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어떤 노예가 생겼다. 그는 말을 잘 듣는다. 일이 많다고 잠잘 시간도 없다고 투덜대거나 반항하지도 않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한다. 예민해져서 화가 날 땐 그에게 화를 내도 된다. 심지어 노예의 잘못이 아닌 일조차 그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고 욕해도 상관없다. 곁에서 누군가가 이 모습을 봐도 노예를 학대한다고 비난하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불쌍한 노예는 오로지 내가 잘 되길 바란다. 지극히 사랑한다.
비정하지만 막상 이런 노예가 생겼으면 싶을지 모르겠다. 내 책임과 해야 할 막중한 짐, 비난은 노예에게 다 떠넘기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이런 노예를 갖고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별다른 힘도 재산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내 맘대로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노예는 자신이 유일 하단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렇기에 성공을 못한 것도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 되고 잘못이 아닌 일도 내가 더 잘했어야지 하면서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난한다. 퇴근하고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더 노력해야지 가혹하게 채찍질한다.
나 역시 예전에 후배와 점심을 먹으며, 미래를 위해선 이런저런 일을 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훈수를 둔 적이 있다. 주말에도 쉼 없이 이런저런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얼마 뒤 번아웃이 찾아왔다. 마른 우물처럼 의욕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의욕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게다가 모든 우물의 깊이가 다르듯 의욕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맙소사. 의욕을 가지라고 해도 누군가에겐 어떤 이유로 우물이 바짝 말라 흙먼지가 이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직해서 다른 회사를 다니던 그 후배가 점심을 먹자며 찾아왔을 때 그때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사과했다. '의욕이 없어져보니 의욕을 가지라는 말이 얼토당토않은 말이더라고. 미안해.' '그냥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사는 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 후배는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하 웃어넘겼다.
자기 연민은 나쁘지만 자기를 노예처럼 맘대로 부리는 일은 더 나쁘다. 회사를 다니며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도 바로 그런 자기 괴롭힘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게 다 좋으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는 건, 노예의 숨통을 틔어준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자기 연민은 독이지만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아는 건 지혜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깨달아야 한다.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에서는, 사람 안에 두 마리의 새가 정답게 붙어있다고 묘사한다. 한 마리는 욕망과 의욕의 새(노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참자아(진짜 나)이다. 그리고 노예를 위로해 줄 사람, 위로할 방법을 아는 이는 다른 한 마리의 새, 욕망의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나일뿐이다.
그렇게 오늘 밤, 나는 의욕의 우물이 말랐는지 조심스레 살피고 또 다른 나의 지친 발을 어루만져주기로 한다.