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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Apr 28. 2019

영화 <바이스> - 진정한 '악의 축'은 어디였던가?

딕 체니 전기(傳記)

전 세계가 대혼란에 빠진 2001년 9월 11일,
미국 백악관의 한 남자는 여기에서 '기회'를 보았다
- 영화 <바이스> 첫 장면


재기발랄한 블랙코미디 영화. 대놓고 한 사람을 아주 작살나게 까댄다. 대상은 2000년대 미국 부시 정부 부통령 '리처드 브루스 체니(애칭 '딕 체니')'.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미국 부통령은 그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부통령의 존재 의의는 긴급사태(대통령 유고) 발생 시 대통령 자리를 대체하기 위함일 뿐이다. 정치적으로 별다른 구설수에 오르기 힘든 일종의 명예직이다. 그러니 만일 특정 대통령 시기를 비판하고 싶다면 그 대통령 본인, 즉 조지.W.부시를 까면 될 일이다. 아담 맥케이는 왜 굳이 부통령을 정조준한 걸까? (영화에 따르면)그건 바로 이 딕 체니라는 양반이 부시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한 진짜 실세였기 때문이다.

미국 제 46대 부통령 딕 체니(좌)와 그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우)

(영화에 따르면)이 작자는 그야말로 '악의 축(Axis of Evel)' 그 자체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올바른 일을 할라치면 기겁을 하며 반대했다. 무리해서 '이라크 전쟁'이라는 승자 없는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도 꼽힌다. 심지어 최근 몇 년간 국제적으로 테러 공포를 심화시켰던 IS 결성의 원흉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뭐, 전부 사실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영화는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극도로 편향적이지만, 그럼에도 거침없이 진행된다. (영화에 따르면)연출진은 팩트만 제시했을 뿐이니 아니꼬우면 소송 걸라는 식이다.

아담 맥케이 감독. <빅쇼트>를 연출했다


- 정리

1.

(영화에 따르면)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는 애초부터 부통령까지 할 깜량 자체가 안 되는 인물이다. 최종 학력은 와이오밍 대학 졸업이지만, 원래는 예일대학교를 다녔었다. 그러나 그는 이 엘리트 학교 수업을 따라갈 역량이 되지 않았고, 매일 음주가무만 즐기다 퇴학당하고 만다. 이 시기 기록한 음주운전 2회는 이후 그의 정치인생에 오점으로 작용하게 되기도. 당시 미국식 표현대로 하면, 젊은 시절 딕 체니는 그야말로 '밥버러지'였다(영어로 뭐라 했는지 모르겠음). 여기서 의문이 한 가지 생긴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루저가 예일대학교에는 무슨 수로 입학할 수 있었던 걸까? 영화에 따르면, 이는 당시 여자친구이자 현재 부인인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왔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2.

린 체니는 콜로라도 대학에서 전과목 A를 받은 수재다. 여느 우수한 인재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더 높은 지위를 향한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린 체니 본인에게도, 미국에게도,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세계에게도), 그녀가 젊음을 보냈던 시기는 1960년대였다. 60년대 미국 여성은 온전한 스스로의 힘으로 지위 상승 욕구를 해소할 수 없었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여성'이 갖는 사회적 한계를 넘기는 불가능했다. 총명한 린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친구인 한량 딕 체니를 키우기로 마음 먹는다. 체니가 2번째 음주운전으로 체포돼 구치소에 수감된 날, 그녀는 마치 사고뭉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딕 체니를 다그치며 "나를 또 실망시킬 작정이냐"고 호통친다. 딕 체니는 그녀 앞에 쭈구리가 되어 "미안해... 앞으로 달라질게"라고 우물거린다. 이를 기점으로 딕 체니는 정말 변한다. 그는 린의 아바타가 되어 무럭무럭 성장하기 시작한다.

실제 린 체니&딕 체니(좌)와 영화 속 린&딕 체니(우). 유심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걸?

이 부분을 보다 보면 '그렇게 똑똑하면 애초부터 왜 딕 체니를 선택했지? 사랑이란 이리도 무서운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미국의 부통령이 되지 않았나? 똑똑한 거 인정. 사람 보는 눈 인정.


3.

정신 차린 딕 체니는 와이오밍 대학교에 입학해 무사히 학사를 마치고 국회 인턴을 시작한다. 이후 딕은 성공을 향한 무서운 갈망을 보여주는데, 이에 대한 동기는 영화 전반부와 중반 이후 각기 다르게 나뉜다. 영화 전반부 딕이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이유는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즉, 아내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다. 딕은 당시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이자 백악관과 가까운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 라인을 잘 타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이때 럼즈펠드는 딕에게 '질문 없이 묵묵하게 시키는대로 따르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라고 말한다. 감독 아담 맥케이는 이를 '겸손하게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는 능력'이라고 비꼬았다). 백악관에서 그는 창문도 없는 조그만(약 2평 정도 되어 보이는) 방을 배정 받는다. 가구라고는 책상 하나에 전화기 하나 뿐이다. 하지만 딕의 표정은 이보다 더 벅찰 수 없다. 이 좁고 삭막한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그는 지금까지의 젊음을 바쳤던 것이다. 방에 들어가 딕은 가장 먼저 집에 전화를 건다. 아이를 돌보고 있던 린은 "내가 남편을 잘 골랐어. 딕, 당신이 자랑스러워"라고 말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의 존경을 얻게 된 딕은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4.

아내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1차 목표를 달성한 딕 체니는 백악관의 어느 방 문 앞에서 그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을 마주한다. 방 안에서는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럼즈펠드와 딕 체니는 아직 키신저 급의 인물은 되지 못했으므로 시기어린 눈빛을 띤 채 문 앞을 서성일 뿐이다. 럼즈펠드는 딕에게 말한다.

지금 저 조그만 방 안에서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나누고 있는 저 대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감이 와? 저 대화 때문에 내일이면 지구 반대편 캄보디아에 200kg이 넘는 미사일이 쏟아질 거야. 수 천명이 죽고 다치겠지. 세계를 지배하는 힘. 백악관의 힘이란 그런 거야.
- From 도널드 럼즈펠드 to 딕 체니, 영화 <바이스> 中


왼쪽부터 도널드 럼즈펠드, 조지.W.부시, 딕 체니

딕은 감명받은 듯 한동안 방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는 럼즈펠드에게 묻는다. “힘, 잘 알겠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신념은 뭐죠?(우리는 어떤 신념을 기반으로 그 힘을 사용하나요?)”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내 대폭소가 터진다. 럼즈펠드는 세상에 별 미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배를 부여잡고 낄낄댄다. 어딘지 부끄러워진 딕은 비로소 깨닫는다. 중요한 건 권력을 붙잡는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잡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와 같은 신념은 이 판에 아무 의미가 없다.


영화 중반부터 딕 체니의 행동 동기는 이에 따른다. 그가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이유는 '무슨 수를 써서든 권력을 잡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잡은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르기 위해서'다. 죽도록 하고 싶던 일(음주가무)도 접어두고 오직 가족을 위해 파란만장한 미국 정치 현장의 최일선에서 뒹굴었던 딕 체니는, 이제야 비로소 아내에게서 독립해 진정한 ‘가장’으로서의 '성장'에 성공한 것이다. 이거 완전 아메리칸 드림 아닙니까?

딕 체니와 린 체니(실사)

세계를 지배하는 힘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이를 얻고자 하는 신념 없는 욕망은 딕 체니의 오랜 한량 컴플렉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 결과 태어난 이 '조용한 악당'은 살금살금 21세기 역사의 출발선에 은밀하게 서게 되었고, 그로 인해 2000년 밀레니엄 시대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혼돈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게 된다.


- 세계사에 큰 해악 끼친 악당,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아냐

영화는 내내 딕 체니를 '세계 역사를 바꾼 악당'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순수 악’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가족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인물이다. 예컨대 그의 둘째 딸 메리 체니(알리슨 필)는 레즈비언이다. 딕 체니는 강성 공화당원이지만 커밍아웃을 한 둘째 딸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준다. 혹여 경선 과정에서 딸이 상처받을까, 대통령 출마 꿈도 포기한다. 훗날 조지.W.부시(샘 록웰)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대선에 출마하게 됐을 때도 '동성혼 반대 여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물론 이는 그의 가족애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정치인으로서 '신념'이 없음을 방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동성애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보수 표를 모으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 정치인으로서 자기 생각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메리 체니(우)와 영화 에서 역을 맡은 알리슨 필

그는 신념이 없을 뿐,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 힘든 미국 정치판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막대한 권력을 손아귀에 쥔 인물더러 무능하다고 표현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그가 가진 가장 뛰어난 능력은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정치력'이었다. 그는 연설에 약했고 말을 잘 못했다. 대중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정치인을 다루는 데에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딕 체니는 흑막 속의 실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반 대중들은 딕 체니가 얼마나 엄청난 인물인지 잘 몰랐으니까.


- 센스 있으면서도 촘촘한 구성과 연출

스토리적인 부분 이외에도 영화 <바이스>는 굉장히 짜임새 있고 재치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첫째 눈여겨 볼 포인트는 '방(room)'이다. 딕 체니에게 방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백악관에서 처음 받은 좁디 좁은 삭막한 방과, 닉슨과 키신저가 대화하던 '비밀의 방'은 모두 체니에게 '권력'을 의미한다. 훗날 그가 부통령에 오른 뒤 가장 먼저 온 정부 기관에 자기 전용 방부터 만든 이유도 체니에게 방은 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딕 체니가 무언가 정치적으로 행동 혹은 결단을 할 때 마다 뜬금없이 에어로빅 영상이라든지, 클럽에서 춤을 추며 뛰어 노는 영상 같은 것들이 교차 편집되어 나온다. 이는 국민들의 미래를 바꿀 위험한 결정들이 이렇게 대책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작 표를 가진 유권자들은 그런 복잡한 내용에 관심 없이 순간의 쾌락에만 눈이 멀어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영화 초반과 후반 같은 대사를 이용해 인물의 변화(성장)를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연출도 인상깊다. 영화 초반, 그는 키신저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해 나토 대사로 사실상 추방당하는 럼즈펠드에게 전화로 “(따라갈 수 없어)미안해요. 진심이에요”라고 말한다. 이에 럼즈펠드는 "괜찮다. (날 따라가지 않고 버리다니)내가 잘 키웠구만"이라며 흡족해 한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 딕은 부시 정부 초대 국방부장관이던 럼즈펠드에게 전화로 해고를 통보한다. 그는 역시 “미안해요”라고 말하지만, 무미건조하다. 럼즈펠드의 반응 역시 정반대로, "이 개같은 새끼!"라며 분노한다. 딕 체니가 영화 초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긴 호흡에 걸쳐 효과적으로 전달한 아주 멋진 대사 연결이었다.

(이 파트에서 럼즈펠드가 "미안하지 않다는 걸 알아. 왜냐하면, 내가 만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미안하지 않았을 거거든"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도널드 럼즈펠트(좌)와 그를 연기한 스티브 카렐. 싱크로율 미침;

린이 딕의 하원의원 당선을 위해 와이오밍에서 연설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보수세가 강한 와이오밍 주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녀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여성상을 내세운다. 그녀는 “뉴욕에서 보니 여성들이 브라를 불에 태우더군요. 하지만 우리 와이오밍 여성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브라를 입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녀는 시대가 여성에게 코르셋을 씌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신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그 시대 위에 올라서기 위해 "나는 브라를 꽉꽉 조여 입는 여성!"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영화 시작부터 꾸준히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정체불명의 '화자' 캐릭터 역시 인상적이다. 우리는 영화 막바지에 가서야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알고 보니 그는 평생 심근경색에 시달린 딕 체니에게 새 심장을 이식해 준 인물이었다. 물론 완전히 타의였지만. 그는 평생 딕 체니를 지지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평범한 서민이었다. 아프간,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그의 심장은 다름아닌 딕 체니를 살리는 데 쓰이게 된 것이다. 백악관 책상에 앉아 설탕에 절인 빵을 뜯어 먹으며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 딕 체니를! 이 기묘한 아이러니는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한다.


심장을 바꾼 이후 딕 체니는 조금 변한다. 가족을 향한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과 적을 향한 무조건적이고 무자비한 반대라는 냉정함 사이 균형이 무너진다. 그는 첫째 딸 리즈 체니(릴리 레이브)의 상원의원 당선을 위해 그녀가 공식적으로 동성혼 반대 발언을 하도록 허락한다. 이는 그가 첫째 딸을 너무도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체니 가문의 명예'를 위해 둘째 딸을 희생시킨 것에 가깝다.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에 배신당한 둘째 딸 메리 체니는 홀로 울부짖는다. 화목한 체니 가족은 더 이상 없다. 딕이 평생동안 아슬아슬하게 공들여 쌓아올린 찻잔 탑은 이렇게 한 번에 무너져내린다.


- 낚시 대상은 조지.W.부시

영화에서 부시는 거의 머저리 병신으로 묘사된다. 마약과 술에 취해 평생 방탕하게 지낸 탓에 명문 부시 가문의 '수치'로까지 불리던 조지.W.부시는 대뜸 대선에 출마한다. 이 소식을 듣고 린 체니조차 "세상에... 그런 망나니를 정말 대선에 내보내다니"라고 탄식할 정도다. 그는 멍청하고 노련미도 없다. 딕 체니를 삼고초려해 부통령에 모시려 한 이유 역시 그 스스로 노련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백전노장 딕 체니가 애숭이 부시의 부통령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 역시 부시가 더없이 멍청했기 때문이다. 딕 체니는 부시를 두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꼬맹이"라고 평가하는데, 젊은 시절 '아내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난 꼬맹이'였던 그를 생각하면 살짝 실소가 나는 평가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9/11 직후 백악관 지하 벙커에서의 부시와 딕 체니. 왼쪽이 영화, 오른쪽이 실제

부시와의 조합은 거의 웃프게 진행된다. 부시를 만나기 전까지 영화는 꾸준히 딕 체니의 취미가 '낚시'임을 묘사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궁금증이 쌓이고 쌓여 폭발할 때 즈음, 부시가 딱 등장하는 것이다. 체니는 스스로를 미끼로 내세워 부시를 멋지게 낚는다. 그는 자신처럼 노련한 정치인이 아무 실권도 없는 부통령에 앉기는 좀 그렇지 않느냐며 대통령 허가 하에 '몇 가지 소소한 업무' 정도는 맡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부시는 당연하다고, 어떤 일을 원하는지 말해보라고 답을 하고...(이 순간 갈비를 뜯던 부시의 입이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듯 이상하게 벌어진 채로 화면이 잠시 정지한다!) 딕 체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원하는 업무를 읊는다.


"The vice presidency is a mostly symbolic job. However, if we came to a … uh … different understanding, I can handle the more mundane jobs: overseeing bureaucracy, energy, military and foreign policy."

- 별 건 아니고... 그냥 관료 정책, 에너지 정책, 국방 정책, 외교 정책 정도만 담당하고 싶네


조지.W.부시의 대답은? "That sounds good! 어려울 거 없죠. 그렇게 하세요! 그럼 부통령 하는 거죠?"

해당 장면이 워낙 인기가 있었던지 특별히 오피셜 클립으로도 나와 있어 소개함.


- 이 영화는 완전히 한 쪽으로 치우친 시선에서 연출되었음을 잊지 말자

...개인적으로 실제 부시가 이렇게 상병신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능했던 대통령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미국 대통령까지 지낸 인물이 이렇게나 멍청할까. 임기 초 딕 체니와 도널드 럼즈펠드를 위시한 네오콘들에게 꽤 휘둘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2기 행정부 들어 이들을 몰아낸 것도 부시였잖아? 본인들은 '팩트만 제시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해 딕 체니와 부시 단 둘간의 대화 내용 등 진짜 내부 사정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영화를 만든 아담 맥케이가 진성 리버럴(좌파)이라 과장과 선동도 분명 어느 정도 있었을 거라 생각함. 그러니 이 영화를 마치 검증받은 역사 교과서인양 받아들이면 곤란할 것이다.


"신념이 뭐냐"는 질문에 럼즈펠드가 대폭소를 터뜨리는 연출을 넣은 것을 보며, '그래도 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신념이 없으려고'라는 생각에 반발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신념 없는 정치인들은 차고 넘칠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나라 몇몇 노회한 정치인들의 양태를 생각해보면 더 그렇지. 말 그대로 정치를 게임, 생업으로 생각하는 '직업 정치인'들... 말하자면 '정치꾼'들. 개중에는 딕 체니처럼 대중 정치력은 떨어지고 정치인을 상대로 한 정치력만 뛰어난 리더급 인물들도 꽤 있는 편이다. 당장 현역들 중엔 보수에서 하나, 진보 탈을 쓴 호남 보수에서 하나, 마지막으로 진보에서 하나, 이렇게 떠오르네. 굳이 언급은 않겠다.



★★★★

(혹시 깜박 하셨을까봐. 이거 영화 리뷰임)



p.s) 영화 제목 바이스(Vice). 알다시피 중의적인 표현이다. Vice는 'Vice-president'로 쓰여 '부통령' 혹은 '부회장' 등으로 해석되지만, 단어 그 자체로는 '악(惡)', '부덕' 등 의미를 가진 재미있는 단어다.


p.s2) 딕 체니는 실제 현지에서 평판도 끔찍하게 좋지 않은 듯 하다. 그의 인터뷰가 실린 유튜브나 신문 기사 댓글 창을 보면 "Criminal"이란 말이 정말 많다.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란 소리다. 하지만 체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국가와 국민을 지켰을 뿐이다"라며 정면으로 들이 받음.


p.s3) 공화당 정치인은 물론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걍 전부 다 똥멍청이 매국노로 묘사됨;


p.s4) 캐릭터 싱크로율이 진짜 미쳐버렸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딕 체니는 그냥 말투가 녹음 붙여넣기 수준이고... 세상에 조지.W.부시와 샘 록웰이 이렇게 생김새가 닮았을 줄 누가 알았으랴? 스티브 카렐의 도널드 럼즈펠드는 그냥 럼즈펠드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나 이 둘이 이렇게 닮았을 줄이야...


영화 속 도널드 렘즈펠트와 실제 렘즈펠트도 비교해 보시오


마지막은 실제 딕 체니의 BBC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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