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천지만물여아동근(天地萬物與我同根)

쉴만한 물가 - 189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60514 - 천지만물여아동근(天地萬物與我同根)


“우주 공간에서 우리의 별 지구는 다른 별 하나를 만난다. 그 별이 지구에게 묻는다. “너 잘 지내니?” 우리의 별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가 못해. 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태우고 다니거든.” 그러자 그 낯선 별이 지구를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까짓것, 신경 쓰지 마. 금방 사라질 거야.”(_프린츠 알트, “생태주의자 예수” 중에서)


우리가 후손들로부터 대여해서 쓰고 있는 이 지구별이 자꾸 병들어 간다. 몸살을 앓는다. 죽어가고, 사라지고, 스러지고, 오염되고, 앓고, 먼지로 가득한 혼돈으로 치달으며 재생 불가능한 고갈을 향해 치닫고 있다. 또 수많은 생물의 종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가는 황폐화의 진행이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앞에 피부로 느끼기까지 간극이 있다 보니 고갈과 황폐화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가 우리들과 직접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손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러기엔 이미 회복 불능인 상태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때를 놓쳐서 어찌할 수 없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인간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가?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오, 남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가 토해내 버릴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기껏 이 땅에 백 년도 살지 못할 이들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불교의 우주론)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 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_정현종 님의 시(詩) “한 숟가락 흙 속에”)


종교에서의 우주론은 대부분 우주와 인간 창조의 기원을 말하면서 그 세계의 광활함과 더불어 기원에 대하여 말할 때 대부분 그 근원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미물 하나 모두 그저 우연하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김과 태어남의 근원이 모두 같든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설명한다. 인간을 말할 때 홀로 주체가 아니라 서로 함께 더불어, 덕분에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향하여 함부로 대하거나 오남용 하거나 파괴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지킴이로 보존자로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덕분에 살아가는 인간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남용하거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땅을 병들게 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심지어 생물을 비롯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생명을 빼앗는 일은 곧 자신의 근원을 부정하고, 결국 같은 근원이며 서로 연결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죽이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천지만물여아동근(天地萬物與我同根)은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라고도 말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 같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인데 이러한 종교적 고백의 이면에 담긴 뜻은 타인을 지배하고 죽이고 이용하며 배타적인 삶의 우월적 권위를 주기 위한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고백과 사상은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가 임의로 다룰 수 없다는 고백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의 그 뿌리에서는 다 연결되어 있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 평화와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라는 이야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명령이다. 이런 생태학적 감수성을 잃어버린 인간이 많이 질수록 땅과 토지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들은 평화와 생명보다는 전쟁과 죽음으로 점철되는 것이다.


연일 그런 우리의 피조된 이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파괴하고도 뻔뻔스러운 인간 궁상들을 만난다. 호흡기로 농약과도 같은 살균제를 투여하고, 어린 생명들을 아무렇지 않게 수장하고, 힘없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며 주어진 권력을 파괴의 힘으로 행사하며 살아가는 이들… 스스로 자멸의 길인 줄도 모르고 치닫는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무지로 변한 곳에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중국의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엄마 이지에팡) 개발 지상주의와 자본주의 탐욕의 물결에 휩쓸린 이들은 제 한 목숨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모으고 파괴하고 쌓고 세워가고 있다. 그런 세상을 향해 큰 가르침을 통해 세상을 깨운 이들을 성인이라 하고, 그런 이들을 스승으로 존중한 이들의 저항의 삶이 멸망으로 치닫는 물결의 마디마다 생겨서 그나마 아직 여기 우리가 사는 것이다. 길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먼저 걸어가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길이 생기는 것이라 한다. 이런 삶을 살았던 선지자들의 뒤를 따르며 나와 생명의 근원이 같은 이웃들과 더불어, 덕분에 사는 것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찾는 피조물들 아우성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월의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