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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21. 2021

누가복음 17:01-10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기준을 제

누가복음 17:01-10 

누가복음 17:01-10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예수님 2


작은 자(소외된 자)라도 실족하지 않게 스스로 조심하고, 형제의 죄를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순종하라.

무익한 종과 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임을 명심하라.

*

포스트 코로나를 말합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바라봐야 하는 개발도상국가에서 선지국 대열에 서 있음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앞선 모델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우리가 모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우리의 모든 국가와 삶의 경영이 앞선이들을 기준으로 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그것이 되었기에 왜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해야 하는지 그 개념과 목적을 정립하면서 우리만의 정의를 세워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세상은 그렇게 변화에 대응하려고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교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상의 이러한 변화와 성숙에 있어서 어쩌면 정작 교회는 제외된 것 같습니다. 오래전 신앙과 전통에 머물러서 세상의 도전과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수구적인 자세를 고집하다가 세상과 괴리되고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지금 예수님께서 새롭게 열어가신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배우고 듣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는 여정 속에서 예수님은 마치 광야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 때 가져야 할 삶의 가치와 자세와 내용들과 방향들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새 시대를 열어 살게 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의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내용과 목적들에 대한 새로운 기준들을 재해석하고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 하는 과정 속에서 나온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작은 자, 용서, 믿음, 무익한 종에 대한 이야기들이 독립적 교훈들의 나열이 아니라 굉장히 밀접하게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준의 관점으로 가장 실제적인 부분을 최종적으로 짚어주고 계시는 관점으로 본문을 읽어보려 합니다. 


# 1-2절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행한 것입니다. 

소외된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은 심각한 일입니다.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이러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누가복음의 소외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 아니면 살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을 제유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소속된 다양한 이들에 대한 표현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자, 작은 자, 고아, 과부, 나그네, 이방인, 아픈 이들, 귀신들린 자 등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들을 자유케하고 살리고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언행으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해서 용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사소한 언행심사에 대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왜 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그토록 심각한 문제로 여겼을까요? 제일 먼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소외된 자나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결국 주께 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 일을 위해 오신 주님께서 세상과 다른 기준을 세워서 그것이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의 새로운 삶의 기준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실족케 한다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고 심각한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보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자를 향한 군림과 교만의 자세는 버려야 합니다. 제자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이전에 그런 자였고, 지금도 주님이 허락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3-4절 사람의 변화는 지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습니다. 

스스로 조심하고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자신을 위해서는 냉정하고, 형제의 죄에 대해서는 경고하되 회개하거든 하루 일곱번이라도 회개와 용서를 베풀라 하십니다. 

그런 자를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 그렇게 용서하는 일에 있어서 진정성 있든지 없든지 회개에는 용서하라 그것은 우리가 끈질긴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런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감히 우리가 쉽게 포기하고 정죄하고 단정하고 결론낸다면 우리는 어느새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우리가 어느새 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되는 심각한 지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자신을 향하여는 냉철하고 타인을 향하여서는 너그럽게, 관대하게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공의와 사랑을 가지고서 행하라는 얘기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다려 주셨다면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용서해야 할 이들을, 사랑해야 할 이들을 오래도록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인내하며 돌아서길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일만달란트 빚진자와 탕자의 형님과 조급하고 어리석은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입니다. 


# 5-6절 온유함과 용서는 믿음이 있어야 온전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삶의 기준이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믿음을 구했고, 주님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여러가지 개념중에서 우선 예수님의 구주(救主) 곧 구원자요 주 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구원해 주시고 자유케 해 주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피값으로 거듭나고 새롭게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우리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도, 내 모든 소유의 주권도, 주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_ (참고로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도 있지만 예수님의 신실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실함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하시고,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해 주셔서 우리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신학에서 말하는 ‘피스티스 크리스투’에서 예수님의 신실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생사화복이 주께 있으니 주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따라 행한다면 못할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음을 더하는 일보다 이미 있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있고, 살고 있고, 순종하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순종의 삶이 없다면 나는 겨자씨 한알 만큼의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유케 하신 그 뜻을 따라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일도 중요한 믿음인데, 알게 된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롬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7-10절 제자는 마땅히 행해야 할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제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난 후에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임을 알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기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받은 은혜, 구원의 목적,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자세, 이유등등 모든 것들이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익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음받고 구원 받은 것에 대해 우리의 공로가 없습니다. 피조물로서 우리는 사랑받은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요 일꾼으로 택함 받은 우리는 구주 예수님 앞에서 당연히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을 행하면서 대가를 바란다면 그리 오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것이 너무 많고, 당연히 해야 할 사명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그런 사명을 이뤄가는 일에 있어서도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기에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행하되 끝까지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거둠의 기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살게 하신 주님

소외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소외된 자들을 향한

언행심사를 거룩하게 하겠습니다.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냉철하며

참사랑을 실천하는 자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고백하며

주님의 신실하심이 우리를 살리셨음을 믿고

우리의 주권을 가지신 주님이 맡겨주신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즐거이 감당하기 원합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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