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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20. 2022

요한복음 06:41-59 예수님은 참된 양식과 참된 음

요한복음 06:41-59 예수님은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이십니다 하늘에서

요한복음 06:41-59 예수님은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이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왜, 어떻게 자신이 생명의 떡인지 재차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세상의 생명을 위해 살과 피를 나누시겠다는 말씀에 유대인들은 경악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시금 영생에 이르는 길을 소개합니다. 


# 41-42절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에 대해 수군거리며 자신들이 예수님의 부모를 알고 있기에 의아해 합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부모를 아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적과 역사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이전에 알던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예수님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군거리던 모습은 마치 광야에서 만나를 먹다가 싫증난다고 말하던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늘상 먹던 밥에 대한 신비도 흥분도 사라진 습관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 이전과 조금만 다르고 또 새롭게 변화를 요하는 것에는 민감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신앙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전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던 모습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말씀을 묵상해 가면서 만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던 부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날마다 새롭게 주님을 만나는 일에 있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도 불편할 정도로 우리 주님을 알아가는 일들이 날마다 새롭게 되는 일에 거리가 멀고 익숙한 모습으로 먹고 예배하고 따르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안일한 만족에 빠져 있다가 정작 주님의 역사와 참된 양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덤덤하고 무디게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사람은 책을 보든 새로운 것을 접하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착하고, 정당화 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고 자신을 부인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거나 아예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새 날과 새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매일 주님앞에 낯설게 접하고 서 있는 시간들이 있을 때라야 가능해 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43-46절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택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수군거림을 말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살리는 이들은 아버지께 그 주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또한 그렇게 택함 받은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배우며 예수님께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본 예수님만이 하나님에 대하여 전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도 상기시켜 줍니다. 

무리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지 않았기에 곧 믿지 않았기에, 예수님께 나아오지도 않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모자라서도, 표적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자신들의 관심사에 사로잡혀 있기에 자기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배워가는 일을, 주의 말씀을 통해서 묵상하며 만나고 알아가는 자는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길을 제대로 가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가르침을 받고, 아버지께 이끌림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날마다 말씀앞에 나아가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입니다. 그런 백성으로 택하시고 빚으시고 양육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신뢰와 감사와 순종입니다. 


# 47-51절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불평하며 수군거리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라고 선포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이들은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먹고 죽지 않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이 세상의 생명을 위한 떡이 되시기 위해서 희생(내 살)하사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을 제자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먼저 그 대상은 예수님의 구주(救主) 되심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들음, 읽음, 영접, 적용, 순종등을 다 포함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곧 구원을 말하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을 가집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이유도 이스라엘이 이 만나를 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과,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기 위함이 목적입니다. 그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무엇을 먹을까만 생가하며 그 문제 해결만을 바라던 이스라엘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이 죽음은 육신적 죽음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채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하늘에서 내려온 곧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수님께서 친히 떡이 되어 주시니 사람들이 이 떡을 먹으면 죽지 않습니다. 성경에서의 죽음은 죄로 말미암는데 한마디로 생물학적 죽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서 다시는 그 관계가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영생을 얻는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던, 곧 하나님과 회복될 수 없이 깨어진 관계로 진노의 자녀로, 죄에 종노릇하며 멸망할 수 밖에 없던 우리들을 사랑하사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유일하신) 성자를 보내셔서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표현합니다. ‘내 살’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살을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6:53이후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

영생은 예수님의 성전 되심과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성전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영생의 삶 곧 거룩한 성전으로서의 삶(하나님의 계시, 제사, 임재)을 보여주셨고, 영생을 얻은 우리도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미 얻은 영생을 사는 이들 이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 52절 믿음이 없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며 무지한 다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면 무지로 말미암아 다투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함은 듣지 못함이요, 듣지 못함은 관심이 없음이요 관심이 없음은 믿음이 없음 때문이요, 믿음이 없음은 탐욕과 세상의 것으로 가득차 있고, 자신들의 굳어버린 신앙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서로 다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다투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기껏 예수님께서 희생에 대한 말씀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식인종처럼 어찌 사람의 살을 먹느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의 태도와 의도는 설명을 요하는 질문이 아니라 불신앙적인 힐난의 질문처럼 보입니다.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겸손히 무지를 인정하고 주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교만하기에 이웃과 다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에 질문하지도 않고, 우격다짐으로 고집을 피고, 자신의 무지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오해하며 심지어 예수님을 박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5:38). 또한 사람들끼리 영광을 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기에 믿을 수 없습니다(5:44). 무지로 인하여 질문하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신앙으로 힐난하고 시비하면서 자신들의 무지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까지 그 무지의 틀로 가두는 것은 불신앙이며 믿음이 자라기는 커녕 불평 불만하게 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알아가는 일을 주께서 주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행한 수 있길 원합니다. 


# 53-55절 예수님은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이십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라야 생명이 있고, 영생을 가지며 마지막 날에 살리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죽음)를 회복하는 일(생명을 얻는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죽으심)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이 길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양식을 참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양식과 음료는 결코 영생 곧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라야만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게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또 자녀로 영생을 살고 누리게 하실 수 있습니다. 


# 56-57절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에서 주님과 더불어 먹는 영생의 삶

주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는 자는(살과 피를 먹는 자)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도 그의 안에 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처럼 그도 주님과 더불어 먹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는 이제 주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더불어 먹고 살게 됩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며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인도와 주관하심과 공급하심과 채우심 속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삶을 이미 살도록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지금 바로 이 땅에서... 만일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 58-59절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십니다. 

만나를 먹은 이들은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삽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재차 가르치셨습니다. 본문의 이야기에 계속 반복해서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으니 이는 강조에 강조를 더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을 믿고 얻은 영생 곧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에 있는 소위 영생을 얻고 구원받은 이들은 다시는 그 관계가 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일을 위해 오셨고 우리에게 참된 양식과 음료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서 이 놀라운 영생,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오늘 다시 되새기며 상기 하고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셔서 그분의 심장으로 영혼을 보고,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분의 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이들과 더불어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_매일성경 해설 중에서


# 거둠의 기도 

우리를 주께로 이끌어 영생을 얻게 하신 주님

익숙하고 습관적인 신앙에 안일한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는 죽은 신앙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즐거이 살아가는 복있는 자 되기 원합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고 순종해 가는일을 지속하게 하옵소서.

영생얻는 믿음으로 이 떡이 되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이 떡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며 희생하사 

친히 살과 피를 흘리신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누리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전으로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산제물로서 

그리고 주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기에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참생명의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살과 피를 먹이사 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살려주신 생명, 주님과 함께 더불어 먹고 거하는 성전으로

거룩한 삶을 살고 누리고 증거하는 복락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셨으니 그 살림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도 살리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넉넉하게 하옵소서. 

오늘 거룩한 성전으로, 거룩한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날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과 더불어 온전히 그리고 즐거이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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