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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Mar 15. 2018

예레미야애가 02:01-10 주께서 진노하시니

예레미야애가 02:01-10

예레미야애가 02:01-10 주께서 진노하시니


여호와의 진노하심이 시온을 얼마나 철저하게 심판하시는지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시온의 처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한줄묵상 : 여호와께서 베푸신 긍휼과 오래참으심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 시온을 향해 진노하실 때, 구원과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을 심판과 진노를 행하시는 분으로 만나게 됩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면 이전의 모든 아름다움(영광)은 사라집니다. 

딸 시온(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전에 영광을 거두고, 시온을 기억하지 않으며 긍휼도 베풀지 않으십니다. 견고한 성채도 허물고 통치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고, 모든 권위를 제거하여 구원의 손을 거두고 불사르십니다. 

*

시온의 강퍅함 때문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는 슬픔을 넘어 두려움을 갖게 할 정도로 철저하게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가시적 임재였던 구름이 이제는 영광을 거두고 심판을 위해 임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전에 임재를 약속하신 발판(언약궤 또는 시온 전체를 가리킵니다)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급기야 이스라엘의 거처를 삼키고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며,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힘과 병거와 외세를 의존했던 지도자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또한 모든 권위와 구원의 가능성들을 거두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와 구원의 상징인 오른 손을 뒤로 거두시고 맹렬한 심판의 불로 시온을 불살라 버리신 것입니다. 

**

40년동안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많은 징조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으나 끝까지 강퍅하여 불순종했던 유다는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통한 징계를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맨 먼저 언급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이전 영광을 모두 거둬가 버린 것입니다. 구름(영광)과 아름다움(존귀)과 발판(약속)을 모두 거두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게 되면 이전에 의지하던 것들이 모두 수치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우리 주 예수님은 고스란히 대신 맞으시면서 또 다시 새언약 백성인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도 여호와의 긍휼과 오래참으심을 오해하여 강퍅함으로 불순종의 길을 가고, 지금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고 각기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다면 본문의 징계는 다시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기 전에 돌이켜야 하고, 주께서 주시는 경고에 귀기울여야 하며, 주께서 손을 드실 때 겸손히 주님 앞에 부복함이 우리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4-5절 여호와께서 원수가 되시면 근심과 애통 그리고 죽음만 남게 됩니다. 

누구보다 시온을 기억하고 사랑하셨던 여호와께서 노를 발하사 원수가 되시면, 이전의 구원의 손이 심판의 손으로 변하여 불처럼 노를 쏟으십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삼키고 그들이 그토록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붙잡고 모으고 기댔던 궁궐과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려 이스라엘로 근심과 애통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

이전에 하나님은 시온을 누구보다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으시고 언약과 소망을 통해 보호와 인도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와 역사를 부인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하나님 아닌 것을 더 의지했던(영적 간음과 외도) 이스라엘을 향해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원수가 되어서 능력의 손(이전에는 보호의 손이 지금은 심판의 손으로)을 들어 이스라엘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다 거두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급기야 시온의 장막에도 불처럼 노를 쏟아내십니다. 결국 유다는 근심과 애통과 죽음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

이스라엘을 지키고 구원하시던 그 능력의 손이 지금은 이스라엘을 치는 손이 되었습니다. 기쁨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던 주께서 원수가 되시니 근심과 애통과 죽음만이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을 온전히 알고 고백하며 살아가다가도, 우리가 잠시라도 우리의 마음과 뜻을 허탄한 데 두고 주님 아닌 것을 주님처럼 의지하고 눈과 귀가 멀어지고 강퍅하게 된다면 지금 새 백성이요 주님의 몸된 교회인 우리 또한 우리 삶의 내용들은 이와 같은 것들로 가득찰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만이 우리로 인간답게 거룩하게 온전하게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

원수같던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 신부로 불러 주셨으니 그 은혜와 사랑에 합당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며, 우리를 구원하신 뜻을 기억하여 허락하신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따르는 인생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와 원수됨은 이전에 우리가 가진 모든 보장들은 부질없는 것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6-7절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면 더이상 주를 뵐 수 있는 길이 없어집니다. 

여호와의 진노는 급기야 이스라엘과 만나는 통로인 성전을 허물어 버리십니다. 성전을 폐하시니 절기를 지킬 수 없게 되었고, 이스라엘  또한 이러한 것들을 지키지 않으니 절기와 안식일을 잊게 됩니다. 제사가 행해지지 않으니 왕과 제사장도 그 역할을 망각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임재로 쓰신 성전을 헐어 버리므로 그곳에 있는 왕과 제사장이 멸시를 받게 하고, 거처는 버리시고 궁전의 성벽까지 원수의 손에 넘기시므로 말미암아, 폐허된 성안에는 침략자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절기의 날들처럼 많이 몰려 있습니다. 

*

성전을 초막이라 표현하면서 성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폐기되는 부정적인 단어를 체택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은혜의 상징이었던 세 차례의 절기를 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절기를 통해서 이전에 베풀어 주신 여호와의 은혜를 상기하게 하고, 오늘을 사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여 변함없이 주님과 동행하게 하는 것이 절기를 지키는 의미일 진대, 이를 폐하심은 이전의 은혜를 기억할 수 없게하고 당장 절기와 안식일을 지킬 수 없으므로 더이상 주님을 뵐 수도 주님의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이는 결국 소망 없는 처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게 됩니다.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부르신 이스라엘이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버리시니 이제 그곳은 원수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원수들이 오히려 절기때처럼 많이와서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성전과 이스라엘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절기와 안식일 그리고 성전과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을 허락하시면서 이스라엘이 기억하기 바라셨던 것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과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주만 바라보며 살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고 하나님과의 소통과 관계를 통해서 주의 뜻을 상고하고 순종하며 절기와 여타의 규레들을 따라 살아가야 할 진대 지금 이스라엘은 이 모든 은혜를 망각한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모든 통로를 폐하셨으나 우리에게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복하고 대속하셔서 우리로 주님을 통해서 여호와께 나아갈 담력과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

지금도 우리 몸이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전임을 망각하고 부정과 불순종으로 얼룩지는 것이라면 두렵고 떨림으로 이러한 죄악에서 떠나야 할 것입니다. 


8-10절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면 이전에 의지하던 것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고 다림줄을 넣어서 성벽과 성곽을 무너뜨려 통곡하게 하고 그들의 운명이 쇠하게 하십니다. 성문은 제 기능을 못하고, 왕과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뜻에 관심이 없고,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듣지 못하고, 시온의 장로들은 땅에 앉아 티끌을 덮어쓰고 울라 하고, 예루살렘 처녀들은 통곡하고 근심하게 합니다. 

*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오랜 시간의 방어가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를 여호와께서 결심한 것으로 주장합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심 하에 그 손을 거두지 않고 시행하셨기에 시온은 통곡하며 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행하시기에 아무리 튼튼한 것이라도 무너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왕과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뜻을 오해하고 관심이 없었기에 멀리 유배를 가게 됩니다. 선지자들은 더이상 계시(묵시)를 받지 못합니다. 장로들은 더이상 가르칠 수 없고, 가르칠 백성이 없기에 슬퍼하며 통곡합니다. 처녀들은 유린과 포로됨과 슬픔으로 탄식합니다. 깊은 애도의식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

여호와의 뜻에 눈과 귀를 막고, 그 뜻을 자기 편한대로 왜곡하고 불신함이 오래 지속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이 임하게 될 때에는 누구도 그 어떤 방어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 때에는 아무리 후회하며 돌이켜도 소용없게 됩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에 있지 않는다면 세우는 자의 수고도 헛되고, 그토록 든든하게 여기던 보루도 소용없고, 알량한 권력과 선민에 대한 자부심도 무용지물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후에야 통곡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그 이전에 들렸던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돌이킬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진대 지금도 주님과의 바른 관계와 주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못하다면 우리 삶을 지탱하고 의지하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주님 아닌 것에 우리의 마음을 쏟고 의지하고 심지어 경배하며 끌려 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날마다 우리가 묵상하며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 말씀 앞에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 기도

진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며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나이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주님 아닌 것들에 우리의 마음과 열정을 쏟아

그 모든 것들이 오래도록 우리를 지킬 것이라는

헛된 신념으로 살아왔던 것들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날마다 우리의 이전에 받은 은혜와

오늘을 살아갈 이유와, 내일의 든든한 소망 되시는 

주님을 기억할 말씀과 예배의 자리에 서는 일을 소홀히하고

오만과 무지 속에 살면서도 의기양양했던 교만한 우리를

또한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것을 기억하고

날마다 주님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두고서

매일 주께서 주시는 계시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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