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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pr 04. 2019

마태복음 23:13-28 지도자들의 죄 2 _ 외식(外

마태복음 23:13-28 

마태복음 23:13-28 지도자들의 죄 2 _ 외식(外飾)과 불법


예수님은 이제 지도자들을 향하여 7가지의 화를 선언하시며(23:13-36)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죄악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모두 외식과 관련된 죄로 이스라엘의 신앙을 바르게 지도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안타까움과 분노를 담아 선언하고 계십니다. 


# 13절 첫째 화 : 천국 문을 닫고 가로막는 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천국 문을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

앞서 바리새인들의 말(말씀)은 지키고 행하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했는데 이제 구체적으로 본받지 말아야 할 이유와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되심, 주권, 통치를 따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택한 백성의 길일진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 곧 말씀을 맡은 자들로서 이 말씀을 잘 읽고 해석하고 가르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에 충실한 백성이 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하고 왜곡여 자신들의 잘못된 해석과 적용이 결국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퍅해지고 눈이 어두워지고 자정능력도 없고, 스스로의 기준들이 너무나 견고해서 말씀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율법의 잣대로 참된 진리를 왜곡시켜 버린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왜곡된 전통과 말씀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도록 가르쳐야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거운 멍에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천국 문을 닫아 버린 결과를 낳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도 그 율법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뜻과 통치에 순종하지 않고 심지어 들어가려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갈릴리에서도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오는 모든 여정 가운데서 예수님의 천국 복음 전파 사역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반대를 하면서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했던 모든 노력들은 집요하게 천국문을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이 예수님을 분노케 했으며 결국 이러한 화와 분노를 담아내는 선언을 듣게 된 것입니다. 

*

말씀을 읽고 배우며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부족함 속에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말씀을 맡은 자의 사명은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무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더더욱 그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행여 나의 해석과 적용과 메시지가 천국 문을 닫고, 잘못된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진 않은지도 염려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히 주의 말씀 앞에 서고, 글을 쓰고, 강단에 서려고 합니다. 


# 15절 둘째 화 : 개종자들을 지옥 자식이 되게 한 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 백방으로 수고하다가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개종자를 얻기 위한 노력들을 폄하하지 않습니다. 그 수고와 노력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 한 생명을 얻는 일에는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교회의 문턱을 넘어 온 이들에게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것처럼 온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사랑과 희생을 수반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얻는 한 영혼을 거룩한 하나님나라의 백성과 자녀로 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잘 양육해야 하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합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지식, 배타적으로 왜곡된 율법의 해석들,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고착된 오래된 전통들과 관행들 모두다 새로운 영혼들을 건강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더 편협하고 이기적인 교인으로 양성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 모두가 성경에 대한 무지와 그릇된 가르침에 기인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한계와 문제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살필 수 있는 영적 분별력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것이 최고인 양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인도하니 함께 멸망의 길로 가는 것과 진배 없습니다. 

*

그 어느 때고 신학은 항상 목회의 기초입니다. 편협하고 가벼운 신학, 왜곡되고 기울어진 신학, 변화와 성숙은 고사하고 더이상 배우려 하지 않으며 닫혀진 신학, 성경보다 전통과 관습이 더 권위를 갖는 신학, 시대의 질문에 답해주지 못하고 전통만 고집하는 신학 모두다 이제 지양해야 할 자세입니다. 신학이 있는 목회, 목회가 있는 신학이어야 합니다. 

작금의 믿음과 행함이 분리된 이중적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는 우리의 신학과 교리들이 다시 점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 앞에 가야 하는 것은 오래된 교리로 양산된 그리스도인의 상이 지금의 이러한 모습들이라면 이제는 우리 믿음과 복음과 성경이 정말 우리가 알고 믿고 행하는 것이 맞는지 왜곡되었는지 기울어졌는지 아니면 엉뚱한 것인지 아예 다른 길인지 살펴 봐야 합니다. 그 말씀 앞에서는 전통도 관습도 전례도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정말로 그런가 하는 자세로 성경을 상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맡겨준 양무리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맡은 이로서 철저히 공부하고 날마다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주의 말씀 앞에 나를 세우고, 그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고 살아내며, 바른 신앙과 신학적 체계들을 정립하고 또 그것을 나눠서 부디 맡겨준 양무리들을 건강한 하나님나라 백성과 일꾼으로 잘 양육할 수 있길 원합니다. 매일의 양식을 식은밥, 쉰밥, 얻어온 밥, 남이 한 밥, 묵은 밥, 맛없는 밥이 아니라 갓 지어낸 따뜻한 밥으로 지어서 부지런히 양무리들을 배불리는 것이 말씀을 맡은 자가 충성해야 할 사명인 줄 믿습니다. 


# 16-22절 셋째 화 : 잘못된 맹세에 대한 이해로 하나님을 무시한 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눈 먼 인도자로 부르십니다. 이들은 성전과 성전의 금, 제단과 예물중에서 무엇이 더 중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금과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과 제단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정 반대로 맹세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

무엇이 중헌디? 예수님은 이미 맹세에 대해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시길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는 맹세가 필요없는 신실한 삶, 투명한 삶을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오랜 전통을 따라서 여전히 맹세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맹세를 하면서 걸었던 성전과 금, 그리고 제단과 예물들이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정 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이들은 성전과 제단보다 성전의 금과 예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하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금과 예물보다 더 중요하고 큰 것은 그것들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과 제단이 중요하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들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금과 예물이 더 중하다 여긴 것입니다. 그것을 걸고 맹세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예수님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투명한 삶, 맹세가 필요 없는 신용과 믿음을 주고 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구별된 거룩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본질과 비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삶을 의미있게 하고 거룩하게 구별시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분에게 모든 주권이 있음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고 믿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줄 믿습니다. 


# 23-24절 넷째 화 : 율법에서 중요한 정의(의)와 긍휼(인)과 믿음(신실함)을 버린 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소한 것들까지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리게 하면서 그 율법의 중요한 정신 곧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렸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결국 정신은 잃고 외식만 남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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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십계명과 율법 그리고 선지자의 강령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이러한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결국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정의와 긍휼과 신실함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정신과 하나님의 의도는 잃어버리고 제의 자체, 종교적 행위 자체에만 매여서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들은 무리하고, 정말 지키고 고치고 버려야 할 것은 전혀 실천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정의가 무너지고, 긍휼은 사라졌으며, 신뢰가 무너져 버렸으니 맹세하게 되고 그것마저도 무엇을 해도 못믿을 불신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진리되신 주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회유하고 공격하고 올물을 내걸고 급기야 죽이려고 모의까지 하면서 너무도 쉽게 율법을 어기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면서도 그것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

오늘날 우리의 종교 행위 곧 제의적인 교인의 의무와 내용들은 삶의 자리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일을 돕고 가르치고 힘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상호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공동체 예배도 개인의 예배도 그리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도 모두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도,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행하여 세워가야 할 정의와 사람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과 말과 행함이 일치된 신실함들이 실행될 대라야 계명을 통해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우길 원하시는 주님의 의도와 계획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며 나아가야 하겠지요. 


# 25-26절 다섯째 화 : 내면이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죄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눈 먼 바리새인을 향해 먼저 안을 깨끗케 해야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

잔과 대접은 바리새인들의 마음과 삶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과 삶에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합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세상 그 누구보다 탐욕으로 가득합니다. 종교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방탕이라는 단어는 성적 타락과 연관된 단어입니다. 또한 앞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성적 타락으로 표현되는 간음죄는 결국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 처럼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방탕이 성적인 것과 연관된 것이라면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아닌 금과 물질과 명예를 탐하는 영적 간음을 행하는 방탕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심히 부패된 마음이 깨끗하게 되어야 겉사람도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

종교 지도자들의 명예와 권세의 탐욕에 물들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하나님 처럼 섬기는 영적 간음을 서슴지 않는 모습들이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지도자를 주의 종님이라고 따르고 심지어 옹호하고 목숨을 걸고 지킵니다. 그런 무지한 성도들 뒤에 숨어서 자신의 탐욕과 방탕을 가리고 돌이키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가증함들을 볼 때마다 어쩌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네 삶의 자리에서도 언제든지 탐욕과 방탕은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아 언제고 우리도 그런 유혹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그 시간들이 없다면 우리도 맹인된 자로 사소한 것은 건지면서 정작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낙타는 삼키고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여 나를 깨워주소서. 내 눈을 열어 주소서, 


# 27-28절 여섯째 화 :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한 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아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겉으로는 옳게 보이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

예루살렘으로 가는 근교에는 무덤들이 있습니다. 이 무덤들이 구분이 안되어서 자칫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전으로 가는 이들이 부정한 것에 접촉하여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일이 생기기에 절기 때면 예루살렘 주변의 무덤들은 회를 칠하여 그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피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회를 칠한 무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얗게 아름다워 보이지만 결국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부정한 곳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겉은 거룩한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옳게 보이지만 결국 그들 안에는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외식은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위선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도 신앙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불법을 덮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누구보다 제대로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겉모습들은 옷과 언행이 거룩해 보이고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안에는 온갖 외식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불법적 요소들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속에 든 것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

마음이 청결한 자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가득해야 하는 것은 주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 허락하신 아름다운 것을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속에 든 선이 말과 행동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안과 밖이 같은 토마토 인생이 온전한 삶입니다. 그렇지 않고 안과 밖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르고, 마음과 말이 다르다면 그것은 외식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자기 욕망과 탐욕과 이기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불법입니다. 외모가 아닌 속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면 회칠한 무덤의 죽은 뼈들을 들어내고 거룩한 것으로 채울 수 있길 기대합니다. 


# 기도

참되고 신실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제가 알고 있는 신앙과 신학 그리고 성경을 아는 지식과 믿음이

주님이 주신 말씀 위에 바로 선 것임을 바르게 알고 

행하게 하옵소서. 

혹여 종의 삶과 메시지가 천국 문을 가리지 않길 원하오며

날마다 주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종의 눈을 밝혀 주셔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과

주의 말씀의 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하옵소서. 

한 영혼을 얻기 위한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고

붙여주신 천국 가족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천국의 시민으로 세울 수 있는 능력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우선순위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맹세가 필요없는 투명하고 신뢰를 주는 언행으로

매일 주 앞에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과 마음에 합한 말씀의 순종

곧 정의와 긍휼과 신실함을 온전케 세우고 실천케 하옵소서. 

내 안의 탐욕과 방탕을 비워 깨끗케 하여 주시옵고

외식과 불법 또한 버리며

오직 거룩한 주의 말씀으로 주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리하여 화 있는 자가 아니라, 

복 있는 자로 살기에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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