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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Feb 17. 2024

브로콜리 너 또한

제주 시골. 작은. 집짓기

마당이 있지만 마음이 동할 때만 텃밭을 가꾼다. 상추 모종 일곱 분, 바질 모종 일곱 분을 동네 농약사에서 사다가 한 계절 심어 보는 정도다. 올 1월엔 말린 완두콩 몇 알이 있어 집 앞 쪽에 심어 무심히 두고 있다. 대신 이삭 줍기는 열심히 잘한다. 약간 베짱이 같은 마음이 이삭 줍기의 묘미다. 내내 놀다가 수확을 마친 밭에서 가족이 먹을 만큼 제철 먹거리를 얻어오는 일. 마당텃밭 가꾸기가 어려운 나에게 맞춤한 일이다. 어제는 막내와 저녁 산책을 하다가 막 수확이 끝난 밭에서 브로콜리를 얻어왔다. 집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면 이웃의 정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늦은 아침 좋다)


늦은 아침으로 아이들과 브로콜리, 당근을 살짝 데쳐 좁쌀밥에 곁들여 먹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아삭함이 여느 브로콜리와 달랐다. 둘째는 식감과 진한 풀 맛을, 막내는 초록색이 진하고 잎이 예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브로콜리 또한 훌륭한 맛과 모양의 식재료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시골에 살고 있으니 맛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먹거리에 감사하고, 나누는 이웃이 있어 또 감사하다.


 근처에는 드문드문 낮은 집들이 있고 브로콜리밭, 양배추밭, 과수원이 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좁은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면  왼편에 퐁낭이 있다. 도로까지 가지와 뿌리를 내린 커다란 나무. 덕분에 마을버스는 이곳에서 항상 서행을 한다. (천천히 다니는 버스는  멋지다)

더 좋은 건 나지막한 내리막으로 몇 걸음 더 가면 오른편에 또 퐁낭이 있다. 십 년 전 집터를 찾아 발품을 팔 때 퐁낭 두 그루를 보고 마음을 놓아버렸다. 제주 이주를 결심하고부터 인터넷으로 교차로와 오일장 신문을 보며 매일 부동산을 체크했었다. 거품이라고 할 만큼 올라버린 매매가도 걱정이었지만 작은 규모의 매물이 귀했다. 가족과 제주로 가도 바로 집터를 구하는 건 어렵겠다 싶었다.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우리 동네 무지개)

제주로 와서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여러 곳의 부동산에 연락처를 남기고 지역신문 부동산란도 매일매일 형광펜을 들고 색칠하며 읽어 내려갔다. 집 한 채 지을 터가 귀하고 귀했다.

막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오일장 신문에 한 줄 매매 광고를 보게 되었다.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과 멀지 않고 차로 20분이면 제주시내 병원과 대형마트를 갈 수 있는 위치의 작은 땅이었다. 막내를 안고 무작정 주소지로 향했다.  사거리에서 한라산을 향해 올라가는 좁은 길 왼편 파란 지붕 집들과 퐁낭이 예뻤다. 조금 더 가니 오른편에 퐁낭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구나. 집터도 안 보고 마음을 정해버렸다.


직사각형의 긴 집터는 이웃 할아버지가 경운기와 차를 세워 두고 한편에는 대파와 배추, 무를 키우는 텃밭으로 사용하고 계셨다. 바로 옆 도로보다 지대가 높았고 길 건너에는 건천이 있었다. 남쪽으로 한라산이 보였고 만약 이층 정도 높이로 집을 짓는다면 북쪽으로는 바다도 보일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가 잘 드는 밝고 따뜻한 땅이었다. 몇 달 동안 집터를 구하지 못해 애가 타던 마음이 환해졌다.


순한 집터를 찾은 것이다. 곧 막내가 걷게 될 텐데 마음이 놓였다. 세 아이들이 뛰어놀 곳을 찾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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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el Petrucciani:

Look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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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반하는 엄마의
식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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