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실재 Sep 03. 2024

이사 (3)

뒷산연대기


6. 조경수


   '인위'란, 인간이 의지를 갖고 행하는 일을 포괄하는 단어이지만 뉘앙스는 꽤나 부정적이다. 옛 중국인들은 '거짓'을 뜻하는 문자(僞)를 만들기 위해 '사람 인(人)'과 '할 위(爲)'라는 문자를 합쳤다. '인위'였다. 거짓은 보편적으로 악으로 치부되는데, 이상하다. 분명 우리는 인간이 행하는 것들을 혐오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다시 돌아온 증산동은 인위적인 공간이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30층짜리 구조물, 반복되는 양식, 그 사이를 칼 같이 나누는 차도와 정결한 인도, 방 창문 밖에서 지지대에 업힌 채로 나의 입주를 기다리던 어린 조경용 수목이 이를 표상한다. 너무도 완벽해서 그보다 더 부자연스러울 순 없었다. 나는 이사 올 때 당시에 느낀 미묘한 불쾌감의 원인을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부여한 거짓된 자연스러움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창 밖의 나뭇가지에 푸른 잎이 돋아나 시야를 가득 채울 때쯤, 이 심리가 인위적인 것 전체를 향함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거짓되든 아니든, 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와 그것의 그림자가 장롱 위에 그려내는 형상은 누가 뭐래도 실재했다. 공교롭게 나의 생일 즈음에 풍성해지는 그 나무는 매일 같은 나무였지만 매일 새로운 모습을 갖고 있었고, 매일 새로운 소리와 자신을 찾아오는 매일 새로운 손님들을 보여주었다. 고달픈 일이 있는 날에도 방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위로되었다. 창은 닫혀있지만 나무가 있음으로 인해 창을 넘어 느낄 수 있었기에 나무는 연결당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연결시켜 주는 무언가였다. 의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목적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위로는 거짓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느끼는 위안의 감정을 애써 부정하며 의도를 측정하고 실체 그대로를 보지 않으려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았다. 누군가가 가진 —아마 따뜻했을— 의도에서 비롯된 그것을 만끽했고, 이파리가 떨어진 이후에도 줄곧 봄과 여름을 향한 기다림으로 창 밖을 채웠다. 인위적인 것은 때론 사랑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인위에 불쾌를 느낀 것일까. 추억할 공간을 잃었다는 실망감이나 잃게 한 것에 대한 단순 원망감으로만 표현하기엔 그 이상의 것임이 확실했다.




7. 출입문


   외계의 소라게 종족은 우리를 그들과 같은 갑각동물로 정의 내렸다. 나와 타자 사이에 경계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는 동물로, 세포가 세포막을 이루고 사람이 집과 나라를 갖듯이, 벽을 세우는 행위는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야 한다. 외계의 소라게는 소라게중심적 사고의 오류를 범했다. 우리는 벽뿐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종이다. 스스로를 가두고자 하는 욕구뿐 아니라 스스로와 타자를 잇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그래서 상충되는 두 가치를 함께 만족하기 위해 '문'을 발명했다. 그것이 인간을 거짓말쟁이로, 인위적인 것을 거짓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게 하는 근원이다. 문은 태생적으로 기만하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벽처럼 생겼지만 길이 될 수 있고, 길인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벽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벽의 가능성과 길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문은 거시세계에서 두 상태의 양립을 가능케 하는 양자역학의 화신이 실로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문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에너지의 출입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안정감 또는 해방감을 얻으며, 그러한 기만술을 벌임으로써 진화를 가속시킨 종이다.


   그리고 그날은 '문'에 의해, 증산동이 두 개의 세계로 쪼개진 날이었다. 안과 밖.


   집에 돌아오던 길에 보인 것은 아파트 단지마다 후문에는 철제 펜스와 유리 문이, 정문에는 철제 문이 세워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웅장한 문주가 마치 심각한 공간의 낭비를 저지르고 있다는 양 효율적으로 설계된 작은 출입문이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입주민 전용의 전자 열쇠가 있어야 했다. 외부인이 자꾸 들어와 공용시설을 쓴다는 이유로 출입문을 설치하게 되었으니 입주민의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공지가 승강기 게시판에 걸려 있었다. 정문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아파트 뒤쪽 빌라에 사는 아이들이 집에 가는 방법은 이제 직선의 도로를 따라가다 직각으로 회전하여 다시 직선의 도로를 따라가는 방법 하나뿐이었다. 수려하게 꾸며놓은 구불구불한 산책로와 놀이터, 편의시설은 오로지 입주민의 특권이었다. 예전에 놀이터가 있던 자리는 문 안쪽에 있었기에 바깥의 아이들은 더 이상 놀이터 없이 배회해야 했으며, 안쪽의 아이들은 안쪽의 아이들만 만나고 놀 수 있었다. 세계가 좁아졌다. 물론 입주민들에게는 공간을 점유할 권리가 관리비를 지불한다는 명목 하에 있다. 하지만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깥의 아이들은 가로지름이 주는 즐거움을 알까?' 심연에 있던 무형의 불쾌가 출입문으로서 실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불쾌는 이사 올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새로 생긴 문 자체가 근본적 원인은 아닐 것이다. 문은 분명 이점이 있다. 벽의 속성은 봉산과 경의선처럼 나를 외부로부터 안정시키고, 길의 속성은 아빠의 길과 나의 사잇길처럼 나를 외부를 향해 욕망하게 했다면, 문의 속성은 두 이점에 대하여 나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어 나를 나로서 있게 만든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와 우리는 관심 주고 싶은 사람을 문 안쪽으로 초대한다. 하지만 관심 주지 않는 대에게 나의 문은 벽이다. 가능성의 화신이 고작 하나의 유일성으로 붕괴되고 관측된다. 바깥의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그들에게 단지 출입문은 안정도 욕망도 불가능한, 길을 가장한 영원한 벽이었고 집단적 무관심의 선언이었다. 불쾌의 기원이 거기에 있었다. 무관심. 심도 깊은 논의 없이 이방인, 불량 청소년, 잡상인, 노숙자들을 문 밖으로 다 내쫓고 A4용지의 글귀 하나로 입주민의 양해만 구하고 나면 내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길을 가장한 벽 안에서 영원히 '변화 없이' 행복히 살 수 있을 것이란 자기기만은, 바깥의 것, 실지로는 스스로가 속한 지역의 주변부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했다. 이사오던 당시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러한 무관심의 지표들을 여럿 발견했다. 펜스 경계를 따라 심어진 가로수들이 안팎의 시야를 서로 가리며 위화감을 만들어냈고, 아파트의 명패에는 '증산' 대신 철길 너머의 이름 있는 업무지구인 DMC의 알파벳 석 자가 걸렸다. 아파트의 가장 높은 층에는 브랜드의 로고가 큼직하게 걸려있어 멀리서 바라봤을 때 그들이 지역의 전부가 된 것 마냥 저층의 빌라들은 시야에서 무시되었다. 나의 과거와 대화할 수 있는 흔적이 저 주변부에 있음을 알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내 세계의 경계지대에 돌아왔지만 다른 경계만이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8. 매립지


   사람들은 제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그것이 영원히 없어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다. 벽을 놓고 벽 뒤에 잊고 싶은 것, 잊어야 하는 것들을 던져버린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넘치면?


   나는 하늘공원을 좋아한다. 더운 바람이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무렵, 서울의 서쪽 경계에 있는 그곳에 찾아가면 지평선 전체에서 노랗게 익은 억새를 볼 수 있다. 억새축제가 열리는 10월 중순에 가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초가을의 이른 아침에 가보기를 권한다. 그 거대한 고원 위에 꼭 올라가 보자. 오로지 억새와 나만이 시야에 남겨진다. 그러다 보면 억새와 내가 아닌 다른 것은 잊혀져야 하는데, 문득 이 사실이 떠오른다. 이곳은 평평했던 모래섬 위에 쓰레기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산이었고, 또 그 위에 얇게 흙을 덮어 만들어진 고원이다. 아름다운 억새밭 아래에 쓰레기산이 숨겨져 있다니,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명백하다. 15년 동안 서울시민 천만 명이 버렸던 모든 것이 나의 발아래에 있었다. 잊고 싶은 것과 잊어야 하는 것들. 이 북받쳐 오르는 감각이 여기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곳에서는 내가 잊고 싶은 감정과 생각들을 아무리 외쳐대도 발아래에 있는 것들에 비하면 티끌만큼도 아니기에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다.


   쓸려내려 간 흙더미 아래에서 80년대의 라면 봉지와 음료캔 따위가 밖으로 노출되어 산책하던 인근 주민이 충격을 받았다는 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친환경 공원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밑에 쓰레기가 남아있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주민의 인터뷰, 흙으로 가리면 쓰레기더미가 감쪽같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듯 공원 관리자에게 재정비를 촉구하는 기자의 촌평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모습에서 읽힌 의지는 우리가 무언가를 외면하려고 할 때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러나 쓰레기의 실존은 지금, 바로 여기서 증명되고 있었다. 아빠가 버린 첫사랑의 연애편지, 할아버지가 미군부대 앞에서 핫도그 가게를 정리하며 버린 재료와 집기들이 이미 메탄가스가 되어 파이프를 타고 올라와 주변 상암동의 주택과 경기장, 주요 방송국 스튜디오들을 여름에 시원하게 하고, 겨울에 덥히고 있었다. 애써 우리가 무관심으로 잊으려 했던 것들이 우리의 관심사를 만들어 퍼뜨리는 방송사를 유지하게 한다니, 역설적인 사실이다. 쓰레기산을 기억하는 할머니는 증언하신다. 악취와 매캐한 연기가 철길 건너에 있던 증산동의 하늘까지 뒤덮었다고. 온갖 종류의 파리떼들이 망원동과 홍대 인근까지 들끓고 화재와 오염수 유출이 계속 반복되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차마 잊고 있던, 도시의 끝자락에 버려두었던 쓰레기의 존재를 인정했다. 무관심은 언제나 영원하지 않았다. 아무리 흙으로 덮고 예쁘게 꾸며보아도, 이 산은 수백 년이 지나도록 분해되지 않고 아마 같은 높이의 건물들보다 더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경계 안쪽의 것들보다 끈질길 것이다. 무관심으로 가장한 불안, 공포, 우울, 분노, 수치의 매립지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항상 우리를 따라와 직면할 수밖에 없는 시련을 안겨다 주곤 했다.

작가의 이전글 이사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