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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May 24. 2024

성자를 보았어

사돈 할머니

그날도 아부나이는 똥지게를 지고 동네를 활보했다. 똥지게를 지지 않은 날에도 그에게선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주칠 때마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못마땅해 이모 집 가는 길에 그가 눈에 띄면 다른 길로 줄행랑을 쳤다. 미처 피하지 못했을 땐 쏜살같이 내달려 지나쳐 갔다.


아부나이(あぶない)는 '위태롭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그가 걸을 때 자빠질 것처럼 몸이 뒤로 휘어져 동네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이름이 네 글자인 데다 우리말 발음과 미묘한 차이가 있어 아버지에게 여쭈었더니 그리 설명해 주었다. 본명은 아예 알 수 없었던 건지 동네에선 아부나이로만 통했다. 걸을 때마다 몸이 휘청여도 똥지게는 그의 어깨에 안정적으로 매달려 있었다. 고난도의 직업적 노하우였으리라. 앙상하게 마른 데다 머리카락도 변변치 않아 알머리였던 아부나이는 불안한 걸음걸이로 동네 변소를 끔하게 퍼내던 똥지게꾼이었. 


아부나이는 이모 집과 가까운 곳에 살았다. 사돈 할머니 따라 그의 집에 종종 갔지만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혼자 몸이었던 것 같다.  속사정까진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어린 눈에도 비좁고 초라한 살림으로 보였더랬다. 사정을 꿰뚫은 사돈 할머니(둘째 이모 시어머니)는 새로운 반찬을 하거나 특별한 음식이 생기면 아부나이를 꼭 챙겼다. 그럴 때마다 사돈 할머니가 같이 가자따라가긴 했지만 그다지 내키진 않았다. 따라가서도 이종사촌과 난 얼굴이 벌게지도록 코를 막고 할머니 꽁무니에 붙어 눈만 끔뻑거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빼곤 했었다. 그러면 못쓴다고 혼낼 법도 한데 사돈 할머닌 그러지 않았다. 꾸중 대신 아부나이 집에  때마다 우리에게 접시를 들려 앞장 세우곤 했다. 동하진 않았지만 싫다고 떼쓰지도 않은 건 사돈 할머니와 함께할 때 새롭고 즐거운 일들이 자주 생겼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에 적어도 의리는 지켜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순전히 지금에 와서야 이는 생각임을 밝혀둔다.


어느 날 아부나이가 나와 이종사촌이 대문 밖 마당에 털퍼덕 주저앉아 '많은 공기(공깃돌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공기놀이)'를 하는 곳으로 위태롭게 걸어왔다. 양반탈 같은 눈매와 입매를 하고서 쓰러질 듯 걸어오는 모습이 '전설의 고향'나올 법한 도깨비 같아 냅다 도망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귀한 사탕을 건네주려 의기양양 왔던 건데 몸에 밴 냄새도 거슬리고 지나친 휘청거림도 두려워 도망부터 것이다. 아부나이에게 머문 사돈 할머니의 마음이 사탕이 되어 돌아온  사풍맞게 거절한 꼴이 됐지만 어렸던 우린 결례인 줄도 몰랐다.


여행용 가방에서 공깃돌을 발견하고 잠시 파랗던 시간으로 돌린 눈길에 아부나이가 서성거렸다. 그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가난과 불운과 이별과 무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내 했던 그의 삶은 오죽했을까. 마음 써주는 사돈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베풀 수 없는 스스로가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동네 사람들은 피해 가기 일쑤고, 사탕에 담은 고마움도 모른 채 어린것들은 무섭다며 달아나 않나. 언짢은 것들 투성이 가운데서도 아부나이는 사돈 할머니의 각별한 정에 긁힌 마음을 기댈 수 있었을 것이다.


곁을 지날 때마다 코를 싸쥐고 몇 걸음씩 물러나는 사람만 사는 동네에서 사돈 할머닌 아부나이의 유일한 이웃이었다.


즈이들이 싼 똥 다 치워주는구먼 피하긴 왜 피한댜? 육씨럴(육시랄)


피해 가는 이들을 찰진 욕으로 극형에 처한 뒤 괜찮다고 다독여 다정한 친구기도 다. 육시들 중에 어린 우리도 포함되었건만 일절 야단치지 않았던 건 아마도 사돈 할머니의 심중을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려준 것일 테다.


남들이 하찮다고 여기는 똥지게꾼일지언정 무시하지 않은 분. 아부나이의 맥락과 상황을 이해하고 어루만진 분. 넉넉하진 않았지만 궁핍을 눈여겨보고 긍휼히 여긴 분. 언젠가는 우리가 긍휼의 삶을 살아가도록 행동으로 보인 분. 나와 이종사촌의 마음 밭이 비옥해질 때까지 기다려 분, 나의 사돈 할머니.


멀리 사는 외할머니보다 자주 볼 수밖에 없었던 사돈 할머니는 내가 아직 충분한 사람에 가 닿기 전 '측은지심'을 일깨워준 분이다. 미약하나마 인간적 품성을 깔고 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사돈 할머니가 실천한 아량을 보고 자란 덕분이다. 분주하고 투박하지만 관대함 만큼은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나의 사돈 할머니. 친손녀와 다름없이 내게도 동일한 애정을 쏟으셨던 사돈 할머니는 내 안의 작은 자로 살아계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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