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9-31
요한복음 20:19-31 닫힌 문을 투과하는 상흔(傷痕)의 평화, 회의를 품어 안는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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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두려움과 회의로 굳게 닫아건 우리 내면의 빗장을 허물고 들어오시어 못 자국 난 손을 내미시는 주님의 맹렬한 은혜에 연약한 나를 포개고, '성경이 나를 읽어 내는' 거룩한 대화(묵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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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 햇살이 대지의 틈새마다 생명의 온기를 채워 넣는 2026년 4월 아침입니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계절의 길목에서, 저마다 남모를 상처와 회의를 끌어안고 오늘이라는 순례의 길에 오르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여전히 굳게 닫힌 문 뒤에서 생명의 진리를 묻고 계신 모든 분께 부활하신 주님의 다정한 평안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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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늘 예측 불허의 위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이나 짙은 삶의 위기를 겪을 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보호를 위해 영혼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곤 합니다. 오늘 우리가 펼친 요한복음 20장의 다락방 풍경 역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철저히 단절을 택한 인간의 캄캄한 실존과 그 닫힌 문을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총을 묵직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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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후 첫날 저녁,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은 짙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요 20:19). 제자들은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 우리 차례다. 세상의 권력이 생명을 이긴다'는 닫힌 모범답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킴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려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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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견고하게 잠긴 그들의 두려움 한복판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홀연히 서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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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지도자들의 협박과 제자들 내면의 공포는 영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죽음의 온도였습니다. 그러나 문을 부수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상처 입은 제자들 곁으로 스며들듯 찾아와 건네신 주님의 이 평화의 인사는 얼어붙은 영혼을 단숨에 녹여내는 가장 뜨거운 생명의 온도였습니다. 주님은 겁에 질린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하십니다. 이는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던 창조주의 그 다정한 호흡입니다. 질식할 것 같은 공포 속에 갇힌 이들에게 하늘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로운 창조물로 빚어내시는 맹렬한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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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은혜의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던 도마는 친구들의 증언을 듣고도 강하게 회의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 우리는 종종 도마의 이 합리적인 의심을 믿음 없음으로 정죄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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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동일 변호사는 성경과 인생을 강독하며 우리의 꺾인 마음을 대변하듯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봉헌물은 '매일 매 순간 결심한 것들에 대한 반복된 실패'일 거라고요.". 도마의 의심은 하나님 앞에 내어놓은 인간의 솔직한 '실패의 봉헌물'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초라한 봉헌물을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여드레 후 다시 찾아오신 주님은 도마의 멱살을 잡고 다그치는 대신, 당신의 가장 아픈 상흔(傷痕)을 고스란히 내어주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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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한없이 넉넉하고 깊은 주님의 은혜를 우리의 비루한 일상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권연경 교수는 묵상을 가리켜 "성경이 나를 읽는 시간"이며 거룩한 "대화"라고 통찰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성경의 문자를 지식으로 분석하려 듭니다. 그러나 참된 묵상은 내 이성의 잣대로 하나님을 측량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문을 닫아건 내 영혼의 밀실을 향해 다가오시는 주님의 평화 앞에 나를 벌거벗기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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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병수 교수는 묵상을 "천상 회의"라고 명명합니다. 세상의 위협과 불안이 지배하는 밀실에서 벗어나, 상처 난 손으로 나를 보듬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장엄한 회의실 안으로 영혼의 자리를 옮기는 것입니다. 묵상 속에서 도마처럼 나의 회의와 상처를 솔직하게 쏟아낼 때, 하나님은 당신의 은총으로 응답하시는 신비로운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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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도마처럼 늘 회의하고 흔들릴까?" 자책하며 우울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세상의 위협이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고, 무언가 대단한 믿음을 증명해 내지 못해 주님 앞에 서기를 주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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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스스로 완벽해져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그 닫힌 문 앞에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두려움을 모르는 강철 같은 영웅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공포에 질려 숨어있을 때나, 회의에 빠져 손가락을 내밀며 투정 부릴 때조차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닫힌 벽을 투과하여 친히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는 우리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심조차 당신의 찢긴 상처로 덮어 안아버리시는 주님의 다함 없는 긍휼에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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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나를 가두고 있던 얄팍한 두려움의 빗장을 푸십시오. 우리를 꾸짖지 않으시고 상처를 내어주시는 주님의 다정한 숨결을 묵상으로 깊이 들이마시며,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는 벅찬 고백 속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시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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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캄캄하고 깊은 바닷속을 견뎌내는 '진주조개(Pearl Oyster)'와 같습니다. 여리고 부드러운 조개의 살갗 안으로 날카로운 모래알(세상의 위협과 내면의 회의)이 파고들 때, 조개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본능적으로 단단한 껍데기의 문을 굳게 닫아버립니다. 제자들 역시 두려움이라는 모래알이 파고들자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그러나 조개는 그 상처를 피하지 않고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뿜어내는 영롱한 진액(은총)으로 그 날선 모래알을 끝없이 감싸 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상처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값진 '진주'로 재창조됩니다. 두려워 숨어있는 우리 영혼의 닫힌 껍데기 속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상처 입은 우리를 은혜의 진액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으실 때(묵상), 우리의 숱한 의심과 실패는 마침내 세상을 밝히는 눈부신 믿음의 진주로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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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