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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Apr 14. 2023

난주의 바다 앞에서 (결말 포함)

김연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수록작 /릿터 2022년 8-9월호

다시, 새롭게 읽는 김연수의 작품 No.2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다 읽은 지는 꽤 되었지만 

감상평을 정리하는 것은 미뤄두고 있었다. 

김연수 작가가 오랜만에 펴낸 단편집인 만큼 한편 한편 곱씹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심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소설부터 되는 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소설가 정현이 강연을 위해 찾아간 

남해의 한 중학교에서 대학교 동아리 때 알고 지내던 손유미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현이 기억하던 대학교 시절, 그녀의 이름은 은정.

 병으로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방랑의 시간을 보내게 된

 은정은 정난주의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된다.     

  황사영 백서 사건에 대해 짧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황사영의 부인이 정난주였으며, 정난주가 제주도로 유배된 뒤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은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나는 이 소설 속에서 당연히 정난주가 바다로 몸을 던졌으리라 생각했다. 

이 소설집에서 김연수 작가가 줄기차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토록 바라던 미래가 오는 것은 100%에 수렴한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나는 역모 사건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노비가 된 정난주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 한 목숨 기꺼이 던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죽어서 자식이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어미의 마음일 테니까.     


하지만 정난주는 살았다. 하느님은 정난주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기도를 바꿔 들려준다. 


제가 죽어야, 제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 가 아닌

제가 살아야, 제 아들도 살 수 있다, 라고.     

은정은 그제서야 정난주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인생에 KO패를 당한 뒤에도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컨드 윈드. 은정은 그렇게 새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꾼다.     


왜 나는 당연히 정난주가 죽었으리라 생각했을까.

왜 난주에게 그 다음은 당연히 없으리라 생각했을까.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야 

나는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죽어서 누구를 살리는 이야기에만 너무 익숙해져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주의 바다 앞에서>라는 소설이 참 좋았다.     

제가 살아야, 제 아들도 살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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