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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

by Happy Diamond

파초

이육사


항상 앓는 나의 숨결이 오늘은

해월(海月)처럼 게을러 은(銀)빛 물결에 뜨나니


파초(芭蕉) 너의 푸른 옷깃을 들어

이닷 타는 입술을 축여주렴


그 옛적 『사라센』의 마지막 날엔

기약(期約)없이 흩어진 두 낱 넋이었어라


젊은 여인(女人)들의 잡아 못 논 소매끝엔

고운 손금조차 아직 꿈을 짜는데


먼 성좌(星座)와 새로운 꽃들을 볼 때마다

잊었던 계절(季節)을 몇 번 눈 우에 그렷느뇨


차라리 천년(千年) 뒤 이 가을밤 나와 함께

빗소리는 얼마나 긴가 재어보자


그리고 새벽하늘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어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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