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7:25-36 인간의 편견을 뛰어넘어 참되신

요한복음 07:25-36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요한복음 07:25-36 인간의 편견을 뛰어넘어 참되신 아버지께로부터 오셨으며, 정하신 때를 따라 하늘 영광으로 돌아가시는 구원의 주님
*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향해,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분의 출신(갈릴리 나사렛)을 안다는 이유로 메시아이심을 부정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큰 소리로 자신이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음을 선포하십니다. 무리 중 일부는 표적을 보고 믿었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하속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아 실패하며, 예수님은 자신이 곧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세상은 자기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

# 역사/문화적 배경 : 본문의 배경은 가을 추수 감사 축제이자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초막절'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메시아가 홀연히 나타나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전승(말 3:1 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부모와 고향(갈릴리)이 명확히 알려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은 요한복음의 핵심인 '보냄 받은 자(기독론)'의 사상을 다룹니다. 예수님의 기원은 나사렛이라는 땅이 아니라 '하늘(하나님 아버지)'에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세상 권력이 분노하여도 하나님의 '때(Hour)'가 이르기 전에는 예수님을 해칠 수 없다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됩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알량한 상식과 '익숙함'이라는 틀에 갇혀 진리 자체이신 분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와 교만에 빠져 있습니다.

# 세상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조건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흔들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마주할 요한복음 7장의 말씀은 인간의 얄팍한 지식과 편견을 뛰어넘어 하늘의 진리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익숙함에 갇힌 우리의 영적 감각이 깨어나고, 참된 사랑과 위로의 주님을 깊이 만나시기를 소망합니다.

*

# 25-29절 편견을 깨뜨리는 하늘의 선포 : 인간의 얄팍한 지식과 편견을 넘어, 참되신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시는 성자 하나님.

예루살렘 사람들은 유대 당국자들이 죽이려 하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버젓이 가르치시는데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는 자신들의 신학적 상식을 내세우며, 출신을 뻔히 아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단정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크게 외치시며, 너희가 나의 육신적 기원은 알지 몰라도 나를 보내신 '참되신 분(하나님)'은 알지 못한다고 꾸짖으십니다.

.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유대인들의 '익숙함이 낳은 오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며 목수의 아들이라는 피상적인 정보('어디서 왔는지 아노라')를 진리 판단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은 익숙해질수록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엄숙히 선포하듯 "외쳐 이르시되(ἔκραξεν)"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신적 존재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지식은 충만했을지 모르나, 정작 그 지식이 가리키는 실체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예수님을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동시에 이해할 때 비로소 바르게 아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혹시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모태신앙이니까", "성경 공부도 많이 했고, 직분도 있으니까 예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루살렘 사람들의 그 얄팍한 '익숙함'이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광양이라는 익숙한 지역 사회와 직장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출신, 학벌, 재력 등 눈에 보이는 껍데기로 평가하는 세상의 세태에 쉽게 물들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외형적 조건에 갇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내게 익숙해진 종교적 습관을 내려놓고, 참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거룩하고 생생한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시기를 권면합니다. 말씀이 상투적으로 들릴 때, 우리의 영혼은 죽어갑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가 하늘로부터 오신 주님을 새롭게 대면하는 경이로운 사건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

# 30-32절 하나님의 '때'와 세상의 음모 : 세상의 권력과 음모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시고, 오직 정하신 '때'를 따라 구원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섭리의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 중 예수를 잡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으나,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합니다.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었습니다. 반면 무리 중 많은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을 보며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이분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하시겠느냐"며 믿음을 보입니다. 민심이 동요하는 것을 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위협을 느끼고 성전 경비병들을 보내 예수님을 체포하려 합니다.

.

이 단락은 예수님을 향한 세상의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보여줍니다. 한쪽은 믿고, 다른 한쪽은 체포하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명제는 "그의 때(ὥρα, 호라)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이 아무리 치밀한 음모를 꾸미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핍박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표가 허락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힘이 없어서 당하신 패배가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때'에 맞춘 자발적 순종이었음을 증명합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때로는 불의한 권력이나 직장 내의 부조리가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위협받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위로를 받으십시오. 세상의 권력자들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때'는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결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불안한 미래와 치열한 삶의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사역을 철저히 보호하시고 이끄셨던 그 전능하신 손길이, 오늘 눈물로 기도하며 일터를 지키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의 삶도 가장 완벽한 '때'에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

# 33-36절 돌아가심의 신비와 세상의 조롱 : 십자가와 부활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는 생명의 하나님.

자신을 잡으러 온 아랫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내가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 사람이 헬라인들이 흩어져 사는 곳(디아스포라)으로 가서 이방인들을 가르치려나?" 하며 서로 수군거리고 비웃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분명히 아셨기에,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명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는 말씀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여 부활과 승천을 통해 성부 하나님 우편의 영광으로 복귀하시는 구속사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맹인 된 유대인들은 이를 철저히 육신적이고 지리적인 차원으로 곡해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진 유대인들이나 이방인(헬라인)들에게 도망쳐서 가르칠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조롱 섞인 질문은, 훗날 십자가와 부활 이후 성령을 받은 제자들을 통해 복음이 헬라 세계와 온 이방 민족에게 전파될 것을 예언하는 셈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 너머의 영광스러운 종착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

현대인들의 가장 큰 비극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인생의 기원과 종착지를 모른 채 방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썩어 없어질 재물과 명예에 집착하며 하루하루를 소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 역시 세상 속에서 보내심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하나님 아버지의 품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조롱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믿어서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헌신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인다"며 세상은 우리의 영적 소망을 비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묵묵히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걸어가셨듯이, 우리도 나의 기원과 사명, 가야 할 종착점을 아는 자의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곁을 떠나시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영원히 함께하시기 위한 사랑의 섭리임을 기억하며,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인 가정과 직장을 '보냄 받은 사명지'로 삼고 담대히 복음을 살아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 거둠의 기도

사랑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친히 찾아오셨으나,

알량한 지식과 얄팍한 편견에 사로잡혀

생명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영적 무지함을 회개합니다.

익숙함이라는 이름표로 주님의 크신 영광을 제한하려 했던

우리의 교만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셔서,

세상의 핍박과 권력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정하신 '때'를 따라 구원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오늘 광양의 치열한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는 우리 장년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의 위협과 불안 속에서도 우리의 생사화복과 때를 주관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명확히 아는 거룩한 자부심을 허락하사,

세상의 조롱과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게 하옵소서.

잠시 머무는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본향을 향해 묵묵히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광양사랑의교회의

모든 믿음의 권속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위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매거진의 이전글요한복음 07:25-36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