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03:01-12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마태복음 03:01-12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마태복음 03:01-12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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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자 메시지>

온전한 회개를 통해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좋은 열매 맺는 알곡으로 살기 원합니다(마태복음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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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사신 후 2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고 때가 이르러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를 세례 요한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정결 세례를 행합니다. 여기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오자 그들을 향하여 경고하면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뒤에 오시는 메시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어 심판하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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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세례요한의 메시지 그리고 그에 대한 구약적인 배경 그의 외모와 먹는 것과 활동하는 지역 그리고 그가 행한 사역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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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께서도 그리고 이후에 제자들도 함께 전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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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의 변화를 요구하며 그것은 사람들의 행위와 삶의 전반적인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거짓 왕(사탄, 인간 왕, 자기자신, 종교)을 섬기느라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에 있지 못한 마음을 돌이켜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며, 그 모든 일들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회개는 왕(주인,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는 말과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전격적인 행동의 변화입니다. 이런 삶이 드러난 증거를 “열매”라고 표현하는데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참된 백성에게 기대되는 마땅한 증거를 자주 이 상징으로 표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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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어떤 장소적인 개념보다는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시다. 하나님이 다스린다, 하나님의 왕권’'라는 통치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자가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곧 천국(유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에 좌소인 하늘을 대신하여 “하나님나라”를 “하늘나라-천국”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천당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은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이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참된 왕으로 오시니 그 왕을 알현하고 영접하는데 걸림이 되는 죄를 삶에서 제거하는 일이 회개요 요한이 선포하는 메시지입니다. 참고로 마태는 하늘나라(천국)는 32회, 하나님나라는 4회 정도 사용합니다(12:28; 19:24; 21:31, 43; 참조. 6:33). 이 천국이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만 유일하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말을 다른 부분에서는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독자들에게 정형화된 표현을 쓰는 것일 뿐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피하려는 이유가 있진 않은 듯 하다. 부차적으로 땅에 속한 왕국과 대조되는 하늘에 속한 왕국을 부각하는 기능도 합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갈망한 지상에 속한 다윗 왕국이 아닌 천상에 속한 그러면서도 지상에 영향을 끼치는 메시아 왕국임을 각인시켜 주려 사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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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왔다’라고 번역하는 “엥기켄”이라는 단어는 “막 도래하고 있다”라고 번역합니다. (마 26:45-46 가까이 왔으니; 롬 13:12 가까웠으니) 이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 상황이 더는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상황이 아님을 부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막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성취 직전 시대에 속한 인물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천국 곧 하나님나라 왕(메시아)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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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적 배경이 되는 이사야(40:3)의 말씀은 말라기 4:5~6과 더불어 종말에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와서 왕의 길을 평탄케할 것에 대해 예언합니다.

그래서 요한의 모습이 엘리야처럼 낙타털 옷이나 가죽 띠를 띠고 먹는 것은 메뚜기 석청이라고 소개합니다. 엘리야가 죽지 않고 승천했기에 언젠가 그가 다시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에 대한 기대가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낙타털이나 가죽띠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무난한데 메뚜기와 석청(꿀)을 듣고는 혹자는 웰빙식을 먹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요한이 활동했던 그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이 그리 많은 곳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생각하는 메뚜기와 꿀이 아니라 메뚜기는 비슷한 발음을 가진 쥐엄나무 열매로 석청은 종려나무 열매가 돌 사이에 떨어진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 둘은 가난한 자들이 먹는 최소한의 음식으로 광야에서 요한의 삶이 웰빙식이 아닌 선지자로서 자신의 메시지에 합당한 빈한 자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음식들은 광야 공동체 생활에 기본적 음식이며, 제사장 가문의 사치스러운 삶을 포기한 사람의 절제된 음식입니다.

오늘 선지자적인 메시지는 둘째치고 삶의 모습마저도 배에 기름이 낀 목회자 또는 그런데 너무도 익숙한 우리는 아닌지….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육적으로 무엇을 입고 먹고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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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활동지는 유대 광야(사막)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미 출애굽 여정에서 광야는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떻게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분인지 철저히 경험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장소이며 랍비들은 심지어 광야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신혼여행하던 장소라고도 합니다. 그런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만난 자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광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요한에게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광야의 시간 광야로 나아가는 시간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묵상의 시간은 광야의 시간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하나님을 만나고 소통하며 그 뜻을 알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광야의 시간을 잘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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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산헤드린 소속 지도자)과 사두개인(성전 제사장 중심의 지도자)들이 왔을 때 요한은 그들을 향해 질책과 더불어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좋은 열매, 알곡이 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찍혀 불에 던져지고, 태워지리라 경고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말씀을 잘 알고 있고 종교적 제의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나

삶에 있어서는 그에 상응한 열매가 없는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곧 왕이 바뀌는 것인데 그것은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열매는 마음의 변화이며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삶의 변화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결국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마 7:21). 열매 없는 입술의 고백은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입술의 고백을 참된 믿음으로 입증해 주는 것은 그에 합당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9절의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들이 혈통적인 요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구원, 천국백성)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돌을 들어 그들의 자부심에 대해서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 돌(아바님, 아브나야)과 자손(바님, 베나야)는 요한이 사용한 언어유희인데 하나님은 생육 능력이 없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만들어 내셨듯이 돌들로도 참된 이스라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나오는 나무는 통상 무화과 나무를 말합니다. 이후에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열매 없는 것을 질책하셨습니다. 실제 성전 제단에 불씨를 살리는데는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가 불쏘시개로 사용됩니다. 일년에 5차례나 열매를 맺는 나무에 열매가 없는것은 쓸모없는 나무로 물을 많이 먹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 없을 때 찍어버리면 불쏘시개로 좋은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

너무도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마음과 삶의 모습 속에서 점검해 봅니다. 알곡이 되어가는지, 쭉정이로만 있는지…

#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백성 곧 새 이스라엘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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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세례는 물로 세례를 주는 정결의식이고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로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물로 정결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정결케 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성령과 불은 하나로서 회개하는 자는 정결케 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소멸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심판의 기능이 부각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오셔서 심판은 시작되었으며 마침내 다시 오실 그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또한 불은 심판의 수단인 동시에 정화를 통한 구원의 수단도 됩니다. 성령님이 구약에서 한편으로는 태워 소멸시키는 심판과 연관되고(사 4:4; 렘 4:11-16), 다른 한편으로는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운 순종적 관계로 들어가게 하는 갱신과 연관해서(사 32:15; 44:3; 겔 36:25-27; 39:29; 욜 2:28-29) 언급되기도 합니다.

지금 왕을 알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회개의 합당한 열매, 좋은 열매, 알곡인지 아니면 쭉정이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께 정결한 마음을 구합니다. 더불어 오늘날 교회에도 세례자 요한처럼 각자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역자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것이 비록 준비하는 임무이거나 보조하는 역할이더라도 그것을 충직하게 수행히는데 헌신하는 사역자들 말입니다. 더불어 자신을 지극히 낮추는 요한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으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원-현재-과 심판-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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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 : 주 영광 나타내소서(다윗의 장막) http://youtu.be/L5ecbjR7IGc

정결한 마음 주소서 주는 소멸하는 불

여호와의 산 그 거룩한 곳 오를 자 누군가

허탄한 뜻 버리고 주 가신 의의 길 따르리

깨끗한 손들어 경배케 하소서

주 얼굴 구하리 오 주 얼굴 구하리

구원의 하나님 주의 의로 이 백성 일으키소서

주는 주의 일 이 수년 내 부흥케 하소서 주 영광 나타내소서

어린양 따르리 어디로 인도하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주 따르리

주 영광 나타나 모든 육체보리라 주 이름 온 세계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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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전한 회개를 통해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삶의 모든 영역에

좋은 열매 맺는

알곡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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