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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Nov 17. 2019

기록이 나를 성장시킨다.

일지 수업 : 그날그날의 일을 적은 기록


긴 동굴 속에 지내고 나와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었다. 친구들은 번듯한 회사를 다니며 결혼도 하고 자가주택과 재테크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보니 그들과 나의 격차는 커서 말문이 막혔다. 인생 말아먹은 거 같은 기분이 들고,  끼어서는 안 될 자리에 낀 거 같았다. 이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놀고먹으며 보내 허송세월을 어떻게 다시 원상 복구해야 할까? 그렇게 시작된 것이 일지와 독서였다.


단절되고 고립된 인간은 지능도 떨어졌다. 외톨이가 된 시간이 많을수록 지능은 배가수로 하락한다. 1년 외톨이 생활 후 사람을 만나면 5분 이상 대화가 불가능했다. 내가 그렇게 한국말을 못 할 줄은 몰랐다. 바보가 된 나를 정상인으로 돌려놓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그것은 일기와 독서였다. 평생 글이라는 것을 쓰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지로 배출하고 독서로 지식을 흡수하는 과정을 3년간 꾸준히 하며 정상인으로 변화해갔다.


그동안 배출되지 않았던 머릿속 생각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내면의 데이터들이 배출되었고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무지했던 나의 습관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상처들이 치유되고 있었다.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처럼 악행의 자서전을 써 내려갔다. 아마도 이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도 방구석을 들락날락하고 있을 것 같다.


일지 예제
1. 사건:그날의 중요하거나 인상 깊은 일을 쓴다.
2. 나의 반응:솔직히 내 감정과 생각을 쓴다.
3. 터닝포인트:이해되지 않는 것들과 도출한 생각을 쓴다.


다음은 제가 쓴 하나의 일지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사건

일본 mma 경기 효도르와 크로캅의 시합을 보게 되었다. 크로캅의 열렬팬이 되어 응원했다. 스포츠에 관심 없던 내가 흥분하며 경기를 지켜봤다. 애석하게도 응원했던 크로캅이 지고 말았다. 그래도 졌지만 잘 싸웠다.


2. 반응

몸으로 하는 운동은 전혀 관심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자대 남자로 싸우는 격투스포츠에 열광한 것인가?


3. 터닝포인트

폭력을 당했던 트라우마 있는데, 경쟁구도를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강한 남성에 흥분한다. 혐오하면서 동경하는 아이러니 발생.





여기서 2번 반응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감정입니다. 나를 흔들어놓는 것, 움직이게 하는 것, 생각하게 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학습된 교육으로 굳어져 있는 생각보다 본능적인 감정이 진실입니다. 감정을 나침판 삼아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현재 격투기 경기를 보고 흥분했다.' '나는 과거 억압된 학교생활과 폭력적인 선생들과 선배들을 싫어했다.' 왜? 여기서부터 새로운 생각이 출발합니다.


폭력을 싫어하는 과거의 나 VS 폭력에 흥분하는 현재의 나 = 충돌(아이러니 발생)


문득 내 옷장에 걸린 옷들을 정리하다 발견합니다. 제가 유독 가죽재킷과 청바지를 좋아합니다. 강해 보이는 옷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화려하고 밝은 계통의 색깔을 싫어합니다. 영화는 맨시리즈를 즐겨봤습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 근육질의 영웅이 화려한 액션으로 승리하는 영화로 대리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콘텐츠를 선택하는 기준이 대개 이러했습니다. 강한 남성에 대한 열등감에서 출발한 선택입니다.


과거 나를 괴롭히고 힘들어했던 강한 남성을 싫어하면서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그럴까? 질문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화두가 됩니다. 그렇게 증오하는 폭력을 좋아하다니! 이 주제를 잡고 검색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라는 질문에서 사색으로 들어가려면 노력과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며, 깊은 집중은 우리 내면의 융합 작용이 일어납니다. 하나의 화두가 결론이 나올 때까지 하루 혹은 몇 달, 몇 년이 걸렸습니다. 위 예제를 카테고리로 정리하고 내 모순을 대표할 만한 단어로 정리합니다.


카테고리 정리

사색과 관찰의 과정에서 발견
나의 외면-가죽잠바, 청바지, 근육, 헬스, 카리스마, 눈빛, 영웅 서사영화(맨시리즈)
나의 내면-두려움, 동경, 약함, 미성숙, 소통, 대화, 계급, 성적                                       


결론 도출

     유약한 육체에 대한 열등감


여기까지 일지에서 자기모순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면 결론들이 모이게 됩니다. 3년 동안 모아놓은 결과는 고스란히 여러 모순들이 조합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간의 일지들이 모여 키워드들이 나타나고 카테고리를 정리한 것 중 하나가 아래(일지 분석 키워드)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활동을 잘하시는 분은 승진, 명예, 돈이 나올 수 있고, 예술활동을 하시는 분은 자유, 사랑, 연애의 키워드가 나올 수 있습니다. 각자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키워드가 다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키워드를 메모해 놓았습니다. 


 


일지 분석 키워드

열등감, 감정, 슬픔, 남성, 회피, 내면, 습관, 직관, 생각, 외로움, 마음, 심연, 답답함, 성장 -> 정신


저와 같은 경우 대부분의 키워드가 정신적인 영역에 속합니다. 내향적인 성향으로 내면에서 갈등과 충돌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메모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구체화하는 작업입니다. 문뜩 메모지에 있는 단어가 눈에 띄면 생각하게 되고 조합이 되고 풀렸습니다. 메모를 적어놓으며 바라보는 기간은 숙성기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치가 한철 땅속에 묻어놓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낯선 사람의 한마디, 지인의 대화 속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멍 때리다가 답이 도출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작업이 재밌어야 합니다. 저는 내 모순을 기록하고 풀어가는 과정을 즐겁고 풀리면 큰 환희를 느꼈습니다. 굿이 노력하지 않아도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런 과정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애쓰며 책상에 앉아 공부하듯이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했지만 습관이 되면 그럴 필요 없었습니다.

기록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면, 나쁜 습관은 자연스럽게 교정이 되었습니다. 일지를 쓰는 습관이 저를 변화시켰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잡았습니다. 평생을 괴롭혔던 나의 무지를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노력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나를 기록했다’라고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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