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안의 빈 공간을 채우는

느헤미야 6:15-7:4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느헤미야 6:15-7:4 성벽 안의 빈 공간을 채우는 법

우리의 삶의 외형적 완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나, 진정한 신앙은 그 완성된 성벽 안의 텅 빈 공간을 '하나님 경외'라는 존재의 깊이로 채워가는 순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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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일, 은혜가 세운 경계

느헤미야 6장 15절은 성벽 재건이라는 '큰 역사'가 52일 만에 완성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 압축된 시간표는 우리에게 놀라움을 넘어선 경탄을 자아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한 대적들이 이 소식을 듣고 낙담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이 일이 "우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습니다(느 6:16).

이 지점이 신앙의 역설이자 깊은 위로가 되는 지점입니다. 52일 만의 완성이 유다 백성의 뛰어난 능력이나 효율적인 노동 시스템의 결과였다면, 그것은 인간의 '업적'이 되어 우리의 자만심을 부추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는 방해, 내부의 배신(도비야와 동맹을 맺은 귀족들), 그리고 공포 속에서 일했습니다. 그들이 성벽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능력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연약한 백성들의 고통과 눈물 위를 덮었기 때문입니다.

성벽의 완성은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믿음의 경계를 지키며, 때로는 회의와 절망 속에서 겨우 버텨내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애씀과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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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 이후의 더 큰 과제 : '삶의 건축'

느헤미야서는 성벽이 완성된 기쁨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더 근원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립니다. 외형적인 성벽은 세워졌지만, "그 성읍은 광대하며 거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느 7:4). 물리적 구조물은 완성되었으나, 그 안에 담겨야 할 공동체의 삶인간의 실존은 여전히 텅 빈 채 남아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진정한 시작을 목도합니다. 성벽(형식)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이제부터 삶(내용)의 건축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처럼, 눈에 보이는 구조 너머에 우리가 채워가야 할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완공 후 가장 먼저 문지기, 노래하는 자, 레위 사람을 세우고, 지도자로 하나니와 하나냐를 세웁니다. 그중 하나냐에 대해 성경은 "그 사람이 충성스러워 하나님을 경외함이 탁월한 자"(느 7:2)라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성벽 안의 텅 빈 공간, 곧 우리의 일상과 삶의 현장을 무엇으로 채워야 합니까? 세상이 요구하는 효율성이나 성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경외(敬畏), 즉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우리 존재의 깊이를 채우는 일입니다. 하나님 경외함이 탁월한 자만이, 성벽 밖의 유혹(도비야와의 끊임없는 서신 교환)과 성벽 안의 무질서(빈 집)를 이겨내고 참된 삶의 건축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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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외함, 연약한 우리를 지탱하는 힘

오늘날 우리에게도 '느헤미야의 성벽'과 같은 외형적 신앙의 구조들이 있습니다. 예배당 건물, 교회 조직, 봉사의 자리와 같은 형식들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귀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 경외'라는 내용이 부재하다면, 그 성벽은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 곧 공허한 형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은 이 공허함을 먼저 감지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성벽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빈 공간을 채우고 계시다는 은혜의 확신입니다. 더 적극적인 신앙생활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건물을 짓는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이제 그 완성된 곳에서 '하나님 경외'의 삶을 살아내는, 즉 자신의 존재를 정직하게 다듬는 일상 순례자의 길로 초대합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말씀처럼, 삶 자체가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성벽은 52일 만에 끝났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건축'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되는 영원한 과제입니다. 이 고단한 순례의 길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연약한 우리를 '경외함이 탁월한 자'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그 빈 공간을 경외함으로 채워 나갈 때, 비로소 우리의 인생 성읍은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거주지가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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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6:15-7:4 에세이: 52일의 경탄과 일상의 성화, 순례의 문을 열다

52일 만에 성벽이 완성된 기적은 연약한 인간의 헌신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명확한 증거이지만, 진정한 신앙은 그 이후 시작되는 일상의 성화에 대한 끊임없는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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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일, 경탄이 빚어낸 역사

외부의 조롱과 내부의 착취(대화 기록 참고)라는 양면의 위협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벽은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느 6:15). 이 놀라운 속도는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주변 민족들은 이 사실을 듣고 크게 낙담하고 존경심을 잃었는데, 그들이 "이 역사는 우리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느 6:16).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능력이나 효율성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의 숭고미가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룬 이 성취는 그의 뛰어난 지도력이나 조직력 덕분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연약한 헌신과 열정 위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가 발현된 사건입니다. 우리는 자주 세상의 논리처럼 강하고 화려한 영웅의 이야기를 좇지만, 하나님은 '작은 자들의 땀'을 모아 역사라는 장엄한 ‘생의 천’을 짜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가 아님을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 확증합니다.

하지만 기적적인 성취의 순간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려는 유혹, 즉 '자랑과 과시'의 노를 젓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집니다. 느헤미야가 외부의 위협(산발랏의 집요한 유혹)을 이겨내고 '내려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언한 결단(대화 기록 참고)은, 이제 완공된 성벽 위에서 자아를 드러내려는 유혹과도 맞서 싸워야 함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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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 문과 열린 시선, 일상의 영성

성벽이 완성된 후, 느헤미야의 관심은 곧바로 '내부의 질서'로 향했습니다(느 7:1-4). 외적으로는 견고한 성이 되었지만, 그 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성화(聖化)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 레위 사람들을 세우고(느 7:1), 특히 지도자로 하나니와 영문 사령관 하나냐를 임명했습니다(느 7:2).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나냐의 자격입니다. 그는 "충성심이 있고, 많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느 7:2). 그의 리더십은 학력, 경력, 재산이 아닌, 내면의 경건과 진실성에 근거했습니다. 성벽을 쌓는 일은 한시적인 노동이었지만, 성벽의 문을 관리하고, 내부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매일의 경건한 태도를 요구합니다(7:3-4).

성벽이 완성되자 비로소 문을 달았고, 느헤미야는 문을 여닫는 시간에 대한 규정을 세웠습니다. 즉, 일상의 질서를 잡은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강렬한 '카이로스'(결정적인 구원의 순간, 하나님의 시간)의 시간을 허락하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매일의 '크로노스'(일상의 시간) 속에서 경건의 연습을 통해 평화를 이루어 가십니다.

진정한 신앙은 세상을 개조하려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작은 등불을 밝혀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공동체의 후속 작업은, 우리의 신앙 여정이 특별한 영웅적 행동을 요구하기보다, 익숙한 일상을 성찰하며 매 순간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조율하는 '일상 순례자'의 성실함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홀로 고독하게 걸을 때에도, 혹은 신앙에 회의가 들어 무력감을 느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성벽을 쌓았다고 칭찬하시기 전에, 이미 우리의 연약한 몸이 그분의 구원 역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랑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벽은 완성되었지만, 우리 마음속의 성벽을 끊임없이 보수하고, 문지기처럼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일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이 지속적인 순례의 길에 지치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완성된 성벽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건축가의 솜씨를 넘어, 성벽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그 성벽이 무너진 이들을 다시 품에 안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공동체는 웅장한 건물이나 화려한 행사가 아니라, 매일 서로를 돌보고(괴어 받쳐주며) 사랑의 연대를 이루는 일상의 섬세함 속에서 진정한 거룩을 드러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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