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과 냉탕사이
아이를 낳고 함께 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남같이 아니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본적이 있는지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그런 기분을 꽤 자주 느끼면서 살았다. 친절과 불친절,배려와 무시가 유사어가 아닌데도 내 일상엔 늘 그런 상황이 냉탕 온탕처럼 붙어있었다.
주말 점심 외식을 마치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평온하게 차를 타고 가다가 앞지르는 차에 불쾌함을 느끼면 앞운전자에게 닿아야 할 욕이 내귀에 닿았다. 좁은 차안에 공기와 소리가 순식간에 바뀌는 것은 기껏 맛있게 먹은 점심의 소화를 방해했고 남은 주말이고 뭐고 빨리 월요일이 왔으면 했다.
갑자기 거래처나 회사에 일이 꼬이는 전화라도 받으면 사람까지 꼬여서 옆에 있는 나까지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꼬인 사람의 혀끝이 매끈할일 없었기에 꼬챙이 같은 말들로 나를 쿡쿡 찌르기 일수였다. 일일히 나열할수 없는 다양한 상황에 찔리면 꽤 아팠던 것만 기억에 남거나 참을 만한 아픔은 길들여지기도 한다. 견디거나 길들여지는 것은 시간이 쌓이면 나를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 멀리 홀로 서있게 한다.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지는 사건들이 포인트처럼 적립되고 유책사유가 되는 일들도 종종 발생하다 보니 나의 10년후 5년후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늦은 밤까지 남편은 들어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않아 유난히 맘이 무거웠던 밤 혼술을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주황색 다이어리를 펼쳤다.
가끔 비밀스럽게 내 생각을 두서없이 써내려갔던 나의 대나무숲같은 다이어리였다. 마구잡이로 써내려갈때는 눈물과 글이 범벅이 되어 대나무숲을 뒤흔드는 바람처럼 시원했지만 다음날 다시 읽어보면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 글들을 읽어보다가 5년전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오늘의 무거운 마음이 5년전 글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달라진것 하나 없이 5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마치 10년후를 예고하고 있는것 같아서 내마음이 비장해졌다. 익숙해지는 오류들속에 내 삶과 맞바꾸어지는 것들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고 마음속으로 외치치만 직업도 없는 마흔이 넘은 유아가 둘인 여자가 이남자와 전쟁을 치르기에는 벌써부터 지는 싸움인거 같았다.
혼자가 많았던 밤들, 혼자만의 몫이 되어버린 육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전혀다른 부부사이, 어디에 내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 날들속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가장 쉽고도 실패적인 방법을 택했던 나. 진짜 내가 바라는 삶이 무엇이지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주황색 다이어리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오늘도 그날의 나와 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