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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06. 2022

요한복음02:13-25 예수님은 참된 새성전이십니다

요한복음02:13-25  

요한복음02:13-25 예수님은 참된 새성전이십니다


축제의 기쁨을 상실한 유대인의 유월절과, 본질을 망각하고, 본말이 전도되어 그 기능과 의미가 왜곡된 성전을 예수님께서 척결하시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자격과 권위를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참 성전이 무엇인지 상기하게 하신다. 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따르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한계를 알고 계셨기에 의탁하지 않으신다. 

*

‘성전 건축’과 ‘무교회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건물로서의 성전을 척결하시고 참성전 되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그리스도인 곧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성전삼아 그 안에 거하신다. 그런데 다시 건물을 성전이라 하고 이를 건축하기 위한 용어의 오용과 남발은 극단적으로 보면 우리를 참 성전 삼아주신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역행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당을 예배당이라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더불어 무교회주의자들이 진짜로 이렇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부인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참성전으로서의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교회, 정의와 공의,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등의 본질과 사명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왜곡된 교회, 그래서 주님이 함께할 수 없는, 주님이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되고 교주가 되어버리고, 하나님나라의 가치가 아닌 세상의 가치로 물들어 버린 그런 교회를 부인하는 이들을 무교회주의라고 매도하는 것은 역시 문제가 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왜곡되고 본말이 전도되고, 본질이 왜곡되고 변질되어 더이상 성전으로서의 기능도,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이가봇) 성전, 장사치들과 종교 기득권자들의 부패와 탐욕으로 점철된 성전을 척결하시는 예수님은 마침내 친히 희생 제물이 되시고 참성전이 되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 되게 하신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13-17절 본질을 망각한 성전을 척결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라

출애굽 때 마지막 열번째 장자재앙의 죽음으로부터 유월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그리고 세상과 종교와 나라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예루살렘의 한 가운데 있었던 성전은 원래 하나님의 계시와 제사와 임재의 기능을 갖고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되시고 만유의 주재이시고 모든 것의 우선되시며, 중심되시는 것이 본질이었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본말이 전도되어서 이미 그 기능은 진즉에 사라지고, 무소불위의 종교권력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종교심을 이용해 자신들의 탐욕의 성취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성전은 온갖 장사꾼과 환전하는 이들이 사제계급과의 결탁으로 특권을 누리면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호사를 누리며 하나님보다도 돈이, 제사보다도 장사가, 하나님의 임재보다도 풍요의 임재가 더 득세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제의로 대체되었고, 그런 제사는 하나님의 뜻과 나라와 백성들의 삶과 세상과는 상관없는 철저한 종교장사꾼들의 퍼포먼스가 된지 오래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뒤엎으시면서 예수님은 외치셨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주의 전을 향한 인간의 열심 곧 탐욕이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임재와 계시와 제의를 망각하고 만 것이다. 제자들은 이 성경 말씀을 기억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건물로서의 예배당을 성전이라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성도와 공동체가 거룩한 하나님의 전으로서의 임재와 소통과 산제물로서의 기능을 망각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내주하심을 거절하는 격이 된다. 또한 지금 교회가 말씀과 헌금과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해서 거룩한가?라는 질문 앞에 과연 주님이 기뻐하실만 할까?를 생각해 본다. 

나와 우리의 공동체는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는지, 하나님의 계시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으로서 정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본질을 망각한 성전을 척결하셨던 주님을 기억한다면 지금 몸된 성전으로서 우리 자신과 공동체는 과연 주님께서 보시기에 어떨까요? 척결의 대상인가? 아니면 거룩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있는가? 


# 18-22절 예수님의 참 성전 되심을 믿으라

성전 척결 행동을 하시는 예수님의 분노를 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무슨 자격으로 어떤 권위로, 배후가 누구인지 물으며 그 표적으로 보이라 한다. 이에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동안 일으키리라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46년동안 지은 성전을 삼일 동안 일으킨다는 주님의 말씀에 의아해 한다. 그러나 주님은 성전의 기능을 상실한 건물로서의 성전은 척결하시고 참된 성전, 새성전 되신 자신을 가리켜 하신 것임을 저자는 설명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기능을 상실한 성전을 헐고 본질을 회복하고 성취한 참된 성전(새성전)으로 오셨고 표적과 가르침과 증언들을 통해서 이를 증거하셨다. 요한복음은 참된 성전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성전 척결 사건을 초기 사역에 배치한 요한의 의도로 보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면, 오늘 우리는 이 모든 역사와 사건과 증거들을 보고 듣고 우리도 성경과 주님을 믿는 것이 합당한 반응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실로 그 말씀을 믿는 자라 할 것이다. 


# 23-25절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라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면서 행한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중심을 아시고, 사람을 의탁하지도 않으시고, 사람들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도 없으신 성전 그 자체이시며 그리스도이신 분이시다. 

사람들의 환호와 추앙, 그리고 동요된 변화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오히려 미혹의 요소가 된다. 십자가를 지셔야 할 주님에게 이와같은 반응은 오히려 독이되어 유혹과 미혹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주님은 사람들을 아신다. 사람의 속사람과 중심을 보신다. 사람의 속에 악독과 불의로 가득하다는 것을, 언제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면, 자신들의 사상과 신앙과 지식과 뜻과 이익에 반한다면 가차없이 헌신짝 버리듯 믿음도 주님도 신의도 버릴만한 연약한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사람을 지으신 분이시기에 아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며 오래 참으실 뿐 아니라 급기야 천국의 일을 맡기시는 주님을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타자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가벼운 신앙, 사람들의 속마음을 분별하지 못하고 인사치레로 오는 것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자세, 군중들의 추앙에 겸손을 버리고 어느새 주님보다 우위에 서서 모든 영광을 가로채는 모습, 말씀에 위배된 편법으로 얻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어느새 결과로 모든 부정을 덮는 기만적 행동 등등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는 이 모든 일들은 철저히 경계하고 버려야 할 모습입니다. 


# 거둠의 기도

참된 성전되신 주님

주님의 말씀(계시), 예배, 몸된 성전으로서의 기능에 

합당하지 못한 죄인을 용서해 주옵소서. 

부활하신 주님의 증거들을 통해서 

성경과 주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표적이 아닌 주님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신뢰하고,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서 

온전히 살아가는 믿음에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몸된 성전임을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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