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과 그늘

빛과 그늘은 모두 사랑

by 고요한 현실가

공원 한가운데에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요즘 맨발 걷기가 유행이던데 이 여인도 공원 뒷산을 맨발로 다녀온 모양이었다.
발을 닦는 곳에서 차가운 물로 시원하게 발을 닦은 후 햇빛이 단단하게 내려오는 곳에 앉아 발을 말렸다.
아니 온몸을 반짝반짝 말리는 듯했다.
발은 흙의 빛깔을 머금어서인지 깨끗이 씻었어도 노란빛이 돌았다.
그녀가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움'
그녀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신성한 의식처럼 발로 자연을 느끼고, 하늘을 경외하는.

문학작품이나 예쁜 영상 속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여인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천천히 공원을 뛰었다.



나는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여름이 가까워져 오면 까만 피부는 반갑게 햇빛을 빨아들이며 더 까맣게 잘도 물들었다.
그래서 마스크와 토시를 끼고 뛰었다. 조금이라도 덜 탔으면 싶어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를 감싸고 있는 마스크와 토시가 덧없어 보였다.
달리기를 끝내고 나도 홀가분하게 마스크와 토시를 벗어냈다.
자외선을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나도 자연의 일부이니 저 여인처럼 햇빛을 한껏 머금어봐야지.



그녀가 천천히 몸을 움직여 양말을 신었다.

그녀의 광합성이 끝이 나려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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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리기도 때마침 끝이 났고, 그늘 아래에서 쉬며 그녀의 고운 움직임을 여전히 신기하게 바라보며 서있었다.

내 옆에 서있던 한 남자가 그녀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곤 이리 섰다 저리 섰다 하며 위치를 잡는다.

이리 서나 저리 서나 그녀 앞인데 그는 뭘 하는 걸까?

아하! 그녀에게 되도록 큰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적의 위치를 찾고 있었던 거구나.

햇빛을 충분히 머금은 그녀가 너무 과하게 햇빛을 머금지 않도록 그는 말없이 해를 등지고 섰다.

그는 내가 서있던 그늘 아래에서 흠뻑 그늘을 머금고는 이제 그 그늘을 그녀에게 건네준다.

그가 그늘에서 그녀를 기다린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그녀에게 그늘을 주려고.


그가 만들어낸 그늘을 보고 그녀는 또 빙긋 웃었다.

해를 바라보며 웃을 땐 눈을 감아야 했는데, 이번엔 눈을 감지 않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음껏 햇빛 아래에 자신을 맡길 수 있었던 건 그녀만의 그늘이 있어서였나 보다.


나도 열심히 뛰었으니 나의 그늘에게 가서 조금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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