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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Jan 13. 2019

더블린에서 루돌프를 만나다

아일랜드 더블린

더블린에 도착하니 밤 12시였다.

예약한 숙소는 아파트 형식의 호텔인데 다행히 24시간 리셉션이 있었다.

금발의 병약한 미소년과 갈색머리 안경남이 우리를 반겼다.

아주아주 친절한 두 직원은 투 머치 토커였다.

우리가 더블린 여행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잽싸게 지도를 꺼내어 들어 더블린의 주요 관광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길어지자 눈꺼풀이 조금 내려왔지만, 미소를 유지하며 경청했다.

어떤 도시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까지 상세히 관광 포인트를 짚어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들을 도저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갈색머리 안경남이 나중에 우리가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 정보를 주었다. 더블린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공원이 있는데, 거기엔 사슴이 살고 있다는 거다.


 "당근을 가져가면 좋아할 겁니다."  


우리가 머무른 기간은 12월 24일-26일이었다. 24일은 한국과 다름없이 시내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났다. 그런데 25일이 되자 거짓말같이 온 거리가 텅 비어 버렸다. 대낮부터 사람들도 가득하던 펍들은 물론이고 가게도 모조리 문을 닫아 유령도시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관관객들 뿐이었다. 박물관, 미술관도 모조리 문을 닫아 관광객들은 문 열린 곳을 찾아 좀비처럼 휘적휘적 시내를 활보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슴이 있다는 피닉스 공원으로 갔다.

마트도 다 문을 닫은 바람에 당근을 사지는 못했는데, 공원 초입길에서 기적처럼 당근 조각 두 개를

획득했다. 누군가 사슴 먹이로 가져왔다 버리라고 간 모양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 그런지 공원에 도착했지만 걸어도 걸어도 사슴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도 텅 빈 시내에선 갈 데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그러자 드디어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처럼 길 잃은 관광객들인 사슴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디즈니 만화의 밤비처럼 생긴 녀석도 있고, 검정 털을 가진 녀석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아름다운 뿔을 자랑하는 수놈들이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이 친근한지, 강아지처럼 손만 내밀어도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다가왔다.

주워 온 당근을 내밀었더니 한 녀석이 한 입에 꿀꺽 삼켜버렸다.

쿠키를 줬더니 흥분해서 더 달라고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뿔에 받히는 줄 알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더는 먹을 게 없다는 걸 눈치챈 녀석들은 재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크리스마스에 유령도시가 되는 더블린에서 루돌프의 후예(?)들에게 먹이를 주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악의 크리스마스 또는 최고의 크리스마스로 기억될지 인생을 더 살아봐야 알 일이다.









<루돌프의 후예?>


<컬러링 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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