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스미레 Sep 28. 2018

미니멀라이프, 애쓰지 않습니다.

비우느라 놓치고 있는건 없나요



빈티지 마켓을 좋아합니다. 빈티지 애호가이신 부모님과
빈티지 인테리어 대가인 동생의 영향이 분명 있을 겁니다.
친정과 동생네 집은 물건이 많아도 조화롭고 편안합니다.​ 특정 시대와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이겨낸 것들의 기특함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접한 후로 냄비나 컵, 딸들의 노트조차 버리지 못하는 친정엄마를 답답하게 여긴 적도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했어요.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버리고 닦아내는 삶이 좋은 삶이라면, 오래된 물건을 아끼고 돌보는 삶도 좋은 삶입니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삶이 홀가분한 삶이라면, 많은 물건을 가지고도 담담한 삶 역시 홀가분한 삶입니다. 오래된 옷의 단추를 바꿔 달고, 딸의 이유식 수저 하나 버리지 못하는 우리 엄마의 삶이 그렇습니다.


미국 댁인 동생이 한국에 왔습니다. 물건 사는데 머뭇거리는 저를 의아해 하더군요. 필요한건데 왜 안 사는지, 좋은건데 왜 무시하는지 묻기에 미니멀라이프 때문이라 말했더니 '그냥 사고 싶으면 사.'라고 말하더군요.
또, '둘 자리가 없다'고 했더니 '자리는 만들면 되지.'라고 하는데 오, 신박했어요. 최근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 철학을 좋아하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운 물건도 곱게 보지 못했어요.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사지 말아야 한다'에 집착했어요. 이전의 소비가 길티 플래져(guilty pleasure)였다면, 요새는 길티(guilty)가 되었어요. 정성스런 선물도, 아이의 작품도 짐스럽게 느껴졌어요.

아차, 싶었습니다. 사고가 편향되고 고정되는 것 역시 경계해야겠지요.



2018년, 미니멀 라이프는 주부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to do'가 되었습니다. 목적지 없이 뛰고 있다는 느낌도 가끔. 2004년 '아침형 인간'을 기억합니다. 올빼미형, 빈혈, 저혈압 3콤보인 저에게는 고역이었지요.

새벽 기상 2달 후 링겔 신세를 졌습니다. 그 어떤 라이프 스타일도 '나만의 방법'보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타인의 기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쉽게 지칩니다. '움켜쥐기'에 너무 열심이면 힘이 들듯이, '비우기'과 '바꾸기'에 과한 열을 내면 힘이 들어요.
 
하여, 최소화 아닌 간소화를 좋아해요.
심플함과 편리함보다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원합니다.
즐겁고 여유롭게 실천하는 미니멀라이프는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에도 돈이 듭니다. 걸맞는 소품과 가구를 사야지요. 정리를 위한 시간과 에너지도 듭니다. 여기에 너무 진을 빼지 않게 주의합니다.
아이나 나를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남겨둬야 하거든요.
로봇 청소기와 건조기를 적극 활용하고, 간단한 요리를 즐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소소하게 포기한 것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양념통 통일이요. 알록달록 양념들을 심플한 통에 덜어두면 보기 좋지만, 씻고 옮겨담는 '일'을 해야합니다. 그게 달갑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양념통은 찬장에 넣어두고 씁니다. 눈에 띄지 않으니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수건도 그래요. 지금 쓰는 수건 대신 깨끗한 흰 수건 10장만 놓고 써볼까 하다가 매일 따로 빨고 삶는 일이 짐스러워 포기했습니다.​
냉장고도요! 텅텅 빈 냉장고는 그림의 떡입니다.
친정 엄마께서 비우기 무섭게 채워주시고 남편은 늘 과일을 박스로 사오거든요. 자주 정리해도 비워지지 않는 냉장고가 영 신경쓰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친정 엄마의 정성을 그저 감사히 받습니다. 과일을 왜 이렇게 많이 사냐 투덜댔지만, 우리집 과일 귀신들은 삼일이면 그걸 다 먹더군요. 자잘한 것들과 가족의 패턴을 바꾸는데 너무 애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제겐 마음이 편한게 우선입니다.
유행을 즐기고 따르는 제 마음 역시 받아들입니다.
다만 너무 애쓰지는 않아요. 유행은 돌고 돌거든요.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예술계에서는 60-70년대 미니멀리즘 이후 포스트(anti) 미니멀리즘이 나타났답니다.)
 
물론 저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항상 좋은 자극을 받고 있기에 감사하지요.  
하지만 오늘은 '버리지 않는 삶'이나 '정돈되지 않은 삶'도 괜찮은 삶이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두 편이나 되는 긴 포스팅, '미니멀 라이프'라는 주제를 통해 결국 자기만의 미의식, 자기만의 생활문화를 말하고 싶었는지도요.
주거와 라이프 스타일은 '자기다움'과 밀접하거든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와 당신은 추억도, 정도 많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나에게 좋은 것을 찾아내고, 나아가 타인에게 좋은 것을 이해하는 여유도 꿈 꿔 봅니다.
각자에게 편한 삶이 가장 좋은 삶일 테니까요. ​





http://instagram.com/smirae_

#에세이 #미니멀라이프 #육아


keyword
소속 직업에세이스트
룸펜엄마. 의지와 엄마로서의 세계. 다정한 기고가.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