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스미레 Aug 05. 2018

[육아에세이] 엄마는 처음입니다만

주눅들지 않습니다.

처음이었지만 임신과 출산은 그런대로 참을만했다 기억 합니다. 망각의 힘 덕분에 출산의 순간마저 아름답게 남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육아'는 사정이 달라요. 왜 그리 힘들던지요. 아이를 키우는데에 당연한 것, 쉬운 것은 무엇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일곱살이 된 지금도 육아 초기의 피곤과 까마득함을 잊지 못합니다.


당최 겁 많고 어리숙한 성정이 엄마가 되고는 더 유난입니다. 요즘도 매일이 넘어야 할 큰 산 같기는 마찬가집니다. 아이를 낳기만하면 응당 안온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호되게 단련해야지만 그리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에 대한 열에 달떠 내 속은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보고도 모른체 했지요.


허나 아이에 대한 애정도 엄마 마음에 낫낫한 공간이 있어야만 솟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몰라 당황한 내게 누군가는 말합니다. '처음이라서 그래.' 이 얼마나 간결하고 묵직한 팩트인가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와 대거리하다 우는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아가, 속상했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모르는게 많아. 미안해.'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그래요.

'나는 엄마가 처음이 아닌 줄 알았어.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처음 아닌줄 알았어. 엄마 사랑해.'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내친김에 아이의 엄마사랑을 생각해 보았어요.

무심히 잡아오는 작은 손, 엄마 밥 먹었어?하는 물음, 청소하는 나를 좇는 두 눈...고맙게도 아이의 사랑은 처음이기에 순연한 것이었어요. 무작정 '처음' 뒤에 숨으려고만 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요. 우연히 처음인 것일 뿐, 그것이 대수는 아니에요. 어쩐지 맑은 힘이 돋았어요.

엄마는 처음입니다만,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 윤여정씨가 그러셨다죠.

'나도 67세는 처음 살아봐요.' 누구에게나 매 순간이 첫 순간인가 봅니다. 하긴 스무살의 나도, 지금의 나도 처음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에요. 특히 엄마가 되어 맞이하는 '처음'의 감각들은 참으로 강렬하지요. 생애 가장 크고 뜨거운 경험. 그 빛에 눈이 멀어 나는 나의 모든 처음을 잊고 말았습니다. 나의 첫 걸음에 부모님은 환호하셨을 것입니다. 새학기의 설레임을 등에 지고 학교에 다녔으며 첫 직장에선 꽤나 칭찬을 들었습니다. 첫 눈에 남편을 사로잡은 운명의 여인이었어요.


이 모든게 나였습니다.
나는 모든 처음을 넘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시간의 이음매가 고와서 몰랐을 뿐이지요. 우리의 일상도 그래요. 이만큼 숙련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나요. 밥물을 못 맞춰 밥 때마다 벌벌 떨던 새댁은 이제 눈대중, 손대중으로 밥을 짓습니다. 아기가 왜 우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날들이 쌓여 아이 뒷모습만 봐도 기분을 알지요. 처음의 당황과 수고는 훗날의 편안함으로 보상 받나봅니다.


엄마가 되고는 매일 새로운 풍경앞에 서지는 못합니다.

처음을 지나 어디쯤 가고 있는걸까요. 이 허허벌판에는 눈금도 층수도 없어서, 때로는 시작과 끝이 정확히 구분된 삶을 꿈꾸기도 합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이만큼 자랐노라, 뿌듯한 선이 그어지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된 삶을 계량하거나 구획할 도구가 없음에 홀가분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익숙과 안정의 소박한 매력을 알게된 것도 그 덕입니다.





처음 엄마가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요. 그들도 처음이었다고 말해요. 우리 엄마도, 순이엄마도 철이엄마도 그랬대요. 그저 버티고 헤쳐나가래요. 작은 것들에 감사하래요. 힘들었지만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말하는 그들의 눈빛이 꿈을 꿉니다. 엄마가 힘 내야 한다며 아이 손이 아닌 제 손에 먹을 것을 쥐어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런 날 거울 속의 나는 어쩐지 날이 서 있었습니다.
육아 초기의 삶은 퍽 고단하고 외로웠습니다. 몇년 더 경험하며 육아에 '편안한 마음'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최고의 육아템도, 유명한 육아서도 엄마 마음이 편안해야만 의미를 갖더라고요.

내 마음에 귀기울이고
다독이는 연습을 해봅니다.
너무 애쓰지 않습니다.
한계를 인정합니다.
고운 것만 바라봅니다.


최근엔 '애도 낳아 키우는데 뭔들!'하는 자신감도 조금 돋았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마가 되는 일만큼 두렵고 떨리는 일이 또 있던가요? 못할 것 같던 그 일을 알근알근 하고 있는 내가 신통합니다. 물 흐르는듯한 아이의 성장을 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법 주문도 갖게 되었습니다. 신생아의 잠 없는 밤도, 세살의 물장난도, 고집불통 미운네살도, 결국엔 지나갔습니다.


이 무대뽀와 희망도 출산과 육아가 준 선물일 것입니다. 덕분에 여문 곳 없던 내가 이만치 단단해졌습니다. 넘어지고 비틀대면서도 땅에서 발을 떼지 않습니다. 다행히 그 정도로 미숙하지는 않습니다. 처음 엄마가 되었지만 이 정도면 장한 성장입니다. 이대로라면 나이가 드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엄마는 처음입니다만,
주눅들지 않습니다.
엄마는 처음입니다만,
나아가고 있습니다.






https://instagram.com/smirae_


#육아 #육아에세이 #엄마에세이


keyword
소속 직업에세이스트
룸펜엄마. 의지와 엄마로서의 세계. 다정한 기고가.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