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한번만 사진전을 가야 한다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by 뮤즈노트


삼성이나 애플 같은 휴대폰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카메라 기술에 몰입하는 걸 봤을 때 의아했다. 사진이야 있으면 좋은 기능이지만, 휴대폰으로 역사에 남을 작품을 찍을 것도 아닌데 호들갑인가 싶었다. 그런데 역시 똑똑이들만 모여있는 회사의 예상대로 SNS나 메신저 플랫폼, 영상 통화 등 기능이 보편화되었다. 당연히 휴대폰에서 카메라의 성능은 비교우위를 가늠할 수 있는 필수적인 기능이 됐다. 나 역시 탐조 취미를 갖고 있어서, 배율이 좋은 카메라가 달린 갤럭시를 쓴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카톡 등으로 매일 누군가의 사진을 감상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매체에 친숙해진다는 의미는 아우라의 농도가 옅어짐을 의미한다. 요즘은 영화 발명 초기처럼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에 놀라서 영화관을 뛰쳐나가는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뤼미에르 형제 : 열차의 도착, 50초짜리 짧은 초기 영화로 영화사를 배울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상징적 작품이다.


게다가 주변에 사진 찍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사진을 사랑하는건지 장비, 촬영 이론을 사랑하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미러리스, 피사계심도, 초점거리, 렌즈별 화각에 대한 이론은 물론, 니콘, 캐논, 소니 등 대표적인 카메라 기종별 라인업과 스펙을 줄줄 외우지만 정작 그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감탄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남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라면 모를까 사진이 주는 미학적 감동에는 다소 부정적인 편이다.


한가람 미술관 3층에는 브레송이 작업한 라이카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내 감상과는 별개로, 역사적으로 볼 때 사진은 이미지를 포착하여 표현하는 회화에서 영상 매체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주요한 기술적 매개체이다. 덧붙여 사진은 미술을 밑도 끝도 없는 추상과 초현실, 미니멀리즘으로 밀어내버리고, 관객으로부터 유리되어 사변적인 철학이론의 근처를 유령처럼 배회하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진과 회화의 대결을 한 컷 이미지로 나타내면, UFC링 위에 떡실신한 회화의 부서진 베젤, 그것을 내려다보며 플래시를 터트리는 카메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미디어는 현실을 더 현실같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발전한다. 회화 역시 2차원 평면에 현실같은 입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원근법과 명암기법을 개발하고, 다양한 염료의 사용으로 색채를 입히고, 자연이 주는 찰라의 감동을 흉내내기 위한 인상주의 등이 시대를 거듭하며 유행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을 그대로 찍어낸 사진과는 매체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회화는 2등시민(?)으로 밀리고, '점, 선, 면, 색' 등 회화의 기본요소에 대해 성찰할 것을 강요받는다. 결국 현대 회화는 이미지의 기본요소에 대해 성찰하는, 환원적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2) : 브레송의 대표적 작품

이 때 사진이 매체적으로만 회화를 압도하는 게 아니라, 예술성으로도 압도할 수 있음을 알려준 이가 바로 브레송이다.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말로 대표되긴 하지만, 실제론 회화가 수천년간 성취해온 구도와 구성을 사진에 재현해 낸 공로가 더 크다.


실제로 그는 미술을 배우던 미학도이자 화가였다. 사진을 그만둔 이후에는 책 삽화 등을 그리며 살았다. 당연히 그의 사진에는 그림자의 음영, 인물과 오브제, 건물을 활용한 구도 등 회화성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1947) : 빌딩 숲 틈바구니 한 남자가 고양이와 대화하고 있다. 겹겹이 쌓인 어두운 벽면이 양 옆에 배치되어 피사체가 돋보이는 구조를 드러낸다.
미국 뉴욕 (1947) : 화재로 폐허가 된 연기 뒤로 신기루처럼 솟은 맨하튼의 마천루가 초현실적인 대조를 이뤄낸다.


브레송의 작품이 지닌 회화성은 초상(portrait)에서도 빛이 나는데, 앙리 마르티스의 작업실 사진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얀 베르메르의 작품이 떠오른다. 특히 베르메르가 섬세한 구도를 표현하기 위해 렌즈를 이용했다면 브레송의 작품은 실제 카메라를 이용했으니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완벽한 회화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앙리 마르티스와 그의 모델 : 아래 얀 베르메르의 작품과 유사한 구도와 느낌을 준다.
얀 베르메르 작, <화가의 아뜰리에> : 그는 실제 섬세한 표현을 위해 17세기 당시 카메라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란 렌즈 장비를 써서 구도를 잡았다.
장폴사르트르 (1946) : 초상에도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어, 인물이 갖는 성격이 한번에 감지된다.


사진은 흔히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중시된다. 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와 사진의 역사가 뗄레야 뗄 수 없는 이유다. 유명 잡지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의 사진을 현재 시점에서 보면 다양한 나라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여행하는 느낌을 주지만, 그것은 인터뷰에서 스스로 다큐멘터리적인 기록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듯, 사진이 가져온 긍정적인 부수 효과라 생각된다. 확실히 어떤 사건의 내막에 집착하기 보단 인물들의 역동성을 포착한 사진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난민캠프(인도, 1947) : 다양한 인물들의 표정과 역동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1933) : 자신을 닮은 익살스러운 그림을 그려놓고 잠이든 과일장수, 유머가 넘친다.

넘쳐나는 게 사진인데 굳이 사진전을 봐야돼?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인생에서 그래도 한번쯤은 사진전을 가야 한다면 누구를 골라야 할까?


브레송의 시대를 끝냈다는 찬사를 이끌어낸, U.S.285번 국도로 유명한 로버트 프랭크? 극적인 전쟁 사진으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

(좌) U.S.285. 로버트 프랭크 작, (우) 쓰러지는 병사, 로버트 카파 작


사람의 취향과 기준이야 모두 다르겠지만, 미학적 구도와 회화적 심미감이 맘껏 드러나는 브레송 사진을 보는 게 단연코 즐겁지 않을까?


마포구에 살다보니 예술의 전당도 참 오랜만이다.


아내 면접이 마침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잡혀 있던 우연이란 순간을 캐치해, 면접 끝나기 전까지 사진전을 흥겹게 구경한 나 자신의 결정적 순간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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