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인생은 피할 만한 가치가 있다.
※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했던 것은 영화 자체에 관한 것들이 아니라, 어째서 그토록 전설적이라는 브릿팝 밴드를 나는 이제껏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 점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좋은 음악을 통해서 알게 된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그의 배경 스토리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경로를 벗어나서, 전혀 그 존재조차 몰랐던 뮤지션의 배경을 먼저 알게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모른다는 점에 적잖게 혼란스럽다. 영화가 '더 스미스'의 실제 음악을 노출하기 거부하고 철저하게 탄생 비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이 영화는 끝까지 보고 나서도 스티븐 모리세이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은 알려주지만 그래서 실제로 그 결과물이(오아시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와 같은 밴드들이 하나같이 영향을 받았다는 그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여전히 관객의 숙제로 남겨둔다.
세 번이나 등장하는 스티븐의 독백이 인생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있지만 너무 상징적이라 선뜻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희망이나 좌절이라고 하기에는 그는 지나치게 수동적이며, 방관이나 체념으로 표현하기엔 열정이 너무 강했다.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현실적인 타협을 배제하지 않았고, 친구의 성공에 체념하는가 싶어도 결코 노트와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렇게 건조한 갈등이 반복되면서 스티븐 모리세이는 결국 '삶이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인식으로 결론짓는다. 그는 타인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행복조차도 관심이 없었으며 삶에 대해 말하는 모든 이들의 가치관에 의문을 던졌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 매일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며 그날 하루의 일용할 양식이 주어진 점에 행복해한다. 그런데 그것은 스티븐이 추구하는 행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남들이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삶의 방식은 모두가 똑같은 클리셰다. 스티븐은 클리셰가 주는 매일의 빵보다는 반복되는 부정적 사건들에 주목했고, 그러한 삶은 '피할만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영화의 처음과 끝을 내내 관통한다.
Life. In this humdrum sense, is worth avoiding.
보통의 히어로들이 겪는 갈등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서 오는데 반해 스티븐의 성공을 가로막는 것은 주로 그의 내적 갈등이다. 스티븐은 작은 일 하나도 스스로의 행동력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만들어진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하는 의지박약이었다. 그래서 스티븐의 성장에 있어 영화는 특히 주변인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무관심한 크리스틴과 적극적인 린다, '왜 남들처럼 하지 못하느냐'는 보스와 '남들처럼 될 필요가 없다'는 엄마, '인생은 짧다'라고 말하며 행동을 촉구하던 친구 안지는 정말 짧은 생을 살고 죽어버렸고, 린다와 빌리는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런던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들 중에 옳고 그름은 없으며, 그들이 미친 영향력은 어떠한 의미로든 스티븐의 음악에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스티븐은 '런던은 내 거야'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치던 린다를 넘어서고 영국 전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더 스미스 비긴즈'의 성격을 가진 영화다. 그래서 꿈-갈등-극복-성장-성공의 일반적인 플롯을 따라가고 있지만 마지막의 '성공'은 표현되지 않는다. '더 스미스'가 성공적인 밴드로 발전하였다는 당연한 사실을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일말의 여운을 남김으로써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에게 해방감과 환희보다는 묘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이 영화가 주는 여운은 그래서 이 밴드가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가 아니라, 과연 스티븐 모리세이와 조니 마가 처음으로 합작하여 만든 이 노래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러모로 그들의 첫 곡은 특별하다. 정신없이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두 사람의 모습 사이사이에 영화는 스티븐이 지나온 '과거'의 장면들을 하나씩 끼워 넣는다. 드디어 데뷔곡을 완성하고 밴드로서의 첫걸음을 떼는 그들에게 과거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스티븐에게 있어 과거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행복이든 불안이든 슬픔이든 희열이든 어떠한 감정의 기억이더라도 이 모든 것을 오직 노래로서 담아내려는 노력은 결국 모든 것을 이루어내려는 그의 열정의 함축이라고 할 수 있다.
I decree today that life
Is simply taking and not giving
England is mine, it owes me a living
영화 제목인 'Engand is mine'은 더 스미스의 1집 앨범 수록곡 'Still Ill'의 가사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스티븐 모리세이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함축된 표현이라고 보인다. 영화를 본 뒤에 비로소 더 스미스의 대표곡 중 하나라는 'Still Ill'을 들어본다. 현대 브릿팝의 시초라더니 90년대 브릿팝 밴드보다는 오히려 6~70년대 포크송에 가까운 듯하다. 발라드를 부르던 시절의 비지스(Bee Gees)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목소리와 창법이 나름 올드한 맛이 있다. 영화에서는 스티븐 모리세이가 딱 한 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배역을 맡은 잭 로우든은 냉소적이지만 비관적이지는 않은 스티븐의 원래 목소리를 꽤나 잘 살린 듯하다. 오히려 영화가 더 스미스의 음악을 배제함으로써, 내가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 시간만큼 내게 '잉글랜드 이즈 마인'의 수명은 조금 더 늘어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