶어 했다. 무작정 골목으로 나서다 담벼락 사이에서 새로운 지름길을 발견해 내는 것이 나의 놀이였다. 그리곤 이름을 붙였다. 포장도로는 아스팔트색을 닮은 보라색 색연필로, 그리고 내가 발견한 사잇길은 주황색 색연필로, 종이에 그려 나의 지도를 갱신했다. 흰색 외벽의 빌라 주차장에 숨겨진 계단을 통해서 윗길과 아랫길을 넘나들 수 있음을, 변전소 앞 친구네 집으로 빠르게 가려면 꽃게처럼 몸을 옆으로 하고 비좁은 길을 지나야 함을, 어느 시각에 교회 주차장 앞길로 가면 담 위로 사람들을 내다보는 허스키가 있음을, 그리고 집의 남쪽 내리막길로 가면 두렵고 신비한 폐가로 통하는 계단이 있음을, 이곳을 그저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장소라고 믿는 어른들은 쉬이 모를 것이다. 오직 탐험가가 되고 싶은 아이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증산동은 그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간직한 신대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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