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의 무게
여전히 네가 없는 봄이다.
오늘은 화이트데이,
새 봄을 맞은 연인들은
발그레
달아오른 뺨을 맞대거나
짜릿한 전기가 오르는 손을 마주대며
카페에서 행복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한바퀴 돌았고,
이제, 다시 봄이다.
갑자기 결혼이 두려워졌다며,
네가 내게서 도망치던 날
그 날은 화이트데이였고,
내가 너의 부모님에게 인사가기로
한 날이었다.
인사를 드린 후에는
일년간 손꼽히며 기다리던 공연을
같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가을과 겨울
두번에 걸쳐 네가 나에게 했던 말,
나랑 결혼해 줄래?
청혼의 무게가
깃털처럼 그토록 가벼운 것이었는지
그날, 화이트 데이를 맞기 전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날 아침,
몇년간의 연애를 모래성처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고성이 오고 갔다.
너와 나는,
그전에는 그토록 격렬하게 싸운 적이 없었다.
싸움의 원인이 어떤 이유였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 나는 것이라고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내게서 돌아선 네 뒷모습이었다.
오늘, 말고 내가 연락할게.
그 말을 믿고 나는 기다렸다.
하염없이, 라는 말은 과장섞인
거짓말이겠지만
청혼의 무게가 그토록 가벼운 줄은
미처알지 못했기에,
나는 계속 기다렸다.
네게는 청혼의 의미가
결혼생활을 같이 해나갈 평생의 반려자가
아니라,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의 파트너가
필요한 거였니,
라고, 너에게 퍼부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너를 그렇게 조용히 잊어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이트데이 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까맣게 타들어가던,
내 마음속의 문이 생각난다.
이제는 새까맣게 타버려 없어져버린
너를 향해 열려있던 문.
네가 주인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문.
오늘은, 화이트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