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02:08-17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 - 서머나, 버가
요한계시록 02:08-17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 - 서머나, 버가모 교회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아시며 칭찬하고 환난 가운데서도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관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것은 칭찬하시지만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향하여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 8-9절 주님은 교회가 환난과 궁핍함 속에서도 부요한 자임을 알기 원하십니다.
서머나 교회에 편지하신 주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신데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자칭 유대인들이 비방하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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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몰약이라는 의미) 교회도 박해로 인한 환난과 경제적인 궁핍을 겪고 있습니다. 서머나가 위치한 곳은 해안으로서 지정학적으로 부유한 도시에 해당됩니다. 여기에 유대인들의 비방도 마찬가지 원인이 되어서 이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합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을 고발하는 등의 비방으로 초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비방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칭 유대인이’라 표현합니다. 아예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데 유대인이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들을 ‘사탄의 회당’이라 표현한 것은 신앙에 있어서 변절된 자이거나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로서 여전히 옛 전통이나 잘못된 신앙으로 굳어진 이들 즉 하나님과 율법에 대해 여전히 잘못 알고 있는 이들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자로 회당에서 모이며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혈통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자들만이 천국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새 이스라엘로 불릴 수 있습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살아계신 주님이 그렇게 새 백성을 세우신 것인데 자칭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혈통적 유대인이면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몸된 교회라 생각하겠지만 주님은 이들을 사탄의 회당이라 표현합니다. 생명을 잃고 본질을 잃고 무엇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 아닌 헛된 우상이나 재물을 섬기는 이들, 재물 때문에 형제를 비방하고 고발하는 이들은 더이상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일부 유대인들이 뇌물을 통해서 황제숭배를 면제받고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아 핍박을 면한 행위에 대해서도 사탄의 회당으로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물질로 세상과 타협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부요한 자라고 말합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큰 고난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이 박해는 그리스도의 권한 하에 있기에 10일간이라고 하는 시간을 통해 결국 끝날 날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고발하거나 괴롭히는 것을 통해서 경제적 손실을 받도록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머나라는 도시의 분위기가 경제적으로 부요한 곳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궁핍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지금 이들을 향하여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하는 것은 서머나교회가 가져야 할 신앙에 대한 부분을 짚은 것으로 보입니다. 즉 물질의 있고 없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런 하나님을 아는 자가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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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부요함은 경제적인 부요와 가난과 무관합니다. 하지만 영적 부요함은 경제적 가난에서 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요한 경우에 오히려 영적으로 더 피폐해지는 경우 즉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신앙이 미약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모자람 없이 부요한 교회인데 헛벗고 가난한 교회라 합니다. 이는 물질적 부요함이 영적 가난으로 직결되는 위험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지금 우리 세대들이 부족함 없이 자란 세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 갈급함이 없이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로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마태는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천국 곧 하나님나라를 갈망하고 의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물질의 있고 없음에 복의 있고 없음을 생각지 아니하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 앞에서 영적인 부요를 누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족할 줄 알되 자만하거나 자괴하지 아니하고, 가난할 지라도 비방하거나 비관하지 않으며, 부요하되 자신만을 위하지 아니하고 주신 뜻을 따라 나눌 줄 아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 10-11절 주님은 교회가 환난 속에서도 죽도록 충성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가 장차 마귀가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되고 십일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인데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오히려 끝까지 충성하면 생명의 관을 주리라 약속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를 향하여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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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받을 고난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로 말미암은 고난으로 보입니다. 앞서 자칭 유대인들을 사탄의 회당이라 표현했고 그 하수인들을 요한계시록은 마귀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사람들은 이들의 비방과 고발로 옥에 던져져서 시험을 당하게 되리라고도 합니다. 또한 로마의 박해를 말하는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황제를 숭배하는 로마의 제국종교하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반역자로 극심한 환난을 받는 것은 닫ㅇ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 예고하시면서 그 기한을 십일(다니엘 1:12-15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음식으로 시험을 ㅂ다은 기간을 상징하여 역경이 짧음을 상징합니다)로 한정합니다. 고난은 있지만 그것은 반드시 끝이 있다고 한계를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설령 죽더라도 충성하라고 당부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서머나 교회의 일원이었던 폴리캅은 주님의 이 말씀을 따라 사역의 현장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길로 갔습니다. 그런 이들을 향하여 예비된 생명의 관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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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는 순교적 신앙이 요구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다른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세상은 미워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며 핍박합니다. 그러한 상황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금의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이며 이기적인 정치적 신앙적 행태들로 말미암은 비난과 조롱은 결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도 아니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패역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런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바른 말씀 바른 신앙위에 서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나아가셨던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그런 세상의 유혹과 비방과 핍박을 이기고 감당할 힘과 능력을 충분히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죽도록 충성하게하고 마침내 생명의 관을 쓰고 둘 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영생과 구원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그 믿음을 가진 이들이 가장 부요한 자임을 믿습니다.
# 12-13절 주님은 교회가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길 바라십니다.
버가모 교회에 편지하는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표현됩니다. 주님은 버가모를 잘 알고 그곳을 사탄의 권좌가 있는데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곳에서 버가모 교회 중에서는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죽기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 또한 알고 계심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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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역시 로마 제국종교의 수많은 신전들이 있는 우상의 도시로 사탄의 권좌라 불리우기 충분한 도시였습니다. 그런 도시와 로마제국이 가진 생사 여탈권을 오히려 주님이 갖고 계신다는 것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성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편 칼은 악과 싸우고, 패역한 이들을 향하여는 심판의 칼로 사용하는 좌우에 날 선 검입니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보호하고 그들을 핍박하는 이들을 결국 심판하실 것에 대해 미리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버가모에 살아가는 것이 순교적 신앙이 아니면 결딜 수 없는 곳임을 알고 계시며 언급된 안디바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여 순교한 증인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안디바를 언급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상기시켜 주심을 통해서 이러한 순교적 삶을 살아갈 것에 대한 용기를 불어 넣고 한편으로 갖고 있는 두려움을 치유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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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역사 가운데서 수많은 핍박과 유혹들이 우리로 세상과 타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기부인하는 신앙보다는 부요하게하고 세상의 힘과 권력에 편승하고 세상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라 살아가면 훨씬 더 편하고 부요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세상의 가치에 역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불편하다하고 지난과 조롱을 넘어 배제하고 제거하려고 하는 일들이 개인적 지역적 국가적으로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배도하거나 배신하지 않고 충성된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에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으로 이끄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사탄의 권좌는 마침내 심판하실 것입니다.
# 14-17절 주님은 교회가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지 않고 말씀으로 승리하길 원하십니다.
버가모 교회가 책망 받을 내용은 그들 가운데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게 한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니골라 당(니콜라이테스)은 히브리어 ‘발람’의 헬라어 표현입니다. “니골라”는 ‘백성을 이기는 자’라는 뜻이고, 발람은 ‘백성을 소비하는 자’란 뜻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슴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좌우에 날선 검에서 심판의 칼이 그런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에서 이기는 교회를 위해 주님은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을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그 돌에는 받는 자만 알 수 있는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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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은 결국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는 것이라 요약되는데 신앙적으로 영적 간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실제적으로는 신앙과 삶의 불일치 내지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는 행위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당대 황제숭배와 각종 우상숭배의 문화 속에서 우상의제물을 먹는 일은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거룩한 백성으로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언행심사에 있어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거룩한 교회가 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의 성도들 중에서는 사회적 성공과 부의 축적을 위해서 이러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교제하고 거래하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먹는 것 뿐 아니라 언행 심사에 있어서도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모습들로 마침내 하나님보다 제물, 그리고 세상에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모습으로 변질 된 행동입니다. 교회가 믿음과 세상의 가치관을 혼돈하고 혼합하여 분별없는 신앙으로 전락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서 돌이켜 세상에 살되 부정하고 불의한 일들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 길에서 돌이키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서 망하는 자들과 함께 심판을 당하는 길로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은 감추었떤 만나 곧 말씀이며, 흰 돌 위에 새겨진 이름은 이긴 자 예수 그리스도 혹은 이긴 자 교회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순교자와 구원받은 무리들 모두 흰 옷을 입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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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살되 세상에 빠지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물위를 헤엄쳐 가는 그리스도인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만나 곧 말씀을 잘 먹고 흰 돌(무죄 판결)을 잘 받아 어떤 길이 우리가 가야 할 의인의 길인지, 악인의 길인지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과 가치관이 말과 행동과 생각과 모든 일에 있어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으로 무장되고 세워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아시고
우리의 거처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난 속에서 두려워하여 충성된 종으로 살지 못하였으며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일들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환난과 궁핍함 속에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고백하지 못하고
비방과 비난에 쉬이 마음이 요동쳤던 일도 회개합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듯
쉬이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의 방식을 따랐던 일도 회개합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도록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예비하셨으며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시며
이긴 자 예수님의 편에서서 함게 이긴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잠시 받는 환난이 중하다 하더라도
끝까지 변치않는 믿음으로 충성되기 원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나아갈 바를 인도받아
충성된 종으로 죽기까지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교회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