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기술학교 뉴스레터 제삶지대 60호 2021. 9.17. Fri
오늘의 BGM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OST - 사진 속의 기억들
독자자님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나요? 전 얼마 전에 휴대폰 용량이 간당간당해서 중복되는 사진과 영상을 비우려 휴대폰 갤러리를 클릭했다가, 되려 시간 여행을 하고 시간을 훌훌 다 써버린 적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제가 좋았던 순간들을, 전문적이진 않지만 최선을 다해 죄다 사진으로 남긴 걸 보면 ‘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휴대폰 갤러리에 고화질로 쉽게 사진을 꽉꽉 채울 수 있게 된 날이 온 게 꽤 최근이란거 아시나요? 10년도 더 된 일인데요, 스마트폰 훨씬 전 LG에서 만든 ‘디카폰’이라는 이름의 휴대폰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꼭 휴대폰마다 연예인이 광고를 했고, 휴대폰 별명으로는 그 연예인의 이름을 붙였어요. 그 디카폰은 무려 ‘김태희폰’이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광고 카피... “환상이지? 300만 화소야”
지금은 거의 모든 휴대폰이 ‘스마트폰’이고, 이 중에서는 내장 카메라가 1억 화소를 갖춘 기종도 있거든요. 그러니 그 때 휴대폰 사진 화질이 얼마나 별로였을지 상상가시죠? 이후로 얼마간 내장 카메라를 내세우는 휴대폰마다 500만을 넘지 못했지만, 휴대폰으로 피사체가 분간이 가능한 사진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휴대폰 내장 카메라도 좋아지고, 카메라 자체의 기능도 정말 좋아졌어요. 휴대폰을 꺼내고, 버튼 한번 누르면 눈앞에 있는 순간을 어느 누구나 쉽게 포착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되었어요.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인화까지, 이제는 만 하루도 걸리지 않는 사진 완성의 주기를 보면서, 보다 찍기 어려웠고 결과물을 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과거에 비해 누구나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의미가 좀 퇴색했나?’싶기도 했는데요.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독자님이 정의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사진만이 가지는 의미가 있으실까요? 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날로그를 거쳐 디지털의 시대가 와도, 아무리 기술 접근이 쉬워져도, 사진보다 영상의 입지가 세져도, 사진은 사진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진만의 의미와 매력이 있다 생각해요. 소비하는 방식이 어려웠을 시절, 어려웠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도전하는 재미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의미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영상도 찍기 쉬워진 이 시대에 제가 사진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사진의 편리성 때문도 있겠지만 사진만의 의미가 있기 때문도 있어요. 제 생각에 사진에는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담겨있는 것 같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마치 영화보다 책을 읽을 때 더 재밌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 책 좋아하는 친구가 해리포터를 영화로 다 보고도 책으로 읽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영화로도 나왔는데 왜 또 책으로 읽어?’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책이 더 재밌어’ 그러더라고요. 이유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영화는 자기가 생각을 못 하게 한대요. 장면 장면을 이미 다 뚝딱 만들어서 주니 상상하며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놀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는 거죠.
제가 말했던 ‘사진의 힘’도 같은 맥락이에요. 사진에는 영상과 같은 움직임이 없잖아요? 소리도 없고, 어떤 연결된 시간의 한 지점 이에요. 상상할 필요 없이 앞뒤 상황이 그대로 다 그려지는 영상보다도, 단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 사진이지만 주변의 온 시간을 한 장에 모아 놓은 사진만이 자극할 수 있는 머릿 속 한 지점이 있어요. 기억 속으로 다이빙하게 하는 그런 포인트요.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사진은 우리가 가장 쉽게 제작자의 위치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술의 영역이라고요. 각자마다 ‘예술’이라고 부르는 기준들이 있겠지만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의미는 ‘내 삶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카메라를 선택한 거라고 봐요. 그리고 그 사진찍는 행위가 이전보다 쉬워졌기 때문에 우리가 전보다 더 ‘거침없이 삶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존재’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빠르게 시간이 흐르는 이 시대, 이리저리 치이는 하루 중에 언제든 손바닥 크기의 화면 속 사진첩을 열어 잊었던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는 우리. 가끔은 사진을 보며 스스로가 지나온 시간들 속을 천천히 유영하며, 존재의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고 짙은 추억에 잠기기도 하지요.
오늘은 독자님만의 날들, 혹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셀 수 없을 만큼의 사진들을 남겨왔던 지난 날들을 들여다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마 즐거운 시간이 될지도 몰라요. 저는 추석을 맞이해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휴대폰의 제일 첫 번째 사진 2016년부터 여행을 해 볼 생각입니다. 더 진득하게 삶을 여행하고 기록할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요!
인생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인 독자님의 하루를 오늘도 진심으로 응원하며, 제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추석 잘 보내시고요,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는 삶기술학교 가을 방학 입니다. 한 주 쉬어갈께요.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 바라요
- 사랑을 담아 삶기술학교 YON
소개하고 싶은 것들
영화와 사진, 사람과 사람 : 영화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2017 )
1958년도 후반에 프랑스에서 일어나 전 세계 영화씬에 큰 영향을 일으킨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 그리고 2018년도 타임지에서 선정된 인플루언서 사진가 JR. 이 둘이 만나 즉흥 여행을 하며 사람들의 일상을 수놓는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소개합니다.
88세의 영화감독 바르다와 33세의 사진작가 JR은 거대한 사진을 뽑아내는, 사진기 모양의 트럭을 타고 방방곡곡을 누벼요. 나이, 직업 그 어느 하나 같은 것 없는 둘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고, 때로는 응원하고 시너지를 내죠. 길을 따라 여행을 하며 차가 닿는 마을 마을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사진을 찍어 커다랗게 프린팅 한 뒤 벽에 발라요. 그들의 삶을 표현함으로써 친구가 되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요.
이제는 곧 철거될 광산 마을의 마지막 주민 얼굴, 그리고 이곳에서 자란 많은 광부들의 어릴 적사진을 벽에 바르며 대화를 하는 장면. 넓은 밭을 홀로 일구고 지키는 농부가 하늘을 배경으로 창고 전면에 붙은 자신을 마주한 순간. 늘 세간의 주목에서 뒤로 밀렸던 항만 노동자들의 아내들, 그들의 삶의 가치만큼이나 높고 큰 컨테이너 박스 외관에 표현된 의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님은 “바르다와 JR의 초상 사진은 피사체가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고, 이웃이 모델이 된 이웃을 다시 발견하게 만들며 마지막으로 감독이 본 것을 관객과 공유한다.”라고 글을 쓰셨어요. 맞아요! 그들이 마주한, 벽에 발린 자신들의 커다란 모습을 보는 것은 ‘보는 것’ 그 이상일 거예요. 그리고 그 모습들을 바르다 감독님이 빚어낸 영화로 마주하는 우리들도, 단순히 ‘본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어 가요.
90분 남짓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사랑이 흘러넘치는 영화를 보며, 아녜스 바르다와 jr이 이끌어내는 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소통 방식을 화면 너머로 느낄 수 있어요.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지만, 나이와 시대를 뛰어넘는 우정으로, 그들의 사랑을 담은 장난 하나하나로 이어가는 장면 하나하나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추천해요!
체험해 볼만한 것 : 스마트폰 앱 – NOMO CAM
스마트폰 앱 NOMO CAM이에요. 한때 크게 유행했던 ‘구닥’ 기억나세요? 구닥이후로, 필름 카메라의 특징을 구현한 애플리케이션들이 많이 나왔죠. 다 써봤는데 그게 그거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한 일 년 전 즈음엔가, 재미있는 앱을 발견했어요. 바로 NOMO CAM인데요.
50종이 넘는 카메라. 과하지 않은 필터, 감각적인 인터페이스.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서, 카메라 애플리케이션 유목민이 두고두고 쓰고 싶게 만드는 ‘NOMO CAM’. 1년 구독료에 흠짓하게 되지만, 쓰다 보면 매력에 푹 빠져 한번 결제해 보고 싶어질걸요? 제가 그렇게 쓰고 있으니까요 하하!
무료로 인스탁스 미니 25, 코닥 펀세이버, 후지 우츠룬데스를 / 영화 ROMA 나, Lonesome의 감성을 담은 특별 테마 카메라도 사용해보실 수 있어요.
NOMO CAM 결과물
읽을거리 : 로모그래피 홈페이지
스냅사진을 위한 필름 / 토이카메라 전문 업체 로모그래피의 사이트를 소개합니다. 디지털카메라가 지배적인 시대가 되었고, 다들 아날로그의 멸망을 예고했지만 되려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아있죠.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필름 카메라’ 전문 업체 로모그래피의 사이트에는, 볼거리가 넘쳐나요.
‘사진’ 카테고리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스캔해서 공유하는 ‘사진’ 카테고리에는 지금 약 1600만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는데요. 태그, 국가, 도시, 카메라, 필름 별로 원하는 사진을 찾아 감상할 수 있어요.
콘테스트 카테고리
콘테스트 카테고리에서는! 말 그대로 매 회 사진 미션에서 최우수 사진으로 선정된 장면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예요. 최우수 사진으로 선정된 만큼, 눈이 띠용 나올만한 멋진 사진들로 마음을 일렁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매거진’ 카테고리
로모그래피의 특별 기사를 만나 보실 수 있는 곳이에요. 직업 불문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유명인들의 인터뷰 기사부터, 몽환적인 사진을 현상하는 방법, 그리고 필름과 렌즈 리뷰까지.
제가 재미있게 보았던 기사 두 개를 소개할께요.
1.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다리우스’의 인터뷰 : 로모그래피에서는 다리우스의 이름을 단 ‘로모그래피 심플 유즈 다리우스 에디션’을 발매했는데, 이를 기념으로 다리우스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것 같아요. 다리우스의 음악 이야기, 아날로그에 대한 생각을 글과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어요.
2. 맛있는 필름 레시피 - 필름 수프 만들기:
필름 수프라는 단어 아세요? 필름을 음식재료와 함께 버무리고 인화하거나, 조리기구를 이용해서 필름을 작가의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즈 하는 건데요. 진짜 ‘수프’처럼 필름을 요리하는 거죠.
사진을 현상하는 법도 모르고, 언젠가 시도할지 안 할지도 모르지만! 포도주와 계피로 만든 레시피로 필름 수프를 만든 다음- 카메라에 장착해 찍어낸 사진을 보니 제가 아는 필름의 세계 뒷면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사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 할만한 정보가 넘치는 이 페이지를 한번 둘러보세요. 마지막엔 샵 목록을 눌러서, 결국 장바구니에 토이카메라를 담게 될지도요?
8월의 크리스마스 OST : 사진 속의 기억들 (정원의 테마) - 조성우
한국 대표 로맨스 영화 중 하나 ‘8월의 크리스마스’ OST 중 정원의 테마인 '사진 속의 기억들' 이에요.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이 영화 배경은 군산의 ‘초원 사진관’이에요.
서로 진득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품은 주인공 정원 (한석규)과 다림 (심은하) 사이엔, 정원의 병으로 인해 다가오는 죽음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정원이 세상을 떠난 후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 다림은 한겨울에 초원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뒤돌아 걸어가며 살며시 웃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 다림에 대한 정원의 마음이 응축된 것처럼, 다림이 그 마음을 알아본 것처럼
단지 사진 한 장이지만, 우리가 찍어둔 그 장면들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진하게 묻어있을 거예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지나가고 있지만, 언젠가 다 추억이 될 인생의 매 순간을 치열하게 보내고 계시는 독자님!
이번 일주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라요. 다음 61호에 뵐게요!
- 독자님의 안온한 날들을 바라며. 삶기술학교 YON
편지를 보낸 삶기술학교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