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이 초상화를 그린다면 당신 얼굴 같겠죠

지식인처럼 말하기 강좌 2

by 뮤즈노트
이 강좌는 지식인처럼 말하고 싶지만 지식인이 되기엔 바쁜 현대인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조차도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강좌를 듣는다면 누구나 한 문장만으로 지식인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예문과 응용 문을 통해 학습한다면 지인과의 일상 대화뿐 아니라 특히 연애와 소개팅에서도 교양 있는 지식인의 풍모를 뽐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강좌는 녹음된 내용을 편집한 것이어서 구어체로 진행됩니다.

안녕하세요. 지식인처럼 말하기 강좌 두 번째 시간입니다.


자, 바로 오늘 배워볼 지식인의 문장을 먼저 따라 해 볼까요?


몬드리안이 초상화를 그린다면 당신 얼굴 같겠죠


잘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식인은 아닐지라도 발을 헛디뎌 미술 전시회장에 가거나 호텔 회랑과 핸드폰 케이스에 새겨진 그림은 늘 마주치게 되는 법이죠? 그런데 그때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미술관에 가보면 이상한 점을 툭 찍어놓은 그림이 수억짜리라거나 아이들 낙서처럼 휘갈긴 그림이 명작이라는 둥 알아듣기 힘든 소리가 가득하죠. 게다가 앗 저 그림은 많이 봤는데... 라면서 '저... 저거 고갱 아닌가?'라고 오래간만에 아는 척했는데 같은 고씨인 '고흐'의 작품일 때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기괴한 현대미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지 몰라 큰 맘먹고 책을 샀는데, 야수파, 미니멀리즘, 다다이즘 따위의 용어만 가득하고 뭔 변기(뒤샹)나 통조림 깡통(앤디워홀)을 놓고 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더 알쏭달쏭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사실 미술관을 자주 드나들거나 전공자 중에서도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왜 현대미술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 내막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일단 덮어놓고 문장을 외워봅시다.


몬드리안이 초상화를 그린다면 당신 얼굴 같겠죠...


자, 그럼 이 문장은 어떤 때 사용하면 좋을까요? 오늘도 사례를 통해 배워 봅시다.


우리의 주인공 박곤약씨(35세)는 음대를 졸업하고 피아노 학원을 하는 훌륭한 여성 소피아(35)씨를 소개받게 되었고 애프터 신청에 성공하여 미술관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박곤약씨 지난 이야기 보기

조용한 미술관의 알 수 없는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지만 박곤약씨와 소피아 씨는 즐겁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때 소피아 씨의 동창 심술보(35)양을 만나게 되었군요.

심술보 : 얘! 오랜만이다. 나야 술보. 잘 지냈니?
소피아 : 아, 술...술보야... 안녕?
심술보 : 네가 웬일이니. 이런 미술전시회에도 다 오고... (박곤약을 아래 위로 살피며) 호호.
데이트하나 보네. 그럼 그렇지. 데이트가 아니면 네가 여기 올리가 없지. 호호호
소피아 : 아~ 인사해. 이쪽은 박곤약씨야.
심술보 : (심술보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나저나 넌 어떻게 지내니?
소피아 : 난 그냥 조그만 학원 운영하고 있어
심술보 : 얘, 잘했다. 나처럼 연주회 해봤자 맨날 돈만 잔뜩 들고, 코 묻은 애들 돈이라도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야. 안 그래?


심술보 양의 무례한 말에 소피아 씨 얼굴은 굳어집니다. 그걸 아는 박곤약씨도 안절부절이군요. 곤약씨는 사실 소피아 씨보다 더 화가 났습니다. 이렇게 매너 없는 사람에겐 따끔하게 쏘아붙이고 싶지만,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즉, 첫 데이트를 하는 미술관에서 불쾌한 상대에게 건넬만한 지적인 욕(?)을 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식인처럼 말하기를 배웠죠? 이 상황에서 아주 적절하게 쓰일 듯하군요. 계속 보시죠.

박곤약 : 아마 몬드리안이 초상화를 그린다면 그쪽 얼굴 같을 거예요.
심술보 : 응?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혼란스럽다)
박곤약 : 저흰 가볼게요. (소피아 손을 잡으며) 제가 맛있는 집을 예약했어요. 가시죠.
소피아 : 그래요.
박곤약 : 제 손, 글렌 굴드만큼은 아니지만 잡을만하죠?
소피아 : (활짝 웃으며) 네!
심술보 : (??? !!!!!)


이 문장의 장점은 현대미술의 거장 몬드리안이 나오니 미술관에 어울리는 상당히 지적인 느낌을 준단 점입니다. 더욱이 몬드리안이 그리는 초상화라니... 상대방 입장에선 무슨 의미인지 한 번에 캐치하기 어렵단 특징이 있습니다. 상대가 웃을지 울을지 망설이는 순간에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으니 박곤약씨는 또 좋은 점수를 땄겠군요. 이제 박곤약씨가 할 일은 식사를 하며 소피아 양에게 자신이 했던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것만 남은 셈입니다. 캬아~ 괜찮죠?




그렇다면 우리는 몬드리안과 현대미술에 대해 대충은 알아야 자신 있게 설명을 할 수 있겠죠? 또 가끔은 미술관에 가서 이상한 선과 점들의 집합체를 보면서 감상도 해야 하니 잠깐 짚고 넘어가도록 하죠.


미술이란 무얼까요? 미술은 우리의 생각(사상)을 그림이란 형태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미술은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개체가 되니 일종의 매체(미디어)라고 봐야겠죠. 그런데 인간이 발명한 모든 매체의 목표는 똑같습니다.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매개) 현실세계보다 더 현실 같도록 흉내 내는 것(모사)입니다.


자, 예전에 어떤 원시인이 숯으로 벽에 물소 사냥 그림을 그렸어요. 내일은 더 많은 물소를 잡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그림으로 표현한 거죠. 그런데 옆에서 그걸 보던 친구가 '돼지를 잡으면 좋겠다고?'라고 묻습니다. 원시인은 친구가 오해하지 않도록 '돼지'가 아닌 '물소'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이번엔 뿔도 더 길게 그리고 눈도 그리고 털 문양도 넣습니다. 그렇게 정교하게 현실을 흉내 내는 것으로 초기 미술이 시작하여 발전하게 됩니다.

네이처에 실린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 4만3900년전 벽화로 추정되며 물소사냥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미술은 매체로서 한계가 있습니다. 벽화든 종이든 2차원 평면에 표현할 수밖에 없단 거죠. 모든 매체의 꿈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평면 위에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해 원근법을 개발합니다. 즉 평면 공간에 3차원 효과를 넣고 싶어 한 거죠. 또 현실의 색을 현실보다 더 현실 같게 구현하기 위해 물감의 개발이 끊임없이 이뤄집니다. 고흐가 프랑스 아를 지방의 타는듯한 해바라기 표현이 가능했던 것도 크롬 옐로와 같은 화학물감의 등장 때문입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크롬옐로 안료로 노란색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술을 포함한 모든 매체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똑같이 흉내 내는 걸 목표로 발전한단 거죠. 이 사실만 알고 있다면 TV의 미래도 금세 예언할 수 있습니다. 흑백 TV는 현실을 묘사하지만 색이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컬러 TV가 등장하죠. 그런데 아날로그 TV는 선명하지 않아요. 이후 화소수를 극대화한 HDTV로, 다시 UHD TV로, 더 나아가서는 현실과 같은 입체감을 주는 3DTV나 홀로그램까지 발전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TV 가전회사 CTO의 프리젠테이션 현장


자 이제 미술계에도 위기가 닥쳐옵니다. 그것은 바로 사진의 발명이었습니다. 사진은 그림과 같은 2차원이지만 현실 묘사 능력은 그림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즉 매체의 능력으로 보면 상대가 안 되는 것이죠. 사진이 19세기에 개발되고 상업적으로 이용되게 되면서 도시로 모여 처음으로 대중이란 이름을 부여받은 중산층들은 어설픈 화가들의 그림보단 값싸고 훨씬 진짜 같은, 사진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제 미술은 현실을 가장 가깝게 묘사해내는 기술적 능력으론 사진과 상대가 되지 않기에 다른 활로를 찾습니다. 즉, 15-18세기의 근세 미술이 세밀하게 인간과 풍경을 묘사해내면서 이미지 매체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19세기 사진의 발명과 함께 밀려납니다. 그래서 근대미술은 진짜처럼 그리는 것보단 낭만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감정과 찰나적인 인상을 강조하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즉 당시 사진이 구현하거나 침범할 수 없는 주제와 표현 형식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사진 역시 빠르게 발전하면서 예술적 표현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해 갑니다.

브레송 : "우리의 작업은 현실을 감지해 거의 동시에 그것을 카메라라는 우리의 스케치북에 담는 일이다"

결국 20세기 현대미술에 이르러서 무언가를 흉내 내서 그리는 구상미술이 아닌 추상미술이 시작되게 됩니다.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미래파 같은 현대미술의 흐름은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이들 모두는 명암과 원근을 포기하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원색 등을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점점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즉 매체로서의 미술이 끝나고, 이제 작가 혹은 어떤 사람의 철학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죠.


미술은 그림이 아니고 철학적 표현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중에 추상미술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몬드리안입니다. 몬드리안을 추상미술의 선구자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그의 화풍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는 모습에서 추상화 탄생의 역사를 보여준다고도 합니다.

붉은 나무(1908)
회색 나무(1911)
구성2 (1930)


그러나 이러한 작풍의 변화를 놓고 추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자, 우리는 앞서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올 때 미술이 이미지란 매체에서 철학으로 변한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떤 질문에서 시작될까요?


철학은 언제나 근원을 묻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세계란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추상으로 넘어오면서 몬드리안이 묻고 싶었던 질문은 "과연 미술이란 무엇인가?"입니다. 무언가의 정체를 알기 위해선 가장 기본적인 단위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즉 원자 단위부터 출발해보는 것이죠. 미술의 원자 단위는 뭘까요?


점, 그 점이 이어 만들어진 선, 그 선이 겹쳐져서 만든 면, 그리고 색채 역시 원색. 이미지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몬드리안이 추상미술의 대표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화풍을 단순화해서 추상이 되었다... 가 아니고(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퇴보겠지요), 바로 그의 그림이, 점, 선, 면, 원색... 이란 미술 근원에 대해 탐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현대미술은 모두 개념미술, 즉 철학의 한 형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점 하나를 찍어놓은 캔버스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우환 '조응' (2002)

또 얼마 전 있었던 유명가수가 대리 작가를 써서 작품을 발표해서 논란이 되었던 사건도 현대미술은 아이디어 중심의 개념미술이란 걸 생각하면 누가 그림을 그리던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면서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작가들은 본인은 아이디어만 건네고 스태프들이 대신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뒤샹의 <샘> 같은 작품은 공장에서 나온 변기를 그대로 가져다 전시했는데 그걸 만든 사람이 중요하다면 수십 명의 변기 공장 노동자가 작가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겠죠. 미술은 그렇게 기교와 기술로서의 전통에서 멀어집니다.


어쨌거나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전혀 부끄러울 게 아닙니다. 현대미술은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철학은 작가나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소설과 시는 감상할 수 있지만, 철학은 생각하고 읽어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근세와 근대미술까지는 어느 정도 감상할 수 있지만 현대미술은 설명을 듣고 읽어내는 고단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뒤샹 '샘'(1917) 변기를 사다가 전시해도 작품이 된다. 개념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관념과 아이디어, 즉 작가의 철학이지 매체로서의 미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작품 해설집이 난해 해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또 미술평론가란 사람들이 점점 전문화되어 나타난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지만 자신의 철학을 조리 있게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철학 이론을 공부한 평론가는 복잡한 철학적, 이론적 해석을 작가 대신해주는 식으로 분업화되고 평단에서 권력을 갖게 됩니다.


잭슨폴록 '19번' (1948) 클레멘트 그린버그라는 평론가에 의해 유명해진 잭슨폴록


어쨌거나 현대미술은 그렇게 현실에서 초현실로, 기술적 완성도에서 아이디어로, 미디어에서 철학으로, 감상에서 독해로, 대중에게서 전문가에게로 떠나버렸습니다.


미술관에서 갸웃하는 박곤약씨에겐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소피아 : 곤약씨... 그런데 아까 몬드리안 초상화 얘기는 무슨 뜻이에요?
박곤약 : 몬드리안은 미술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면서 선과 면으로만 그림을 그렸잖아요.
아까 그 친구분도 자신의 본바탕을 좀 살피면서 살면 좋겠단 뜻이었어요.
소피아 : (감탄한다) 아~ 멋진 뜻이네요.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곤약씨를 본다)
박곤약 :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분 화장한 게 워낙 알록달록해서 놀리려고 한 말이기도 해요.
소피아 : 어맛! 하하하
박곤약 : 하하하하하

자 오늘도 곤약씨와 소피아 씨는 한층 가까워졌군요. 이제 마지막 응용문제를 풀 시간입니다.

한번 여러분도 도전해볼까요?


소피아 : 그런데 곤약씨... 저를 초상화로 그린다면 어떤 작가가 어울려요?
박곤약 : !!!


위 질문에 어울리는 답변은?

1) 박곤약 : 소피아 씨는 크롬 옐로의 화사한 빛이 담긴 해바라기처럼 빛나니, 단연코 고흐가 어울립니다.

2) 박곤약 :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눈치 빠른 여러분은 1번이 아닌, 2번을 선택하셨겠죠? 맞습니다. 지식인처럼 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솔직함입니다. 솔직하면 자연스럽게 겸손해 보입니다. 열등감도 없어 보이죠. 자신 있는 사람만 모른단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뒤에 이 말을 덧붙인다면 최고일겁니다.


"현대 개념미술은 철학 공부가 부족해서 잘 모르고, 화가 이름도 모르지만...
소피아 씨란 사람은 알고 싶어요. 배우고 싶어요.
소피아 씨가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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