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다. 그냥 무턱대고 읽었던 시기가 있다. 독서에 큰 관심이 없던 나. 어느 날, 책장에 쌓여가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들이 나 좀 봐줄래? 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무턱대고 소설책 하나를 잡고 읽었다. 남편이 수시로 수집하는 인문학 관련 책도 슬쩍 들쳐봤다. 점점 얄팍한 지식이 늘어갔고 지적 허영심이라는 꼬리가 생겼다. 친구들에게 독서모임을 제안하고 6명이 모여 거침없이 읽었다. 다행히 성실의 아이콘인 나는 완독을 목표로 모임기간 3년 동안 모든 책을 읽었다.
코로나로 독서모임의 맥이 끊겼다. 어떤 일은 강제성이 사라지면 의지도 사라지는 법. 모임을 못하니 책과 점점 이별 연습을 하고 있었다. 독서를 위한 동기가 필요했다. 나의 독서 욕구를 채찍질해 줄 것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사이버대학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5년 이상이 됐지만 못할 게 뭐란 말인가. 호기심과 용기가 있으니 도전하는 것은 쉬웠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3학년으로 편입하고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온라인만으로 수업이 이뤄지지만 마음 가짐은 20대의 파릇한 대학생과 다름없었다. 필기구와 노트를 준비하고 노트북도 구입했다. 남편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물으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전업주부로만 지냈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새로 배운 프로그램으로 리포트를 쓰고, 화상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했다. 추억으로만 남았던 대학생활이 다시 현실이 됐고 현실감은 나를 변화시켰다. 학습을 하니 젊음을 얻은 것 같았다.
과제를 위해 자료를 찾으려 도서관과 서점을 찾았다. 과거, 주어진 현실 안에서 공부할 때는 알지 못했던 공부 엔도르핀이 생겼다. 졸업논문을 준비하면서 열정이 차올랐고 비록 학사 논문이었지만 대학시절에 썼던 논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관련 논문과 전시회를 찾아보며 논문을 쓰기 위한 밑거름을 다져나갔다. 그 뒤로 미술에 관심이 생겼고 전시회 감상이 취미가 되었다. 공부가 취미로 연결되어 예술과 인문을 좋아하는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되었다. 2년 동안 공부하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며 2번째 대학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한 개인이 공부할 때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잘 정리해 두고, 자기 나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 김영민
독서와 학습이 글쓰기를 촉발시켰다. 살아오면서 기록이라고는 청소년기 일기 쓰기가 전부였다. 신혼시절에는 경제적 소비를 위해 가계부를 써봤다. 요즘이야 핸드폰으로 앱을 다운로드하여 쓰고 저장만 하면 된다는데, 20여 년 전에는 가계부를 구입해서 수기로 적었다. 안 그래도 기록에 취약한 성향의 인간이 체화된 습관을 바꾸려고 하니 무척 힘들었다. 결국 며칠 쓰지 못하고 포기, 그 뒤로 기록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사이버대학 공부를 하면서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젊은 시절이야 모든 것이 빛나고 오래가지 않는가. 중년이 되고 보니 기억되는 것보다 잊히는 게 많았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었다.
일정을 기록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읽고 단상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30일 동안 매일 짧은 글을 썼다. 서툰 시작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한 습관으로 변했다.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 김영민
우연히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됐다. 일상 에세이부터 전문 출간 작가들의 글까지 내용도 분야도 다양했다. 초보의 열정이 도전 정신을 끌어올렸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했다. 기록하고 글을 쓰다 보니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나의 생각과 아픔,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마치 읽으니 기록하게 되고, 기록하니 쓰고 싶은 것이 디폴트 값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나는 극 I 성향이다. 나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한다는 것이 발가벗고 밖에 서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니 어렵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쌓아 놓았던 말을 쏟아내니 아픔이 치유되고 아팠던 나를 위로하게 됐다. 나를 위로하니 나 자신이 더없이 소중했다.
한 강연자는 이런 말을 했다. 비행기에서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안내 방송이 나온다. 산소호흡기가 내려오면 자신이 먼저 호흡기를 쓰고, 돌봐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다음에 챙기라고. 자신을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나를 알고 사랑하면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는 걸 글을 쓰며 깨달았다.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작가들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면 한 없이 초라해진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어떻게 저런 문장을 쓰지, 난 왜 안 되는 걸까, 수없이 자책하고 반성한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도 나와 같을까?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묻고 싶다.
초보글쟁이인 나는 매 순간 고난과 반성의 메비우스 띠를 돌고 있다. 벗어나는 길은 쓰고 쓰고 쓰는 것이리라. 쓰다 보면 출구가 보일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출구를 찾기 위해 벅차지만 또 쓴다. 지금은 출구 안내판의 희미한 빛이라도 찾고 싶다. 지금이 그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