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배려의 주체성”을 필사한 후

우연, 필연 -> 행운

by novel self

필사 내용이 사는 동안 내내 관심 가지고 있던 주제여서 반가웠다.


좋아하는 분야이며 끊임없이 갈구하는 도서 계열이기도 하다. 수학 전공자기에 데카르트와 소크라테스는 늘 곁에 있는 친숙한 인물이다.


우리 전공자들에겐 자기 배려와 자기 인식은 항상 큰 얘깃거리다. 그리하여 첫날 필사에서 나왔던 베이컨의 <신논리학(Novum Organum)>을 읽었듯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Discour de la methode)>과 <소크라테스의 변명>도 읽었으리라 추측한다. Socrates의 산파법은 우정호 교수가 쓴 <수학 학습-지도 원리와 방법>의 제1장에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과 수업할 때, 나는 푸코가 언급한 ‘주체’를 ‘주인공’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들의 이해를 돕고 호기심을 자극하려면 그들이 호응할 수 있는 범주에서 시작해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자기 배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행위, 이것은 수학자들에게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수학 자체가 이 두 단어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필사 내용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삶의 기술 중에서 ‘우정‘만이 내 삶의 난제다.

이 난제를 이렇게 생각하며 살 뿐이다.

가끔 흔들리지만,

‘우정도 타인과의 관계이자 소통이다. 타인이 어떠하든 타인의 진의는 알 수 없다. 타인을 향한 애정이든 배려든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 자신만이 자신을 알 테니까.’

두 번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졸업하는 과정을 거치며, 나를 비롯한 우리 동기들은 자기 존재를 깨닫게 된다. 수학은 학부 전공만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론들 투성이다.

참고로 대학 수학에서는 학교 수학(중고등 교과서 내용)을 다루지 않아서 고등에서 대학으로의 갭이 무척 크다. 많은 대학생들은 학교 수학과 대학 수학의 질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심각한 단절을 경험한다. 이러한 단절로 인한 어려움은 직관에 호소하는 극한 정의와 해석 개론에서의 악명 높은 ε-δ에 의한 극한 정의, 그리고 유향 성분으로서 벡터와 벡터 공간의 원소로서 벡터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학교 수학과 대학 수학의 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다(이지현, 2011). 이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수학과 교수이든 이해하지 못한 채 가르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하니 대학원에선 어떠하였겠는가.
너무나 작은 존재가 되어 자신이 아는 것이 이것뿐인가 하며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외치기도 하고, 누군가가 수학이론에 무모하게 도전하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로 조절하게 한다. 반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운 문제에선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라며 격려하고 위로하며 이런 말들을 우스갯소리 삼아 힘들지만 계속 공부했다.


수학에선 이들 외에 피타고라스, 탈레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에라토스테네스, 아폴로니우스, 히파르쿠스, 메넬라우스, 프톨레마이오스, 헤론, 디오판투스, 등
대부분 알고 있을 네이피어, 해리엇, 오트레드, 갈릴레오, 케플러, 파스칼, 페르마, 로베르발, 토르첼리, 뉴턴, 라이프니츠, 오일러, 라플라스, 푸리에, 푸아송, 코시, 아벨, 해밀턴, 캐일리, 드 모르간 등등


더 많지만 이 정도에서 멈추고 이들을 열거한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이들의 많은 수학 이론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무지하다는 걸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수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 인식’을 깨닫지만 사람들마다 정도는 다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에 대하여 Great Books of the Western Literature의 '플라톤'편에 수록된 연구에 공감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성을 잘 가꾸어야 한다고 했다. 예지인(叡智人)이라는 인간관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폴리스적 인간의 본질을 이성에서 구했다.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특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덕의 기본 조건으로 '지(知)'를 말한다. '덕은 곧 지이다.' 선을 행하고 덕을 닦기 위해서는 먼저 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고 하는 행위는 비록 그것이 선한 행위일지라도 덕이 될 수 없고, 선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안 후에 이를 몸에 익힐 때 비로소 덕이 된다. 그의 지덕일치, 또는 지행일치 사상의 근저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중심 사상이 놓여 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각(自覺)'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즉 ‘무지의 자각’에서 '진지(眞知)'에 도달하려 하였고 진지에 의해 획득되는 덕목을 실천하는 데서 '인간의 주체성'을 살리려고 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첫 필사에선 공부만 하다가 머리만 쓰다가 건강을 위해 다니고 있는 피트니스에서 만난 언니들의 인간관계와 그들의 말과 행동의 진실을 고민하며 베이컨과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다시 읽고 있었다. 우연히도 필사에 소개된 소설이 베이컨의 네 우상을 모티브로 전개한 내용이었다.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각색한 한국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여파인지 언니들과의 모임에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얘기 나누었는데, 마침 어제 필사는 그 대화 내용을 머리카락의 탄력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오늘 필사는 제 관심사였어요.^^ 매일 제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에 맞추어 이해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저를 발견하고, 그래, 타인을 향한 배려든 사회에 대한 배려든 나를 먼저 세우고 나서이니, 매일 조금씩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내가 되자. 내 존재를 자각하고 성찰하는 게 더 중요하구나,라고 다시 또 다지고 있던 중이었죠. 반가운 이 서평들이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행운이라고 답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2020년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