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담벼락 밑 그것

by 저며들다

1998년 여름,

휴일은 아니었지만 평일 한낮에 은진이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였다.

난 자퇴를 해 시간이 여유로운 백수였고 아마 은진이는 개교기념일 또는 무슨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이 되어 매일 같이 붙어지내다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어

함께 하는 시간은 적었지만 틈나는 대로 만났고 일상을 공유했다.

서로 끔찍하게 붙어 다녔지만 정작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상의도 하지 않았다.

난 오롯이 교복이 이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30여분을 가야 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고 자퇴를 하고서야 사립고등학교인 것도 알았으니 얼마나 무지했었나.

연합고사 점수로 고등학교 진학을 했어야 했는데 당시 담임은 내 성적으로 인문계는 꿈도 꾸지 말라했다.

어쩜 내가 은진이와 같은 고등학교를 갔다면 자퇴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어딜 다녀오는 길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뜨거운 해를 피할 길 없이 헥헥거리며 걸었다.

송내역부근에서 법원을 지나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

버스를 타기에도 택시를 타기에도 애매한 거리를 그냥 걸었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던 열여덟 두 소녀는 법원 담벼락을 걷고 있었다.

담 아래 보도블록 길가는 주차가능 구역이라 주차된 차들이 줄지어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변함없다.

운전석 문이 활짝 열린 흰색 차량이 보였다. 누군가 앉아있었다.

날이 이리 더우니 차 안에 그냥 있을 수 없었나 보다.

점점 차와 가까워졌고 열린 문을 통해 앉아있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은진이와 난 동시에 괴물을 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린 걸음을 멈췄고 아니 그 순간이 되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괴물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은진이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뛰어갔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미친놈, 좋냐?"


난 그 한마디를 던지고 템포대로 걸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은진이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네 번째 만난 괴물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휴대폰 세대가 아닌 삐삐세대.

지금이라면 동영상을 찍어 증거를 잡는다거나 그 자리에서 112에 신고라고 했을 텐데 난 또 그렇게 당했다.

아니,

만약 휴대폰이 있었다 하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다리처럼 손은 움직였을까.


룸미러로 우리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던 것 같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또한 알았던 모양이다.

점심시간대에 건너편 식당을 가기 위한 발걸음으로 북적일 뿐.

그 시간을 지나면 법원 담벼락 아래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변태를 생전 처음 보았다는 은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 실소를 하며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미친놈 아니냐며 한낮에 저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에 분개하고 어처구니없어했다.

난 제법 선배(?) 답게 뭐 이런 걸로 놀라냐며 지금까지 내가 만난 괴물들의 2탄~3탄의 썰을 풀어주었다.

차마 처음 뒷산에서 만난 아저씨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이때 처음으로 괴물의 이야기, 괴물의 생김새, 상황들을 털어놓았는데 이 계기가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너와 내가 함께 겪은 오늘의 이 일을 난 혼자 맞닥뜨려 왔었다 이야기하며

혼자 담고 있었던 그 시간만큼 나의 트라우마는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쩜 더 오래도록 머금고 있었다간 괴물을 지니고 있는 이들을 혐오할 수도 있었겠다.

은진이와 함께 의연하게 대처한 그날 이후로는 주차된 차의 문이 열려 있거나

창문이 끝까지 내려가 있는 경우 멀찍이 걸어가곤 한다.

피하는 게 상책이고 미연의 방지 및 내 눈의 보호차원에서.


그날 이후 25년이 지난 오늘까지 괴물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를 그것들에 어찌 대비를 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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