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6:12-35
민수기 16:12-35 광야학교의 하극상과 퇴학
*
반역한 고라에 대한 책망에 이어 르우벤 자손들에 대해서도 모세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응하지 않고 반역을 정당화하며 모함하자 모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반란 무리들을 멸하려 하자 모세와 아론은 중재를 시도하지만 하나님은 무리에서 떠나라 합니다. 대화를 거부하고 오지 않은 르우벤 자손에게 모세는 장로들과 함께 직접 갑니다. 이어 모세의 중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부응하기 위해 회중을 반역의 무리에서 떠나게 하고 하나님께서 새일을 통해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자 땅이 갈라져 반역의 무리들을 삼키고 분향한 무리들을 불사릅니다.
*
# 16장의 두개의 반역 사건 :
- 첫번째 반역(1-40절) : 고라, 다단, 아비람, 온, 250명의 지도자들
- 두 번째 반역(41-50절) : 온 회중
*
# 16-18절 군림하지 않고 섬기는 자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군림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어 모세는 고라와 반란의 무리들에게 여호와 앞으로 향로를 들고 나와서 회막 문에 함께 섭니다.
.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알았기에 모세는 결코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사례도 보상도 손해도 받거나 끼치지 않았음을 말하고 당당하게 여호와 앞으로 향로를 들고 회막문 앞에 나오라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아론과 함께 회막문 앞에 나아가 선다. 250개의 향로를 든 무리들과 모세는 아론과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
반역한 무리들이나 군림하지 않고 살아온 모세나 지금은 동일하게 회만문 앞에 나아갔지만 머지 않아 여호와께서 선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세우시는 자만 살아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주 안에 있다고 자고하거나 교만하지 말라. 참된 주님의 판단 앞에 나아간다면 교만하고 자고한 자들 중 남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많은 무리들이 걸어 간다고, 동조하고 있다고 다 옳은 일은 아닙니다. 평소의 삶이 거짓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진리의 길로 행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주를 향하여 집중할 때만이 분별있는 처신이 가능해집니다.
.
# 19-24절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아신다.
고라가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회중에게 나타나 멸하려 하자 모세와 아론은 급히 엎드려 중보합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회중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 명합니다.
.
수적인 우위 앞에서 자신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호와께 판단을 의뢰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모세와 아론을 공격하려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서 이들을 멸하려 한다고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합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중재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아시는 여호와께서(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한 사람의 잘못으로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아룁니다.
.
무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고, 무지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지도자는 늘 깨어서 기도하는 자입니다. 아직도 세상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있어서 주님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 교회를 바로 세워가고 말씀으로 세워가고 복음으로 세워가는 일이 교회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중보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온 회중은 이들 반역자들의 장막에서 떠나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이들의 반역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부각됩니다.
.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이라면, 우리의 신앙이 신실하다면, 우리의 소망이 주께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일들을 주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주께 있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모세 뿐 아니라 아론이 함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갑니다. 그렇게 깨어 있는 거룩한 이들의 생명을 다한 섬김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지체들을 향하여 오늘은 엎드려 기도하고 손을 내밀때입니다.
*
# 25-27절 여호와 하나님은 심판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다.
22-24절에서 모세와 아론의 중보에 따라 하나님은 회중을 반역의 무리에서 떠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에게 장로들과 함께 가서 회중들에게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이에 무리들는 떠나지만 다단과 아비람은 오히려 처자식을 데리고 자신들의 장막문에 섭니다.
.
반역한 무리들의 선동에 동조한 무리들이 부화뇌동할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헤렘을 작정하셨으나 모세와 아론의 중보에 마음을 돌이키사 회중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성막의 남편에 진을 친 반역의 무리들(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에게 장로들과 함께 갑니다. 이는 모세가 자고하며 군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함과 동시에 이 일을 독단적으로 경거망동한 것이 아니라 동역자들과 함께 신중하게 처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가서 회중들에게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을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이미 반역한 무리들은 필경 망할 악인들로 정의하고 그들의 물건을 멸할 것이기에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헤렘(진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악인과 함께 멸망할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물이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악인들에게서 떠나지 않고 그들의 물건을 접촉하는 일은 결국 악인의 길에 물들고 동일하게 반역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무리들이 순종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지만 반역한 무리들은 처자식까지 데리고 나오면서 여전히 대항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거부하고 돌이킬 기회를 외면합니다. 패역함과 강퍅함은 결국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시 1:1). 날마다 주의 말씀을 주야로 즐거이 묵상하는 자입니다(시 1:2). 하나님의 경고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신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에도 여전히 자신이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은 대적하는 일이고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지금 나의 언행심사에 이러한 강퍅함은 없는가?
*
# 28-30절 여호와 하나님은 새 일을 통해 심판의 주권을 행하십니다.
모세는 앞으로 진행되는 심판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보내 행하신 것임을 알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반역자들의 죽음과 벌이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새 일 곧 땅이 입을 열어 삼켜 산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실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결국 여호와를 멀시한 것임을 회중들이 알게 되리라 말합니다.
.
출애굽과 시내산, 십계명과 성막, 그리고 광야 여정까지 모세는 이 모든 일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보내셔서 행하신 것이지 임의로 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반역한 무리들을 심판하는 일도 마찬가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이기에 그 증거가 분명함을 역설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고 벌을 당하는 보편적인 죽음과 벌이 있는데 지금 이 반역의 무리들은 땅이 입을 열어 삼켜 스올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곧 지진과 같은 형태로 보입니다. 이토록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이들의 반역이 결국 모세와 아론의 정치적 제사장적인 권위에 도전한 것이 하나님을 반역 하고 멸시하는 것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배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기도의 응답과 역사는 우리가 미처 계산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하는 방법으로도 역사하고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방식, 광야학교를 살아가는 방식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언행심사 또한 거룩한 백성 답게 부르시고 보내신 이의 뜻에 합당하게 처신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 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임의로 행할 때 그것은 곧 모든 만물의 주되시는 주님의 주권을 멸시하는 것이며, 우리의 욕망을 따라 우리 스스로 왕이 되려는 반역과도 같은 위험한 지경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매일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바로 이 정치적인 부분입니다. 누가 우리의 왕이냐는 것이며, 나의 삶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지 늘 확인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깨닫길 기도하고, 깨달을 후에는 또 그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행하실 새 일을 기대하면서도 모든 심판의 주권이 주님께 있으니 행한대로 심는 대로 거두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부르신 그 뜻을 따라 오늘도 충성된 발걸음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
# 31-35절 여호와 하나님은 땅을 가르고 불을 살라 심판하십니다.
모세의 말이 끝나자 마자 땅이 갈라져서 반역한 무리들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자 산채로 스올에 빠지고 땅이 그 위에 덮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데 또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 반역의 무리 중에 분향한 250명도 함께 불사릅니다.
.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을 뿐 아니라 그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함께하시며 역사하셨습니다. 심각한 반역을 처리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모세의 믿음에 하나님은 부응해 주셨습니다. 모세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지진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면서 순식간에 땅이 갈라지도 반역의 무리들을 삼켜버립니다. 가히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회중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두려워 합니다. 단순한 두려움과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이유를 두 눈으로 목도하며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진행된 250명에 대한 심판은 성막에 다른 불을 켜다가 죽은 나답과 아비후와 유사합니다. 결국 제사장 직을 탐하다가 나답과 아비후처럼 불에 타 죽은 것입니다. 조상들의 신앙에 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신앙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었더라면 지금 이들이 분향하는 다른 불과 행위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탐욕으로 눈먼 이들의 판단력은 흐려졌고, 기억은 쇠하였으며, 뵈는게 없고 오로지 탐욕으로만 점철되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변개치 않으시고 소멸치 않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성취된 수많은 예언들을 보면서 오늘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과 바른 길로 행해야 할 여정을 더이상 미뤄서는 안됩니다. 어느새 나태와 기만과 게으름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여정에서 딴 길로 나가거나 외면하거나 소홀함은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잘못된 불신앙의 전철을 밟지 않고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좋은 본을 보여 바른 길로 행하며 바른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탐욕으로 인해 주님의 역사를 무시하지 않고
주님을 알기 전과 후에 분명한 변화와 신앙을 고백하게 하시오며
왕같은 제사장이지만 군림이 아니라 섬김의 제사장이게 하옵고
많은 이들이 가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행케 하시며
어떤 위협에도 원수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섬김을 위해 부름받은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심판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지금 강퍅한 심령으로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는 죄를 깨닫게 하소서
우리이 모든 언행심사가 부르시고 보내신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우리가 임의로 행치 않길 원합니다.
주님을 향한 경외를 회복하고
항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처신하는 삶이게 하옵소서.
*
<묵상 팁>
# 김경열교수 묵상 팁 1
이 본문에서 난제는 이야기의 흐름이 언뜻 단절되어 보인다는 점에 있습니다.
앞서 고라와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이 함께 반역을 일으켰죠. 이어서 모세는 주동자 고라와 그의 무리들에게 “내일 각자 향로에 불을 담아 와서” 하나님 앞에서 누가 택하신 자인지 시험을 받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하게도 장면이 바뀌면서 다단과 아비람이 각자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가 있고 모세가 그들을 호출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것이 연달아 단절의 느낌을 주는 이유는 곧이어 16절에서 다시 고라와 그의 일당들에게 “내일 모이라”고 지시하는 장면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다시 이야기는 그들이 다음 날 모세의 말대로 각자 향로에 불을 담고 회막에 집합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비평학자들은 고라 에피소드(P 자료)에 느닷없이 다단/아비람 자료가 끼어 들어와 단절과 부조화, 모순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죠.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로 다단과 아비람이 진영에 있는 장면이 펼쳐지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들의 주 목적은 모세에 대적한
정치 권력의 교체였기 때문에 여론을 조성하고 민중들을 선동해야 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세를 규합하기 위해 성막 앞에 모였다가 즉시 각자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고라 일당이 각자 "자신의 향로"를 가져왔다는 표현은 그냥 지나쳐선 안된는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신자들의 바른 신앙과 관련해서 크게 강조되어야할 내용입니다. 그것은 묵상과 설교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두번째로 주목해야할 중요한 표현은 다단과 아비람의 입에 나온 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우리를 인도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도 최악의 불경스런 표현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이집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표현한 것은 너무나 무엄하죠. 이 표현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만 적용하셨는데 사람이 사용할 때는 이집트 땅에 적용해요.
참고로 "온"이란 인물은 처음에만 언급되고 이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전승의 자료 차이 때문으로 설명하는데, 그것보다는 주도적이거나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이죠. 다단과 아비람이 주동자인 겁니다. 넘버 쓰리는 어디서나 주목을 못받는 법이죠... 영화 <넘버 3>가 인간 사회 조직의 그런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
*
# 김경열교수 묵상 팁 2
고라 이야기는 갑자기 장면이 바뀌면서 두 가지 사건이 교차로 등장합니다. 고라 일당의 성막 입구에서 쿠타테 장면과 다단/아비람의 장막 현장에서 시위 장면입니다.
그래서 비평학자들 대부분은 이 이야기를 P와 JE 기사의 짜집기로 분석한다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아선 안된다고 설명드렸어요.
내일 본문도 그래요. 이야기의 흐름은 갑자기 모세가 장로들을 이끌고 다단과 아비람에게 찾아가는 장면으로 바뀝니다. 모든 반역자들이 회막 앞에 운집해 있었는데 그들은 어느 순간 각자의 장막으로 돌아간 것이죠.
본문은 그 과정은 언급하지 않고 침묵하나 아론 가문의 제사장 권에 도전한 고라와 250명의 무리만 회막 앞에 여전히 남아 있고, 모세의 정치적 지도권에 반기를 든 다단과 아비람이 진영 내의 자신들 구역으로 돌아가 모반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라 이야기에 다단/아비람 자료가 갑자기 끼어든 결과로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단절되고 모순되며 엉뚱하기 까지 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민수기 저자에 대한 큰 모독입니다. 설사 편집되었다해도 그렇게 어설픈 수준 이하의 편집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모세의 작품으로 당연시 하구요.
몰살 심판이라는 무서운 두 재앙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합니다. 이 두 종류의 몰살 심판 또한 두 자료의 증거라 제시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라가 주도한 그 반역은 두 경로(two track)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설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죠.
고라 일당은 제의적 권력의 찬탈이 목적이고 다단/아비람은 정치적 권력의 교체가 목적입니다. 물론 모세-아론 둘 다를 뒤엎어야 그들의 목적이 성공을 거두죠. 여기서 궁극의 권력자는 물론 모세죠.
따라서 고라 일당의 반역도 모세에게 초점이 맞춰 있지만, 그를 끌어 내려 아론 가문의 제사장 권을 빼앗아 올려 한 것이죠.
하지만 고라 가문도 고핫 자손에 속하여 아론과 모세와 같은 집안 사람들입니다. 레위의 세 가문, 고핫, 므라리, 게르손 가문 중에서 고핫 자손이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은 레위인들이죠. 그들은 성막의 중요한 비품들을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직책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론 가문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진 제사장 직분을 욕심 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도다"고 꾸중한 것이죠.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가문에 속합니다. 르우벤이 장자였는데 그 장자권이 요셉에게 넘어가 빼앗기죠. 하지만 기득권은 이토록 무섭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그것을 수긍하지 못하고 장자의 자격을 회복하려 하면서 권력 교체를 시도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