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시바'를 느낀 하루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by 조재현

2020/01/01
새해 첫날부터 바빴다. 호스텔의 스텝에게 경찰서를 물었다. 그녀는 구글에서 주소를 찾아 어딘지 가르쳐줬다. 지도에서 어느 정도 확인하고 포스트잇에다가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 나의 사정을 러시아로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두장의 포스트잇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겠지.

나갔는데 왠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영어를 모른다면서 거절하는 것이다. 묻는 걸 포기하려는 찰나 인상 좋게 생긴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지나가는 것이다. 영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바디랭귀지를 하면서 포스트잇을 보여줬는데 아저씨께서 영어를 잘하시는 것이다. 내 사정을 듣더니 내가 가는 길이 경찰서 가는 게 아니라며 같이 가자고 하신다. 괜찮다고 하니 자신들도 산책 나온 거라며 도와주시겠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가는 길에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깐 아저씨께서 엄청 반가워하신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옛날 일제시대 때 연해주에서 사시다가 중앙아시아로 넘어온 한인이라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공주 출신이며 자신은 'lee'씨라고 한다. 나도 엄청 반가웠고 신기했다. 아픈 역사 때문에 허허벌판으로 넘어온 것이 한편으로는 슬펐다. 자신이 작년에 서울에 놀러를 가셨고 올해 여름에 부인분과 한국에 또 놀러 가신다고 한다. 한국에 친구가 있는데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을 보여주신다. 많이 신기했다.

30분 정도 걸어서 경찰서로 왔다. 그런데 문이 잠겨있다. 오늘이 새해 첫날이라 경찰들이 논다고 한다. 아저씨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경찰 확인서가 없으면 보험금 받을 때 복잡해지는데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걸어 나와 부부와 헤어졌다. 나를 도와준 아저씨와 아줌마가 너무 고마웠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진을 같이 못 찍어서 안타까웠다.

돌아가는 길에 통신사 가게 하나가 문을 열어서 들어가 휴대폰을 샀다. 15만 원 정도 하는 삼성 보급폰 하나를 샀다. 숙소로 돌아가서 필요한 어플들을 깔았다. 그런데 카톡이 문제를 일으킨다. 한국폰으로 인증을 받으라고 해서 한국 심카드를 꽂았는데 심카드가 작동을 안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외폰은 통신사에 등록을 해야지 사용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몇 시간을 씨름하다가 결국엔 카톡 하는 것을 포기했다. 한국 돌아가면 카톡 다시 해야지. 이제 저한테 카톡 해도 답장 못 합니다.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는데 경찰 확인서가 없으면 동행인 진술서와 출입국 도장이 찍힌 여권 부분,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적사항이랑 관계, 사건 경위를 적으면 된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대훈이에게 또 부탁했다. 대훈이는 흔쾌히 해주겠다고 한다. 미안하면서 고맙다. 저녁에 만나서 써주고 같이 밥 먹기로 했다. 은조 누나도 오신다고 한다.

저녁이 돼서 둘이 왔다. 대훈이가 진술서를 자세히 적어줬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대훈이가 추천한 푸드코트로 향했다. 둘은 음식을 시켰고 나는 점심을 늦게 먹어 맥주만 시켰다. 셋이서 별에 별 얘기를 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기 싫었다. 사실 오늘 밤에 모스크바를 떠야 한다. 2시간 정도 얘기를 하고 헤어졌다. 은조 누나는 조만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신다고 해서 또 만날 것 같고, 대훈이는 이제 보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좋은 추억 많이 쌓아서 고마웠다.

대훈이와 은조누나


짐을 어느 정도 싸고 기차 출반 1시간 반 전에 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도착했는데 기차를 타는 곳이 헷갈리게 되어있었다. 몇 번을 뺑뺑 돌다가 출발하기 20분 전에 찾아 표를 뽑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뛰었다. 떠나기 5분 전에 들어왔다. 심장 쫄려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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