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9:20-30
역대상 29:20-30 아름다운 끝,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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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의 통치가 영광스럽게 마무리되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가 평화롭게 계승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은 온 회중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명하고, 백성들은 이에 화답하여 하나님과 왕에게 경배하며 즐거움 속에서 엄청난 규모의 제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솔로몬은 공식적으로 다시 한번 왕으로 기름 부음받고, 사독은 제사장으로 세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여호와의 왕위’에 앉히시고 이전의 어떤 왕보다 큰 존귀와 위엄을 주십니다. 역대기 저자는 다윗의 40년 통치를 요약하며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평안히 죽었음을 기록하고, 그의 모든 사적이 선견자 사무엘과 선지자 나단과 갓의 글에 기록되었음을 밝히며 역대상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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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절 하나님은 온 백성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드리는 온전한 예배와 찬양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회중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하자, 모든 회중이 머리를 숙여 하나님과 왕에게 경배합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이튿날, 그들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 수송아지 천 마리, 숫양 천 마리, 어린 양 천 마리를 번제로 드리고, 또 다른 제물과 전제(음료를 부어 드리는 제사)를 드립니다. 온 이스라엘을 위한 풍성한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붓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으로 삼음으로써 여호와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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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다윗의 통치에서 솔로몬의 통치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단순한 정치적 권력 이양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참여하는 거대한 예배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는 다윗의 마지막 왕명이자,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신앙고백의 정점입니다. '송축하다'(바라크)는 '무릎을 꿇다', '찬양하다', '복을 빌다'는 의미를 모두 포함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대한 전인격적인 복종과 찬양을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다윗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업적이 아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조상들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왕에게 경배: 백성들이 하나님께 먼저 경배하고, 이어서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은(20절), 신정통치(Theocracy)의 이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순종이 왕을 향한 순종으로 이어지는 질서를 상징합니다. 이는 왕을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압도적인 규모의 제사 : 수송아지, 숫양, 어린 양 각각 천 마리는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의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지난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새로운 왕과 함께 시작될 미래에 대한 헌신, 그리고 공동체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속죄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이 풍성한 제물은 물질의 일부가 아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는 다윗의 고백이 공동체 전체의 고백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왕과 제사장의 기름 부음: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고(22절), 사독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것은 다윗 왕조의 정통성과 성전 중심의 예배 질서가 이제 공식적으로 확립되었음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왕의 통치와 제사장의 중보를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것을 보여줍니다. 이 두 직분은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왕(계 19:16)이시며 대제사장(히 4:14)으로서,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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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 모습입니까? 다윗의 마지막 명령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부르심입니다.
예배의 회복 : 우리의 예배가 형식적인 종교 행위나 습관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의 삶 전체를 '거룩한 산 제물'(롬 12:1)로 드리는 감격과 헌신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시간, 재능, 물질,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높이는 축제여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연합 :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함께 제물을 나누며 기뻐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로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신앙을 넘어, 공동체적 예배의 영광과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회 속에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할수록,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연합과 기쁨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에서의 예배 : 예배는 교회당 안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에 순종하며, 우리의 삶의 열매를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의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왕에게 경배'했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이 땅의 권세 위에 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동시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리더십을 존중하고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공동체와 개인과 삶의 예배를 일치하여 드리는 온전한 예배자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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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5절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 위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며, 당신의 주권적인 선택과 능력으로 당신의 사람을 높여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이어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형통하게 됩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모든 방백과 용사, 그리고 다윗 왕의 다른 아들들까지도 솔로몬 왕에게 복종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솔로몬을 심히 크게 하시고, 이전에 이스라엘의 어떤 왕도 얻지 못했던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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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의 핵심은 솔로몬의 왕위가 인간적인 계략이나 힘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약속의 성취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 : 역대기 저자의 신학이 응축된 표현입니다. 열왕기에서는 이 왕위를 '다윗의 왕위'라고 표현하는 반면, 역대기 저자는 의도적으로 '여호와의 왕위'라고 명명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왕은 단지 인간 통치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상은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며 나라와 왕을 잃은 귀환 공동체에게 엄청난 위로와 소망을 주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이 없어도, '여호와의 왕위'는 영원하며, 그들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성취 :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스라엘의 이전 어떤 왕보다 뛰어난 '왕의 위엄'을 주신 것은,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대상 17:11-14)의 신실한 성취입니다. "내가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라는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실패하고 넘어지는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게 흘러갑니다.
온전한 복종 : 모든 지도자와 백성이 솔로몬에게 복종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나 권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여호와의 왕위'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한 것입니다. 이는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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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왕위' 사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삶의 주권 : 내 인생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성공, 돈, 명예, 혹은 나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솔로몬처럼 '여호와의 왕위'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분께 온전히 복종해야 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고백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형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교회와 리더십 : 교회의 모든 직분과 리더십은 '여호와의 왕위' 아래 있는 청지기 직분입니다. 목회자나 장로는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섬기는 종입니다. 성도들은 리더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며, 리더는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 : 세상의 권력과 제도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리더나 시스템에 절대적인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권세 위에 '여호와의 왕위'가 있음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불의와 혼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진짜 왕이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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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30절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이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동행하며 온 마음으로 순종한 인생을 존귀하게 하시며, 그의 삶을 통해 당신의 신실하심을 증거하십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했습니다.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이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아 늙도록 부와 존귀를 누리다가 죽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뒤를 이었습니다.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 선지자 나단의 글, 선견자 갓의 글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에는 그의 모든 통치와 권세, 그리고 그와 이스라엘과 다른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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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 저자는 다윗의 인생을 한 폭의 그림처럼 요약하며, 그를 이상적인 왕의 모델로 제시합니다.
이상적인 죽음 :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니". 이는 '선한 백발로, 날들이 가득 차고, 부와 영광 속에서 죽었다'는 의미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을 받은 인생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창 25:8의 아브라함). 역대기 저자는 밧세바 사건이나 압살롬의 반역 같은 다윗의 오점을 의도적으로 생략함으로써, 그의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의 증거였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신학적 편집입니다. 즉, 다윗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를 붙드시고 언약을 이루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포로 후기 백성들에게 다윗과 같은 믿음의 길을 걸을 때 주어질 소망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이 표현은 다윗이 분열되지 않은 통일 왕국을 다스렸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분열과 멸망의 아픔을 겪은 귀환 공동체에게 '하나 됨'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하나 될 이스라엘의 회복을 소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역사 : 다윗의 역사가 왕의 공식 기록이 아닌, 사무엘, 나단, 갓과 같은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되었다고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히 인간사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구속사(Salvation History)임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삶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경고, 그리고 위로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그의 모든 행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평가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인생 : 역대기가 그려내는 다윗의 삶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전심'이었습니다. 그는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였고"(왕상 3:6),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성전 건축을 향한 불타는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윗처럼 살려면,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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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웰 피니싱(Well-finishing)'의 삶 : 세상은 '웰빙'과 '웰다잉'을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웰 피니싱'을 추구해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딤후 4:7),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다하는 삶입니다. 다윗처럼 우리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부와 존귀' 즉,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영광으로 가득 차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는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부요하고(눅 12:21) 존귀한 자로 인정받는 삶을 의미합니다.
나의 인생은 어디에 기록될 것인가 :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책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다윗의 삶이 선지자들의 글로 해석되었듯,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조명되고 평가받아야 합니다. 매일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이야기로 채워지도록,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유산 : 다윗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솔로몬이라는 다음 세대를 세우고, 그들이 섬길 성전을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나 자신에게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다음 세대가 믿음 위에 굳건히 서도록 돕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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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조상들의 하나님이시며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송축합니다.
다윗의 마지막 명령처럼,
우리의 삶이 주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 삶의 왕좌를 주님께 내어드려,
'여호와의 왕위'에 앉으신 주님의 통치를 받게 하시고,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윗처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우리에게 맡기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여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축복의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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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상 묵상을 마치며 : 희망의 재건을 위한 청사진
역대상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는 책이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우리의 미래는 있는가?'를 묻는 귀환 공동체를 위한 희망의 신학이자 미래의 청사진입니다.
역대기 저자는 족보를 통해 아담과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들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 속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밧세바 사건과 같은 다윗의 실패를 생략하고, 성전 건축을 향한 그의 열정과 헌신, 그리고 온 백성을 예배로 이끄는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부각함으로써,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소망의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 소망은 바로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과, 그 언약의 중심에 있는 성전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왕은 없지만, 그들의 참된 왕은 '여호와의 왕위'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예배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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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의 다윗 : 역대기가 그리는 이상적인 다윗의 모습은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예표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선택받은 왕(행 13:22)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싸워 승리하고 참된 안식을 주는 왕
하나님의 집(성전, 교회)을 세우기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는 왕
자신의 피(값)로 언약 백성을 하나로 모으는 왕
그의 후손이 영원한 왕위에 앉을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이신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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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대상이 포로 귀환 백성에게 주고자 했던 위로와 소망은 일차적으로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과 예배의 회복으로 실현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성전이 되시고(요 2:21), 영원한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으신 만왕의 왕으로서(눅 1:32-33), 그의 피로 세우신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계십니다.
따라서 역대상은 과거의 기록에 머무는 책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에게도 동일한 정체성과 소망을 선포하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한 존귀한 백성이며, 세상 속에서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드러내는 예배 공동체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교회를 세우며,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삶을 통해,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완성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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