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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01. 2017

고비에서

쉴만한 물가 - 166호

20150802 - 고비에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7월 말부터 8월 초가 고비인 듯하다. 계곡, 바다, 산, 할 것 없이 피서객들로 넘쳐난다. 며칠 전엔 블루문이 뜨는 시기로 달까지 차올랐었다. 여러 가지 행사로 그리고 휴가를 가족과 보내면서 두루 많은 사람들을 스치듯 만났다. 더위 때문인지 어디 한 곳 제대로 쉼을 누리지 못하는 휴가를 보낸다. 사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이미 작렬하는 태양과 더위로 불쾌지수도 높아가서 신경도 날카로워진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래서 고비를 쉬이 넘겨 버린다. 짜증과 불평이 툭툭 튀어나온다. 급기야 외부의 온도가 36도를 치달을 때는 사람마저도 더위에 편승된 휴대용 난로처럼 뜨겁다. 그만큼 더위의 위력은 대단했다. 


영화, 쇼핑, 파크, 산, 계곡, 바다, 먹거리 그리고 책까지 짧은 휴가 기간 동안에 누려본 것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더위 앞에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의 감동이 영화관을 나서면서 금세 더위에 묻혔고, 쇼핑하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가격표의 위력 앞에 숨이 멎을 지경이고, 파크나 랜드에는 물 반 사람반으로 이리 저리 치이면서 움직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소진해야 하는 장사속에 씁쓸함 가득해졌었고, 산에서는 정상에서 누리는 잠깐의 감동을 위해서 오르내리는 여정이 유난히도 길었으며,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찾는 바람에 그 맑던 계곡물이 뿌옇게 더러워져서 시원하게 발을 담그기 꺼림칙함에 아쉬웠으며, 넘실대는 파도소리에 시원해지다가도 이내 끈적이는 소금물에 찝찝함은 집에 와서야 간신히 가실 정도였다. 이렇게 더위는 장점보다 단점을 더 부각하여서 그 고비를 너무도 쉽게 다다르게 했다. 


아늑했던 고향집을 찾아갔지만 더위는 그곳에서도 기승을 부렸다. 휴가라고 찾았지만 이젠 많은 이들이 찾는 피서지가 되어버려서 차도 사람도 바글거린다. 여기저기 틈만 보이면 원색의 텐트와 파라솔이 놓여있고 고기 굽는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로 넘쳐난다. 가까스로 도착한 고향집에서 휴가철이 되니 노부모들에게 자녀도 자꾸만 객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적하게 사시다가 자식들이 와서 반갑긴 하지만 이내 부딪히는 의식주 문제가 더위로 말미암아 만만치 않은 것들을 요구하게 되니 노모의 저린 관절들은 금세 고비를 맞아 버겁게 오간다.

 

‘고비’라는 말이 원래 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나 대목 또는 막다른 절정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인데,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많은 듯하다. 역사나 동화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와 사건 속에서 ‘고비’를 잘 넘기기보다 그 앞에서 좌절하거나 무너지는 경우들을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백일에서 하루 부족한 아흔 아홉째 날에 고비를 넘기지 못한 이야기, 오랜 기다림의 끝에 마침내 다가올 어떤 날을 하루 남겨두고서 고비 앞에 포기해버린 안타까운 사연들, 고비를 넘긴 극적 전환보다는 그 앞에서 스러져 간 생명과 사건과 이야기들이 늘 ‘고비’라는 말 앞에서는 더위의 기승에 무기력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우리 현대사에도 이와 같은 ‘고비’를 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고, 잘 견디지 못해서 무너지거나 변절하거나 포기한 안타까운 역사와 인물들이 많다. 지나고 나서야 쉽게 조금만 더 견디거나 버티지 못한 이들을 쉬이 판단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로서는 오만가지 변명으로 무성하다. 특히나 오늘까지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해서 너무도 깊숙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지게 만든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의 소행들은 양파껍질처럼 그 만행이 끝이 없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반민특위 등을 통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려 할 때 일부 친일행각을 일삼던 이들이 이렇게 나라가 해방이 될 줄 몰랐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변절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라 한다. 이들의 권력과 돈을 이용한 무리들과 야합하여 고비를 넘기고서 지금까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이들은 고비에서 변절하거나 친일 했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 내지 포장까지 하려 한다.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또다시 고비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비열함은 더위보다 더 많은 것을 무기력하게 한다. 


개인의 삶을 비롯하여 역사의 모든 순간이 ‘고비’ 임을 알아야 한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매일매일 고비를 넘어가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기적인 샘이다. 그 앞에서 인내로 경주해 가야 할 삶의 내용들을 더위에게 내어줄 수 없는 이유다. 이 고비를 제대로 넘어가지 못하면 금세 뒤돌아 지나온 발자취를 후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비 앞에서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가야 할 정도를 우직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후회 없는 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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