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1:01-24 광야학교의 성전(聖戰)과 성결(

민수기 31:01-24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민수기 31:01-24 광야학교의 성전(聖戰)과 성결(聖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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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마지막 사명인 미디안과의 젼쟁을 명하십니다. 이에 모세는 군대를 조직하여 미디안을 치고 발람도 함께 죽입니다. 이후 이스라엘 사손은 전리품들을 취하여 돌아옵니다(가나안 족속에 대해서는 진멸(헤렘)을 명하고, 그 외의 족속들은 남자들만 죽이고 일부는 전리품으로 취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 승리한 군인들을 맞은 모세는 이들이 가져온 전리품 중에서 헤렘을 수행하지 않은 일로 진노하며 온전한 헤렘을 명하고, 이어서 군인들의 정결 규례를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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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사명을 다하는 날까지도 영적 전쟁은 계속됩니다.

지난 40년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한 모세에게 여호와께서는 최종 미션을 명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인 미다인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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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브올에서 이스라엘은 발람으로 인하여 모압 여인들과 음행한 연고로 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성결을 더럽히고 부정하게 만들었던 미디안 종족들을 여호와게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로 규정하고 동시에 그들은 여호와의 원수(3절)로 여깁니다. 미디안은 여러 종족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아직도 다 진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치는 전쟁을 마지막으로 모세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넘어뜨리게 하는 부정한 것들로부터 모세와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회중은 싸워야 했습니다. 이제 이들을 대표한 모세를 향하여 그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거룩을 위한 성전(聖戰)을 명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하는 그 때에라도 여전히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거룩을 방해하고, 온전히 주만 바라게 하는 일들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는 일들을 회유하는 위험들과 부정한 것들의 유혹과 미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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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도 미디안처럼 우리를 넘어뜨리게하고 부정하게 하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앙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과 정결을 빼앗기는 것들은 너무도 가까이, 너무도 많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잠시라도 깨어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러한 부정한 것들에 마츰을 빼앗기고,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사명을 망각한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일부 이 나라의 존경받는 지도자들 중에서 일평생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직을 잘 감당하다가 말년에 미혹되어 넘어져서 추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모든 수고를 뒤엎는 안타까운 이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성적인 것이든, 명예에 관한 것이든 우리로 하나님의 사명에 집중하지 못하게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는 깨어 자신의 거룩을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도 엄습해 오는 유혹과 미혹과 전쟁들을 늘 깨어서 기도하며 대적해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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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절 말과 병거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의 여부가 승전의 기본 요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천명씩 전쟁에 나갈 이들을 선출하고 무장하여 미디안을 치러 보냅니다. 이스라엘 백만 중에서 일만 이천명을 중무장하여 전쟁에 보냅니다. 또한 제사장(비느하스)과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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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스라엘 군대를 차출하면서 미디안을 ‘여호와의 원수’로 규정합니다. 결국 이 전쟁이 단순한 보복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聖戰)임을 분명히 알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승리가 말과 병거와 군대의 다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인정하시고 함께하시고 허락하시는 지가 중요함을 아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무장한 군대에 제사장 엘라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전쟁에 보냅니다. 이러한 것은 지금 이 전쟁의 승리가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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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삶의 승리도 돈과 힘과 권력과 여타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지의 여부가 관건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의 계획과 사역들이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것인지, 허락하시는지,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지의 여부가 더 선행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말씀의 인도와, 말씀의 가치에 일치하지 않으면서 승리를 기대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승리를 달라고 간구하기 전에 내가 지금 주님이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그 방향을 따라 가는 지의 여부를 더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음에도 승리를 달라 하는 것은 결국 망하는 길로 가는 길에서 더 멀리 떠나게 해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의 영적 전쟁의 무기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이면서 성령의 검 곧 말씀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기본이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갈 때라야 어떤 결과라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이기에 승리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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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2절 전리품이 아니라 전쟁에 승리를 주신 여호와를 바라봐야 바른 자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하여 미디안을 이깁니다. 그래서 미디안의 다섯 왕(에위, 레겜, 수르, 후르, 레바)을 죽이고 거기다가 바알브올의 사건의 주범인 발람도 칼로 죽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남자만 죽이고 전리품(부녀들과 아이들과 가축과 재물들)을 취하여 모세와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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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게서 전리품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부정한 족속이었기에 원수를 갚으라 한 일이어서 그들의 전리품을 취하는 일은 하나님의 분명한 기준을 따라 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에 승리하고도 여호와께 감사하는 일보다는 전리품을 취하는 일에 급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전리품의 목록들을 반복해서(9, 11, 12절) 세 번씩이나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으로 먹고 취하고 누리는 것이 여호와의 하나님 됨을 온전히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전쟁의 승리에 취해서 이들은 그들이 누린 부정한 것들을 취하여 광야 여정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최중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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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영적 전쟁의 목적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유익들 중에서 우리들은 어떤 부정한 청탁과 사례와 유익을 취하는 일을 삼가해야 합니다. 원래의 목적을 이루는 일 외에 전리품같은 수입들은 자칫 우리들을 삶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보다 물질에 더 관심을 갖게하고 넘어뜨리게 합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호의가 의무처럼 당연한 것처럼 아니 더 나아가 왜 주지 않는지에 마음이 빼앗겨서 이런 사역을 감당하는 이유조차 망각하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신이 취하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더군다나 그런 물질의 유혹은 심히 크기에 금새 본질적인 것보다 다른 부수적인 물질의 유혹에서 금새넘어지고 마는 연약함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삶의 승리, 거룩,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늘 명심하고, 무엇인가를 더 소유하기를 힘쓰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더 관심과 마음을 두고 사는 자세가 바른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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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8절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돌아온 군대를 맞이한 모세는 그들이 이전에 바알브올 사건에 연관된 여인들과 살려둘 수 없는 이들을 살려 준 것을 발견하고 남자아이와 사내를 아는 여인들을 다 죽이고 그렇지 않은 여인을 살리라고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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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미디안과의 전쟁을 하나님의 전쟁 곧 성전으로 알고 진행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족속들과 달리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음행하게 한 장본인들로서 헤렘(진멸)의 대상이었습니다. 헤렘은 심판입니다. 이들의 죄악이 관영하여 더이상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대가로 심판을 명하여 진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이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오늘날의 윤리적인 잣대로 헤렘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주로 가나안 족속은 철저한 진멸이지만 가나안 이외의 족속들은 부분적 헤렘을 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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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족속에 대한 헤렘의 이유를 밝힙니다. 그들이 이전에 발람의 꾀를 따라서 이스라엘 족속들을 모압 여인과 음행하게 하여 범죄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염병이 일어 많은 사람을 죽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이기에 심판적 헤렘을 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에 연루된 이들을 살려두고 전리품으로 취해 왔으니 여호와를 대신하여 모세가 노를 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속히 여호와의 뜻을 따라서 헤렘을 실행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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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인권)적인 이유보다는 전리품에 대한 탐욕이 결국 하나님의 명령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실행 했다가 심각한 불순종의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주님을 따르는 광야학교의 여정 속에서 계속 우리를 미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보다는 탐욕을 통해 스멀거리는 이기적인 행동들의 불순종의 길로 행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 곧 탐욕에 기인한 행동은 결국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죄악으로 치달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오늘도 탐욕은 우리를 얼마든지 죄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작은 탐욕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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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절 공동체의 정결은 전쟁 중에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세는 군대가 7일동안 진영 밖에 주둔하며 셋째날과 일곱째 날에 군사들의 몸과 포로들의 몸과 의복과 모든 기구들을 깨끗하게 하도록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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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명하신 전쟁 이었어도, 전쟁에 승리하였다 하더라도, 시체와 접촉하게 되면 모두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정결하게 하는 일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대는 이스라엘의 진영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거룩을 위한 정결 예식을 거친 후에라야 공동체에 다시금 합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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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도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늘 긴장속에 깨어서 거룩을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분주함과 산적한 일들이 혹 우리 자신의 나태함 때문인지 물어야 합니다. 죄는 종종 우리에게 특별한 상황이라고, 딱 한 번쯤은 괜찮다고,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서 타협하게 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정결을 아무리 지나쳐도 중요하고, 전쟁중에라도 지켜야 할 거룩에 대한 부분은 끝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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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3절 우리의 모든 소유도 정결해야 합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이 싸움에 나간 군인들에게 여호와께서 알려주신 정결 율법에 대해 상기시킵니다. 불에 견딜만한 모든 물건은 불로 깨끗하게 하고, 불에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하게 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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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엘르아살은 비록 헤렘을 명하여 문제가 된 부분들을 정리했지만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들에 대해서도 미디안 족속들이 사용하던 것이어서 부정하기 때문에 역시 정결 규례를 치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에 견딜만한 것은 불로, 견딜 수 없는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민 19장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 물)로 씻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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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에서는 피와 물과 불이 정결하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것들로 정결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소유가 거룩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 대한 정결을 이루기 위한 조치이고 물과 불과 피로 정결케 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물), 그리스도의 피가(피), 마지막 때의 불이 거룩하게 해 줄 수 있음을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론을 통해 정결규례를 세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한 부분들을 정리하지 않을 때는 단호하게 소유의 정결등에 대해 깊이 재고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든 소유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분야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길 곧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한 행동을 하는 것이 바른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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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절 거룩한 자만이 하나님의 집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옷을 빨아 정결하게 한 후에 진영에 들어오도록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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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참여한 군대들은 일곱째 날에 정결규례를 따라 옷을 빨고 깨끗하게 한 후에는 진영에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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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명령한 전쟁인 헤렘이어도, 그리고 오늘 우리들의 영적전쟁에서의 헤렘도 모두 동일하게 거룩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라야 진영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만일 한 두 사람의 부정이라도 드러난다면 공동체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잠시 불편하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래서 모든 소유에 있어서 거룩을 유지해 가는 자만이 하나님나라를 유업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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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 삶의 승리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

허락하신 사명을 완수하는 날까지

우리에게 남겨진 영적 전쟁에서

여전히 깨어 있게하옵소서.

우리 삶의 승리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깨닫고

더욱 말씀의 검을 갖는 일에

힘쓰는 자 되게 하옵시며,

소유에 집착하여 분주함 속에서

날마다 살아가지 않고

주님의 뜻과 관계에 더 집중하며

광야학교 삶의 여정에 매진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의 삶에 탐욕을 제어하고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믿음 주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공동체의 정결을 지킬 수 있도록

또한 공동체가 함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정결을 지킬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래서 정결의 영역이 나의 모든 소유임을 알게 하옵소서.

그래서 여호와의 집에 거하게 되는

복있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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